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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보통교사 Apr 23. 2022

3년 간 무슨 일이 있으셨던 거예요?

몇 년 전 졸업앨범을 본 학생에게 팩폭 당하면 제 기분은요 


"선생님, 3년 간 무슨 일이 있으셨던 거예요?"

어느 날 귀여운 1학년 학생이 물었다. 몇 년 전 졸업앨범을 본 모양이다. ㅋㅋ 귀엽다. 3년 간 무슨 일이 있었냐고? 표현력도 좋네 짜식. 이 질문의 의도를 안다. 누나나 형이 있는 아이들이 종종 몇 년 전 졸업앨범을 보며 선생님들의 지난 날을 보기도 하고 선배들의 왕년을 확인하며 즐거워 한다. 


선생님, 왜 이렇게 노화하셨습니까!!!  

그러게나 말이다. 돌려까기로 팩폭을 당하지만 나쁘지 않다. 그마저도 아주 뜨뜻한 관심이기에 고맙지 뭐. 게다가 '3년 간 무슨 일이 있으셨냐'니 ㅋㅋ 저렇게 표현하는 센스가 그냥 귀엽다. '3년 전엔 아이유 같으셨네요' 라는 나만 듣기 좋은 거짓말도 잊지 않고 해주니 참으로 넌 대성할 것이다... 하, 이것은 무슨 할머니가 손자를 대하는 마인드인가. 좀 편협한 할머니.




종종 선배 선생님들 중에 졸업앨범 사진을 안 찍고 예전 것을 내겠다고 하시는 분들이 있다. 자신의 현재와 만나고 싶지 않다며 새로 찍지 아니하시고 자신의 기준에서 넘겨줄 수 있는 왕년의 자신으로 앨범에 남고자 하시는 것이다. 이해할 수 있다. 나도 이제 더이상(?) 성장이 아닌 노화라는 단어가 더 친근한지 오래인지라, 매년 나도 모르게 내 신체에 깃드는 '나이'와 난 달라진 게 없는 것 같은데 나의 옛날 증명사진을 어쩌다 동료 샘이 보시면 "어머~ 이게 누구야" 하실 때 나는 적잖게 당황하며 현실과 마주한다. 나의 노화를 말이다. 그래서 더 먼저 앞서 인생을 살고 계신 선배들이 옛 사진을 쓰겠다는 그 마음이 십분 이해가 간다. 그러나 동료인 나조차도 '동일인물이라고요?' 싶은 사진을 내시면 '그 세월을 겪어내신 지금의 모습도 아름다우십니다..그리고 요즘 사진 기술 좋아서 우릴 현재의 최고의 모습으로 만들어줄 거예요.' 하며 같이 찍으로 가시자고 꼬득인다. 가장 좋은 방법은 지금 찍고 2년 후에 보면 된다고 하신 어떤 해의 부장님의 명언을 덧붙이는 것. 미래를 생각하시자~하면 꼬득임은 작전 99.9퍼센트 성공이다. 



교사에겐 연례 행사인 '졸업앨범'이지만 그 해 아이들에겐 인생에 한 번 뿐인 소중한 앨범이기에 아이들에게 "그 해의 우리"를 남겨주자고요. 외모 말고 어떤 선생님으로 기억할지에 대해 생각하면 쵸금 자신은 없고 요즘처럼 초상권이나 졸업생의 교사 스토킹 같은 극소수의 사건으로 졸업앨범에 대한 교사 커뮤니티의 질문도 있지만, 아무튼 누군가의 추억에 한 꼭지가 되는 중요한 것이니.... 아무튼 사진 작가님, 당신의 손 끝이 매우 중요합니다.  



그래도 10대와 지내는 삶 덕에 마음은 천천히 늙는다. 아이들에게 받는 그 에너지는 상당하다. 물론 진 빠짐에 출근하고 집에 오면 뭐 딱히 안 하고 수업만 했는데도 그렇게 피곤할 수가 없지만 다른 맥락에서 일주일 중 5일을 아이들을 만난다는 건 상당한 복이다. 쉽게 흥분하고 뜨거워지는 아이들을 보며 나도 따라 금방 마음이 뜨거워지고 방방 뛰어다니며 작은 것에 울고 웃는 아이들을 위로하고 축하해주며 드라마 보다 더 잦은 클라이막스를 만난다. 눈높이를 어찌 맞춰야 하는지 모르겠고, 내가 고작 이거 가르치려고 그 공부를 했나 싶은 교만한 생각을 한 초창기를 생각하면 아이들과 함께하는 시간이 나를 시나브로 어깨뽕 가득했던 어른같아 보이는 아이 하나를 거품기 빼고 땅에 발을 붙인 채 생각하고 느낄 수 있는 하나의 사람으로 만들어가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높낮이의 문제가 아닌 그 아직은 표현하기 어려운 어떤 것으로. 





이미지출처: https://www.alamy.com/open-high-school-year-book-with-blank-faces-isolated-on-white-background-image243645589.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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