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로네 Jun 24. 2021

미국 대학원에서는 협상을 이렇게 배웁니다

보스턴에서 듣는 국제관계 대학원의 협상 수업



작년에 매사추세츠 주에 소재한 국제관계 대학원에 진학하게 되었다. 첫 학기부터 가장 먼저 듣고 싶었던 수업은 바로 협상 수업이었다. 영어 때문에 걱정은 되었지만 정말 배워보고 싶었다. 제대로 된 협상 수업은 아무데서나 배울 수 없기 때문이다. 국제관계 대학원의 협상 수업은 경영대학원이나 로스쿨에서 배우는 협상과는 조금 다르다. 협상이 벌어지는 상황이나 이해당사자, 그리고 주제가 조금씩 다르다. 기후변화 협약이라던지, 방위비 분담금 협상이라던지, 무장테러단체에 납치된 자국민 구출 협상이라던지 하는 것들은 모두 국제 '정치적' 협상이다. 물론 협상 주제에 따라 기업, 군, 과학, 세금, 정책, 법과 같은 다양한 전문 분야에 걸쳐지기도 한다.


그래서 경영대학원이나 로스쿨에서 배우는 협상과 겹치는 부분이 많다. 앞서 말했듯, 협상 자체가 매우 multi-disciplinary 한 영역이라 정치, 경영, 법이라는 임의의 경계선으로 나뉘지 않는다. (미국에서 법에 대한 지식 없이 협상을 한다는 것은 말이 안 되는 일이기도 하다.) 또 관련된 이론이나 협상을 하는 기본적인 원칙도 비슷할 것이다. 




이번 글에서는 왜 보스턴에서 협상을 배우기 좋은지, 무엇을 어떻게 배우는지 알아보고자 한다.



◆ 왜 매사추세츠 보스턴인가


감히 나는 보스턴을 협상학의 메카라고 하겠다 [1]. 이곳에서 협상을 배우는 것은 좀 특별하다. 다른 지역에도 대학교가 많고 특히 미국 정치의 중심지인 워싱턴 DC도 그만한 기회가 있을지 모르겠다. 하지만 보스턴은 좋은 학교들이 집약적으로 위치해있다. Harvard, MIT, Northestern, Tufts, Boston College, Boston University 등. 보스턴 근교를 조금만 벗어나도 좋은 연구중심 대학이 많이 위치해있다. 이 중에서도 협상학의 탄생지라고 할만한 하버드는 케네디 스쿨, 경영대학원, 로스쿨, Government까지 협상을 필요로 하는 전공들은 다 모였다. 우리 학교도 하버드에서 협상을 배우신 교수님들이 가르치신다. 협상 수업이 개설이 되지 않는 학기에는 교차수강이 가능한 하버드 케네디 스쿨에서 수업을 들으면 된다고도 들었다. 그런 의미에서 교수진들 간의 많은 부분의 협업과 정보 공유가 많다는 뜻이다. 


또한 다른 지역에는 정치학이나 국제정치 전공 내에 협상 수업을 개설하는 학교가 많지 않다. 유학 준비할 당시, 유사한 다른 학교의 커리큘럼을 살펴본 적이 있다. 그런데 이렇게 협상 수업을 개설하는 국제대학원은 수업은 그렇게 많지 않았다. 역시나 경영대학원이나 로스쿨에 가야지만 배울 수 있는 것인가 싶었다. 우리는 일상에서도, 회사에서도, 아주 많은 경우에 협상을 해야 하는데도 말이다.



◆  무엇을 배우는가


1. 이론과 실무

워낙 이론과 실무의 균형을 중시하는 학풍에 따른 것일지도 모르겠지만, 협상은 실습이 반드시 따라와야 하는 것이 맞다. Trial and Error을 통해, 그리고 훈련을 통해 체득하며 배우는 것이기 때문이다. 필자는 학부 때 협상 이론만 겉핥기 식으로 배웠던 것이 너무 아쉬웠다. 하지만 이곳에서는 이론과 실무를 같이 배운다. 수업시간에 언급된 학자들은 Robert Putman, Fisher & Ury,  David Lax, Sebenius James 등이 있다. 기회가 된다면 자세한 내용은 추후 다뤄보도록 하겠다.


2. 과정을 배운다

필자가 들은 수업의 경우, 협상을 하는 '과정'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 특정한 사례를 수업시간에 분석하기보다는 협상 과정을 몸소 겪어보며 어떤 점이 어려운지, 개인에게 어떤 능력이 필요한지를 탐색하는 것이 목표였다.



◆  어떻게 배우는가


1. 수업 자료

우리말로 이미 번역된 협상에 대한 아주 대표적인 책이 있다. <Yes를 이끌어내는 협상법>, <당신은 협상을 아는가> 같은 책들은 일단 필독서였다.


그 외 수업시간에 쓰는 자료들이 정말 유용했다.

https://www.pon.harvard.edu/store/ 에 가면 Role Simulations를 해볼 수 있는 자료들을 구입할 수 있다. 참여 인원, 시간, 배워야 할 협상 개념들에 맞춰서 자료를 고를 수 있다. 물론 영어로 되어있고 유료로 구매해야 한다. 수업시간에는 내가 자료를 직접 선택하지는 않았다. 교수님들이 고른 자료로 진행했다. 자료 안에 등장하는 협상 사례들은 종종 가상의 국가와 지명을 사용하기도 한다. 실제로 있었던 협상 사례를 가공해서 만든 것 같았다. 실제 협상 케이스를 그대로 옮겨놓은 자료도 있다.


