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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보통교사 May 15. 2022

"요즘 애들"의 스승의 날 편지

까칠하고 까다롭고 섬세한 교사가 강제로 받아낸 편지

5월이다. 스승의 날이 어김없이 돌아왔다. 이번엔 일요일이라 당일에 아이들을 만나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그냥 넘어갈 아이들이 아니다. 주말을 앞둔 금요일에 올해도 따뜻한 인사와 마음을 받았다. 


처음엔 스승의 날이 너무 어색했다. 담임이라고 의례껏 깜짝 파티를 해주는 것도 부담스러웠다. 왜냐면 우리가 아직 '감사'를 말하기엔 내 기준에서는 시간이 짧았다. 그래서 종종 스승의 날이 졸업식 즈음이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할 때도 많았다. 그 때의 감사는 온전히 내 것일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리고 내가 '직장인' 그 이상으로 학생들에게 마음을 쏟았나에 대한 자체 검열 때문이었다. 나에게 '스승'이라는 말은 훨씬 무게감 있고 어려운 단어였다. 그 시간을 지나고 나서 생각해보면 처음이라 어색했고, 맞지 않은 옷을 입은 듯 민망했고, 쑥스러웠고, 부담스러워 그런 불편한 마음이 들었던 것이다 싶다. N년차 교사는 한 해 한 해 거듭하며, 현장에서 배우고 실수하며, 그리고 아이들과 함께 하며 '스승'의 무게를 견딜 수 있는 마음 그릇을 키우고, 또 한편으로는 그 두 글자에 너무 많은 의미를 두며 사로 잡히지 않고 그냥 나는 나의 시간을 살며 배우고 아이들은 아이들의 시간을 살며 배운다며, 너희도 나의 스승이라며 함께함을 축하하는 날로 생각하고 있다. 세 사람이 걸어가도 그 중 한 사람은 나의 스승이라는데, 누구에게나 배우고 누구에게나 느낄 수 있으니 말이다. 


사실 또 하나 불편했던 것은 아이들이 건네는 메시지였다. 요즘은 아이들이 열에 여덟은  '선생님, 스승의 날 축하합니다!'라고 한다. 내가 어휘에 섬세한 건지(예민하다고는 표현하지 않겠노라) 스승인 것이 왜 축하할 일인가? 내가 학생 때도 스승의 날을 축하한다고 했던가? 내 기억과 내 사전엔 스승의 날엔 '감사합니다' 였지, '축하합니다'가 아니었다. 둘의 차이를 잘 모르겠다고 하는 분도 있을지 모르겠지만 '교사'임을 축하 받는 날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또한 교사의 날이 아니라 스승의 날이고 내가 배우고 알기론 스승의 날은 나를 가르쳐주시고 지도한 선생님에게 '감사한 마음'을 전달하는 날이다. 그래서 학생회를 맡았을 땐 스승의 날 행사를 준비하는 아이들에게 부탁했다. "얘들아, 스승의 날엔 '축하합니다' 대신, '감사합니다'를 써주면 안 될까?" 아이들이 잘 몰라서 단어를 잘못 쓰는 걸까, 아니면 감사한 마음보다는 축하하는 마음인 걸까. 전자든 후자든 조금 서글프다. 그런데... 사실 아이들은 별 생각 없이 익숙한 말을 쓰는 것일뿐....ㅋㅋ 진지한 건 나 혼자일뿐...

고백하자면, 사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축하드려요!' 인사하는 아이들을 향해 '축하한다'는 말 대신 '감사하다'나 '사랑한다' 해주면 안 되겠냐고, 입을 떼려다 꾸욱 참은 적이 참 많다. 의미를 제대로 가르쳐줘야 한다는 일종의 직업병 같은 것이었다. 그러면서 한 편으로 그게 뭐든 그 인사가 부끄러워 온전히 마음 받지 못하고 마음 주지 못하고 후다닥 자리를 피하기도 했다. 지금 생각하면 매사에 진지하고 교사로서 높은 기준과 사명감을 가졌던 그 때의 내가 참 귀엽다. (^3^*) 이제는 그 '축하'를 온전히 그대로 받아들인다. 아이들과 함께 있을 수 있는 시간과 특권을 누리는 것에 대한 '축하'다. 


짧지만 강한 마음!


그에 비하면 지금은 상당히 노련하다. 무엇보다 현장에서의  하루하루가 '스승'에 대한 스스로의 무게를 가벼이 하고, 그리고 아이들의 감사의 조건은 '나'의 조건이 아님을 알기에 나는 스승의 날을 충분히 즐긴다. 보통 담임 교사에겐 학급에서 준비한 이벤트가 있고 학생회에서 준비한 전체 선생님들에 대한 행사가 있다. 아이들의 아이디어에 매년 감탄하는 날이다. 감사를 표현하는 것도 삶의 태도라 생각하게 된 나는 이 시즌이 되면 수업시간에라도 편지쓰기를 시킨다. 문자로 메시지로 챗으로 다 표현하는 시대에 오늘만큼은 아날로그다. 펜과 종이를 들고 마음을 적어 내려가게 한다. 처음에는 다른 선생님들에게 편지 쓰기를 시켰는데, 이젠 대놓고 수신자를 '나'로 정해서 알려주고, 선생님과 나누고 싶은 영어문장- 팝송이든, 명언이든, 어디에서든-과 함께 우리말 또는 영어로 마음 없어도 감사를 표현하는 일명 '사회생활 지수 향상을 위한 특별 영어 과제'를 내준다. 번지르르한 이유를 달아 보자면 살아보니, 감사하지 않아도 쓰다 보면, 찾다 보면 감사한 게 생기고, 또 감사하는 이에게 득이더라. 그 복이 쌓이더라. 그래서 아이들도 이런 날이라도 감사를 적었으면 좋겠다. 그리고 나도 그 마음을 받고 우리의 마음이 상호 '통'하였으면 좋겠다. 그리고 올해는 담임이 아니라서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아이들 마음을 만날 일이 없을 것 같아 선수치는 사심도 있다. 담임이 아닌 선생님까지 챙기기란 아이들에겐 쉽지 않으니 말이다. 학생회가 챙겨준 덕에 올해도 스승의 날은 따뜻했다. 그리고, 지나간 아이들의 연락에 또 고맙다. 


짧지만 위로하는 글을 담은 아이


물리적 시간은 충분하지 않았지만 이 시간 자체가, 스승의 날이라는 이벤트 아래 학생이라는 '그들'과 교사라는 '내'가 '우리'가 되는 시간의 일부라 소중하고 의미있다. 그리고 또 바쁘다 바빠 현대인의 삶을 살다 공식적으로 나의 스승님들을 떠올리고 감사하다는 마음을 전하는 날이라 소중한 날이다. 나의 옛 시간에 존재해주신 감사한 스승님들과 그리고 현재 내 곁에서 함께 하며 인생이라는 과목의 스승이 되어주는 동료와 친구들. 모두 나의 스승이다.  


필력에 유머가 가득한 아이

여담이지만 김영란 법이 시행됨과 함께 교직을 시작했던 터라 스승의 날이라고 미디어에서 종종 나오듯 뭔가 물질적인 것을 받은 적은 없다. 그래서 신규 때 다른 분야에 있는 친구들이 스승의 날이면 무슨 선물 받았냐는 질문에 편지~ 라고 대답하면 예상했던 답이 아니라는 듯한 반응을 보는 재미도 쏠쏠했다. 





아무튼 매년의 5월 15일. 나는 스승의 날이라 쓰고 '마음을 나누는 날'이라고 읽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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