<교육감 선거를 앞둔 현직 교사의 썰전>이라 쓰고 하소연이라 읽어요.
"언니, 교육감 선거 투표해야 하는데
현직에 있는 언니 의견이 궁금해...."
토요일 아침, 동생에게 톡을 받고 두 가지 마음이 일었다. '부끄러움'과 '고마움'이었다. 글씨를 잘 쓰는 몇 명 아이들의 답안지를 제외하고는 나에게 해독 시험과 같은 서술형 평가 채점이라는 주말 과제를 안고 맞이한 토요일 아침인지라, 커피 마시고 채점해야지, 점심 먹고 채점해야지, 드라마 한 편 보고 채점해야지, 이런 생각으로 토요일 아침을 보내고 있었다. 선거를 잊고 있었다. '누구보다 관심이 많아야 했는데'라는 자가 기준에 의해 잠시 조금 부끄러움을 느꼈다. 그리고 내가 교육이라는 분야의 현직에 있다고 의견을 궁금해하며 나의 사회적 자아를 인정해주고 물어주는 동생에게 고마웠다. 그렇다. 현장에서 하루하루를 치러내다 보면 내가 지금 무슨 일을 하고 있는지 망각한 채 그냥 하루를 보낼 때가 많아서 다시금 내가 '교육'이라는 아주 중요한 분야의 일원임을 상기시켜주어 살짝궁, 스스로 매우 중요한 사람이라고 셀프 토닥을 해준다..... (채점은 이 글을 쓰고 바로 하기로 했다!)
왜! 왜! 또 이분법이냐고!
"진보"냐 "보수"냐
교육감 선거라는 교육계의 대사를 앞두고, 사실 교육이라는 분야에 있을수록 거시적인 관점에서의 교육을 정의하는 것이 점점 어려워짐을 고백한다. 분명 교육은 이래야 한다는 방향성을 가지고 시작한 일이지만 현장에 있으면 교육이라는 거대한 부분의 지극히 작은 한 부분일 뿐임을 순간순간 깨닫고 거대한 무언가 앞에서 나의 노력이 그다지 중요한 일인 것 같지 않게 느껴질 때가 잦다. 대상에게 애정을 둘수록 설득하고 싶어 지고, 그러다 선을 넘기가 쉽다. 그러면 서로에게 상처가 되기도 한다. 괜히 마음 주고 상처받지 말라는 선배의 말도 일리가 있고, 그러나 분명 중요한 일을 하고 있음은 분명한데, 그렇게 줄타기하며 줌인을 했다가 줌아웃을 했다가 반복하며 균형을 유지해온 덕에 힘들고 즐거운 교직생활을 n년째 하고 있는 순간 집중형 교사다. 이런 나에게 우리 교육의 리더를 뽑는 일은 역시 중요하다. 줌인의 렌즈를 줌 아웃하여 거시적인 관점에서 봐야 하는 시기다. 지문에 딸린 몇 개의 선택지를 앞에 두고 답을 하나 골라야 하는 시험을 보는 것과 같다. 다만, 정답이 없다는 것이 유일한 차이가 아닐까. '현재 상황'이라는 지문을 읽고 각 선택지를 택했을 때의 미래를 잠시나마 상상해본다. 뚜렷하게 좋은 미래가 상상되는 선택지가 있으면 선택은 어렵지 않을 것인데, 그게 그렇지가 못하다. 적어도 나에게는 말이다. 어렵다. '지난 교육감 선거가 엊그제 같은데 역시 시간이 참 빠르구나'를 웅얼웅얼 거리며 부랴부랴 후보자들에 대해 살펴보았다. 솔직히 대통령 선거가 바로 앞전에 있었어서인지 당연한 지방선거인데 선거라는 말이 조금 피로했다. 그리고 구조를 만드는 하나의 반석이 되어야 함을 머리로는 알고 있지만 이 짧은 인생의 경험에 비추어 누가 되든 일상에 허덕이는 삶은 변화가 없으니 이 소중한 권리인 선거에도 시큰둥한 마음이 앞선다고 고백한다. 그래도 정말 교육계의 리더를 결정할 수 있는 소중한 권리인지라 허투루 보낼 순 없다. 고작 몇 시간이지만 기사, 후보자 공약, 맘 카페에 있는 다양한 의견들을 한 번 훑어보았다. 현 서울시 교육감은 아이들에게 학업 스트레스를 줄이고 꿈을 따라갈 수 있게 해줘야 한다는 취지에서 많은 교육 정책이 생기고 사라지고, 생기고 정착하고 있다. 여러 정책마다 장점도 있지만 단점도 있고, 오히려 학습에서 빈익빈 부익부를 야기시킨다는 비판도 있다. 현 서울시 교육감은 '진보교육감'이라는 닉네임을 달고 있으며 다시 한번 출마했고, '중도보수' 진영이라며 여러 후보자들이 출마했다. 