이 외에도 Reading list는 그날 배울 내용과 관련된 논문이나 저널을 이용했다. 다행히 책은 한국어로 읽었지만 논문 읽어가랴, 협상 준비해 가랴, 과제 내랴 정신없이 바쁜 일정이었다.



2. 수업 방식과 진행


1) 온라인 

코로나로 인해 온라인으로 수업을 진행했다. 따라서 대면하여 협상을 연습한 것이 아니라 Zoom으로 한 것이다. 이것은 새로운 기회였다. 요즘 같은 시대에, 협상을 온라인상으로 하게 될 일은 얼마든지 생길 수 있기 때문이다. 오히려 소그룹 회의실에 들어갔다가 나오는 시간이 설정되어 있어, 협상 시간을 엄수할 수 있었다.


2) 역할극(시뮬레이션)

교수님이나 TA가 수업 한주 전에 이메일로 각각의 학생들에게 서로 다른 지령이 적힌 자료를 보내준다. 마치 런닝맨에서 다른 참가자 모르게 나에게만 지령이 떨어지듯이 말이다. 다른 역을 맡은 친구와는 내용을 공유할 수 없다. 내가 가진 자료를 토대로 협상을 준비해야 하는 것이다. 


위에서 언급한 사이트에서 구할 수 있는 협상 수업 자료에는 협상에 참여하는 참가자마다 역할과 지위가 나뉜다. 예를 들어, 2명이 협상을 하는 경우, 자료는 당사자 A가 볼 자료와 당사자 B가 볼 자료, 그리고 공통으로 볼 자료가 나눠져 있을 것이다. 교수님의 주도 하에 수업의 절반의 학생들은 A지령을, 다른 절반은 B지령을 이메일로 받는다. 각자 받은 자료를 토대로 준비해와서 먼저 수업시간에는 A를 맡은 친구들끼리 모여서 어떻게 협상할 것인지 아이디어를 공유한다. B도 마찬가지이다. 그러고 나서 A-B 두 명씩 짝을 지어서 협상을 해본다. 끝나고 브리핑을 하며, 잘했던 것 어려웠던 것들을 공유한다.  


이때 실라버스와 수업 한주 전에 교수님이나 TA가 보내주시는 이메일이 아주 중요하다. 그곳에 다음 협상 때 필요한 자료와 준비해야 할 것들이 다 정리되어 있기 때문이다.



3) 평가

협상 시뮬레이션과 그에 따른 협상 결과는 평가하지 않았다. 협상도, 영어도 아직 서툰 나에게는 천만다행이었다. 그래서 이 수업을 들을 용기가 났던 것일지도 모른다. 불리한 협상 결과를 얻어도 감점될 게 없으니 말이다.

오히려 얼마나 잘 참여하는지를 평가한다. 그리고 중간, 기말 과제로 하게 될 협상 분석 페이퍼를 채점한다. 덕분에 나도 협상은 잘 못했지만 점수는 좋은 점수를 받았다.


중간 과제는 '국제적인' 요소가 들어간 협상 하나를 분석하는 것이었다. 배운 이론을 토대로, 무엇이 안건인지, 쟁점은 무엇인지, BATNA는 무엇인지 등에 대해서 말이다. 꽤 길게 써야 했다. 기말 과제는 그 사례를 토대로 협상 당사자에게 '이렇게 협상을 진행하세요'라고 컨설팅을 해주는 것이었다. 기말 과제는 교수님 앞에서의 발표와 policy memo 중 형식은 본인이 선택할 수 있었다. 나는 첫 번째 과제는 방위비 분담금 협상에 대해 썼고 이를 토대로 두 번째 과제에서 우리나라 외교부 장관에게 컨설팅을 해드렸다...^^ 가상의 상황이니 괜찮다.



◆ 누가 가르치는가


한 학기 수업을 다 듣고 나서 느낀 것은, 우리 학교에서 가장 단가가 높은 수업은 이 수업이 아닐까 싶었다. 분반 3개에 교수님 4분이 가르치시기 때문이다. 수업 인원은 20명 이내가 적절해보였다. 하지만 우리 분반은 그보다는 좀 더 많았다. 첫날에는 교수님들이 한 수업에 다 들어오셔서 재밌는 협상 게임을 운영해주셨다. 마지막 수업 때도 특정 주제에 특화되어 있으신 교수님이 들어오셔서 수업을 진행하셨다.

교수님들은 변호사로서, 혹은 국제기구나 NGO에서 협상을 경험해보신 분들이었다. 학교든 지역사회든 분쟁이 있는 곳에서 conflict resolution process(분쟁해결 과정)를 컨설팅해주시는 교수님도 계셨다. 사실 협상은 실제 경험 없이 가르치기는 힘들다. 또한 교수님들은 대체로 JD(Juris Doctor) 학위를 를 갖고 계시거나 JD와 정치학 PhD가 있으신 분들이었다.




다음번에는 미국에서 배운 협상 수업과 관련된 지식들에 대해 조금 더 포스팅해보도록 하겠다.



[1] <3D Negotiation>의 번역서인 <당신은 협상을 아는가>의 번역자 또한 보스턴을 협상학의 메카라고 지칭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