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경치사냥꾼 Jun 23. 2020

NF쏘나타가 잘 어울리는 남자

내가 선택한 맑은 가난

단돈 100만원


이면 내가 타고 다니는 차를 살 수 있다. 바로 NF쏘나타 2005년식 LPI의 중고시세다. 내 카메라(후지필름 X-T30)보다는 조금 싸고, 내 스마트폰(갤럭시 S9 64G)보다는 조금 비싸다. 설명을 조금 보태자면, 한 때 도로를 점령했을정도로 택시차량으로 가장 흔하게 쓰인 차종인데 하필이면 은색에 초록색 번호판을 달고 있어 영락없는 택시 그 자체였다. 하물며 이제는 택시로도 쓰이지 않을 정도이니 얼마나 오래되었는지 말할 것도 없다. 이 차와 관련된 두가지 에피소드를 간략히 소개해본다.



에피소드. 누나의 첫번째 상견례


몇해전에 치뤘던 누나의 상견례는 우리 가족이 처음으로 다른 집안과 집안 대 집안으로 만나는 자리였다. 어렵사리 자리를 마치고 각자 차를 타고 주차장을 나서는데 이게 왠일, 그 집은 벤츠 우리집은 NF쏘나타(feat. No세차)였다. 맹수를 만난 초식동물처럼 본능적으로 움츠러든 나는 엄마에게 이렇게 말했다.


"엄마 차 바꿀까?"


물론 차 때문은 아니었겠지만 누나의 첫번째 상견례는 결국 없던 일로 되었고 차를 바꾸려했던 찰나의 마음도 없던 일이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여전히 이 차를 타고 다니고 심지어 바꿀 생각이 추호도 없다. 오히려 주변 사람들로 하여금 나를 각인시키는 시그니쳐가 되었는데 그 점이 참 마음에 든다.


"은색 NF쏘나타 with 초록색 번호판이 어울리는 남자"


물론 몇번의 위기가 있었다. 첫번째 도전자는 폭스바겐 골프였는데 갓 취직했을 때인지라 짓눌렸던 허영심이 폭발했고 외제차에 대한 로망이 생겼었다. 두번째는 그랜져였는데 어릴 때부터 막연한 동경이 있었다. 어른이 되면 아니 남자가 되면 나도 그랜져를 몰아야지와 같은 클리셰의 전형이랄까. 세번째는 미니 클럽맨으로 현재 진행형인데 길에서 마주치는 모든 클럽맨들이 나를 유혹하고 있어 버티기 힘들 지경이다. 그정도로 나의 라이프 스타일에 안성맞춤이고 내가 추구하는 이상적인 디자인에 가장 가까운 녀석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계속해서 NF쏘나타를 타고 다닐 것이고 퍼지기 전까지는 바꿀 생각이 추호도 없다. 왜냐하면 이 차는 내 삶의 철학을 상징하는 피조물이기 때문이다.


차는 모름지기 굴러만 가면 된다. 그것이 바로 차를 소유하는 목적이다. 디자인이 예뻐서라든지 남들로부터 부러움을 사기 위해서와 같은 이유로 값비싼 차를 사는 것은 적어도 내게는 용납할 수 없는 일이다(물론 안전은 매우 중요한 요소다). 이는 필요에 따라 사되 욕망에 따라 사지 말자는 내 소비 철학과 일맥상통한다. 때로는 구두쇠로 보일 수도 있지만 내가 소유하고 있는 것으로 나를 대변하고 싶지 않다. 남의 시선을 의식하여 나를 포장하지 아니 하고, 있는 그대로의 나를 내보이고 싶다.


필요에 따라 살되 욕망에 따라 살지 않고 싶다. 적어도 그정도면 충분하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달린다, NF쏘나타와 함께.


무소유란 아무 것도 갖지 않는다는 것이 아니라 불필요한 것을 갖지 않는다는 뜻이다.

우리가 선택한 맑은 가난은 부(富)보다 훨씬 값지고 고귀한 것이다.

- 법정스님의 무소유 中 -


무엇도 소유하지 않았던 고비사막의 한가운데에서


하지만 최근 결혼을 준비하며 내 안에 숨어있던 속물근성을 수도 없이 마주쳤고 그때마다 매번 그에게 패배했다. 이와 관련된 이야기는 다음 이 시간에.








작가의 이전글 두 바버, 비기닝2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