현재 실시되고 있는 다양한 정책들과 시스템들에 대한 비판과 비난도 논리가 있고 일리가 있다. 그리고 보통은 장점은 회자되기 어렵고 단점은 부각되기 쉬우니 현 정책에 대한 다양한 이야기 아래에 있는 장점도 있기 때문에 모든 의견에 다 일리가 있다. 한 해 한 해 살아갈수록 '답'이 정확한 공부가 제일 쉽다 생각하는 나다. 마치 연필로 흐리게 한 번 쓴 문장을 그다음 해에 다시 한번 눌러쓰고, 또 그다음 해에 다시 한번 눌러써서 지우개로 지워도 선명하게 글자 자국이 남는 것처럼 매년 내 마음에 '공부가 제일 쉬웠어요'라는 말을 감히 하게 된다. 답이 없는 세상사, 그래도 적어도 방향성은 있으니 회피나 외면 대신 오늘은 '기록'을 택했다. 조사하며 접한 모두의 의견은 타당했다. 그러나 동의할 수 없는, 슬픈 부분이 하나 있었으니, 교육에도 여전히 적용되는 '보수'와 '진보'의 두 가지의 프레임이다.
다음 지문을 읽고, 현 상황에 가장 적합한 교육감을 고르시오.
누굴 뽑으면 좋겠냐는 질문에 대한 답이 그렇게 쉽게 나오지 않는다. 교육감 선거는 단지 한 개인의 교육이라는 중요한 분야에서의 권력자로의 등극이라는 점에서 중요한 것이 아니다. (후보자에겐 그러하겠지만) 어떤 리더가 당선되느냐는 사실 우리가 그간 고민하고 노력해왔던 것에 대한 반증이고 이 선거는 공동체의 교육에 대한 생각을 평가하는 것과 같다. 즉, 시험이다. 선거라는 특성상 다수의 선택에 의해 리더가 결정되기에 다수가 공감하는 생각을 내세운 자가 당선될 것이다. 지난 몇 년 간 우리는 무엇을 고민했는가? 어떤 경험을 통해 어떤 생각을 향유하는 거? 어떤 방향을 원하는가? 어떤 공동의 가치관을 정립해오고 있는가? 사실, 선거는 리더가 바뀌는 것이 전부가 아닌, 공동체의 생각을 테스트하는 것이다. 후보들은 문항이다. 이런 중요한 시험을 앞두고 '보수'냐 '진보'냐를 선택해야 한다는 것이 조금 서글프다. 교육에도 적용되는 이분법과 정치 성향이라니. 토론회 자료를 찾아보았다. 역시나 정치판이다. 깎아내리기. 그런데 항상 의문이다. 많이 배우신 분들이 타인을 깎아내리면 본인이 더 못나 보인다는 것을 정말 모르시나? 아니면 정치는 원래 그렇게 하는 것인가? 왜 정치로 교육을 하려고 하는 걸까? 아이들이 뭘 배워야 하는지,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 이 사회는 어떤 곳이어야 하는지, 대학은 어떤 곳이어야 하는지, 그 뻔한 질문에 대해 단 1년이라도 고민을 해보시기는 했을까? 대치동에서 지리산까지 다양한 아이들의 상황을 간접적으로라도 접해본 분이, 여러 분야에 대한 경험이 고르게 있는 분은 없을까? 본인의 자아실현을 위한 출마가 아니라, 어떤 멋들어진 교육 방향은 아니아도 최소한 어려운 자리지만 아이들과 부모님들의 고충을 파악하고 조금이나마 해결해주고자 하는 오지랖 넓은 후보자는 없을까? 적어도 색깔 논쟁으로 자기와 다른 성격의 교육감이 일군 정책을 모두 갈아엎어 국고도 인력도 낭비하는 소모전이 아닌, 면밀히 살펴보고 전문가나 실무자의 이야기에 경청하여 이어질 것은 이어가고 정리할 것은 정리하고 개선할 것은 개선하고, 새로이 할 것은 새로이 하는 그런 대인배는 없을까? '하브르타'니 '플립드 러닝'이니 자체로는 그 뜻도 명확히 할 수 없는 외국 교육용어로 된 겉만 번지르르한 정책이 아닌 지금 우리가 가지고 있는 장점을 잘 살리고 선조들의 지혜를 잘 이어갈 수 있는 지혜를 겸비한 분은 없을까? 너무 많은 걸 바란다면 적어도 자신의 존재감을 드러내기 위해 권력은 없어도 당장 눈앞에 있는 아이들에게 어떤 것을 해줄까 고민하는 선량한 교사들의 시간을 빼앗는 이상빠꼬롬한 행정 업무를 시키지 않는 분이 교육감이 되길 바란다. 제발, 플리즈.
어떤 교육이요? 가르치는 게 업인 나도 이 세상 변하는 속도를 그나마 조금이라도 따라가 보겠노라 배움을 계속한다. 학교 교육하며 먹고사는 나는 매일 학생들에게 학교 교육이 전부가 아니라고 세상을 넓게 보자며 버릇처럼 말한다. 세상을 살아가려면 이런 게 아이들에게 필요하겠구나 싶어 내게 있는 권한에서 요렇게 조렇게 판도 짜 보고 길도 터 보며 함께 일 년에 두 학기를 보낸다. 그리고 각자가 설정한 목표에 잘 도달할 수 있도록 응원하고 지지하고 돕는다. 그리고 학교의 '선발'의 기능을 위해 시험 문항도 만들고, 채점도 하고, 아이들의 특성에 대해 기록한다. 가르칠 땐, 내가 맞다고 확신하고 가르친다. 생활지도에서는 아이들의 생각을 궁금해하고 듣는다. 실수하거나 잘못했을 때, 이게 아니다 싶은 상황에서는 진심으로 사과한다. 세상의 어른들은 아이들에게 꿈을 가져라라고 말하지만 나는 적어도 그 꿈을 이루려면 현실에서 무엇을 해야 하는지 알려주고 때로는 닦달해야 하는 역할인지라 아이들에게 '현실'에 대해 얘기도 자주 한다. 그리고 아이들이나 나나 현장에서 사회가 만든 '현실'과 '구조' 그 자체에만 집중해야 할 때가 있다. 구조를 비난할 순 있지만 나도 아이들에게 '어쩔 수 없는 사회'라고 말해야 하는 그 순간이 가장 치욕스러웠던 적도 있다. "선생님, 저희 왜 이렇게 힘들어야 해요."하고 말하는 아이에게 해줄 수 있는 말이 없어 부끄러웠던 그 순간을 잊을 수 없다. 그렇다고 "현실과 싸워 이겨!" 또는 "원래 그래." 또는 "이제 시작이야 인마,,"라고 말해주지 않았다. 직업윤리를 갖추되 인생 선배로서 현실을 이야기하지만 또 돌파구를 찾아본 경험을 바탕으로 응원하는 수밖에. 나도 아직 답을 내린 건 아니야, 같이 찾아보자. 이게 최선이었고 진심이다. 이 시스템에 안착한 교사인 나는 교육의 대상이 아이들이기도 하지만, 나도 아직 그 연장선에 있다고 생각해서 뭐 하나 확실하게 말할 수가 없다. 그래, 명쾌하지가 않다. 인생에 명쾌한 건 숫자로 딱 떨어지는 내 월급뿐인 듯하다. 열린 가능성에서 그렇게 아닌 것에 대해서는 하소연하며 우리 같이 한 걸음 앞으로 가보자. 적어도 희망은 버리지 말고.
그래 결국은 뭐하나 쉬운 게 없다. 답이 있는 과목을 가르치고, 답이 있는 시험 문제를 내지만 '교육'이라는 두 글자에 얽히고설킨 다양한 사람들의 상황과 이야기를 듣고 접할수록, 점점 교육에 대한 정의는 쉽지 않다는 쪽에 무게를 싣는다. 거시적 관점에서 교육에 대한 생각은 계속 나누되, 미시적 관점에서 지금 개개인이 가지고 있는 욕망과 연결된 교육의 역할에 집중하며 사소해 보이고 하찮아 보이는 것들에 애정을 쏟고 노력과 성을 다하고 있다. 관계자 모두의 한 마디 한 마디가 다 맞는 말씀인지라 거참 어렵다. 자, 손가락 썰은 다 풀었다. 이제 내가 할 일은 열과 성을 다해 아이들이 써 내려간 암호를 해독하며 신뢰성과 공정성을 갖추고 채점하는 것! 모두의 즐거운 토요일을 바라며.
누가 뭐래도 저는 '미래를 만진다(touch the future)'는 마음으로 삽니다.
내 교직 인생에 종지부를 찍는 날까지는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