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행시작’을 누르고 낚시꾼의 심정으로 기다려본다. 허나 어떠한 파동도 일지 않는다. 그도 그럴 것이 우리집은 아파트와 주택으로 둘러 쌓여있어 근방에 음식점이 거의 없다시피 하다. 호랑이를 잡으려면 호랑이굴로 가라는 말이 있지 않은가. 동장군에 맞설 수 있도록 중무장을 하고 집을 나선다. 안 잡히면 산책이나 해야지, 라고 생각하는 찰나 귓구멍에 알림음이 울린다. 기다리던 바로 그 놈, 배차다. 픽업위치는 신설동역 근처, 내리막길 최단경로로 약 8분거리. 전달위치 또한 역 근처로 가보지는 않았으나 지도상으로 엎어지면 코 닿을 거리다. 이래봬도 한국지리, 세계지리, 경제지리로 수능을 치른 삼지리 아니겠는가. 지리를 읽는 능력은 그야말로 지린다.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배차를 수락한다. 픽업까지 주어진 시간은 11분, 이후 전달까지 10분. 다리가 내 마음을 알아차린 것마냥 달리기 시작한다.
‘김치조아’라는 음식점 앞에 늦지 않게 도달했다. 들어가서 말하고 기다려야하나, 조리가 완성될 때까지 밖에서 기다려야하나 그것이 문제로다. 바로 그 때 나의 정체성을 되새긴다, 나는 배민커넥터다. 당차게 문을 열고 큰 목소리로 작게 소리쳤다, ‘배민이요’. 뭐랄까, 미성년자 신분으로 술집에 들어간 기분이랄까 혹은 공익인데 제대했다고 한 기분이랄까, 다소 쑥스러워하는 나와는 별개로 주인은 거칠게 김치찌개를 용기에 담았다. 아 플라스틱, 인간의 삶을 편리하게 만들어주는 그러나 결국 부메랑처럼 되돌아올 저 플라스틱, 과 같은 낭만적 감상을 뒤로한 채 ‘가게도착’을 누르고 검은 봉다리를 건네받고 ‘픽업완료’를 누른다. 내게 주어진 시간은 10분. 국물이 흐리지 않도록 안전하게, 수신인이 안달나지 않도록 신속하게 김치찌개님을 모시고 도착지에 도달했다. 허나 주소지에 적힌 부속건물은 보이지 않는다. 남은 시간은 1분. 겁도 없이 주건물의 벨을 눌러 물어본다. ‘김치찌개 시키신 분’. 내 인생에 이런 대사를 치는 날이 올 줄이야. 하긴 곧 결혼도 하는데 뭔들 못하랴. 주건물의 직원은 익숙한 듯 나를 부속건물로 데려간다. 그리고 무사히 부속건물의 수신인에게 김치찌개를 건네며 물었다. ‘사전계산 다 되신거죠?’. 그렇다 나는 초보 배민커넥터다.
한 건 했다고 여자친구(곧 배우자)와 친구들에게 알리는 찰나, 새로운 배차가 들어왔다. B마트다. B마트란? 마트 물품을 배달하는 것으로, 물품은 각 구역의 B마트 본진에서 포장된다. 바로 지도를 확인해본다. 오호라 아는 위치다. 지난 겨울 여자친구와 LP바를 찾아갔던 건물이자 회사 영업대리점이 위치한 건물이다. 이런 곳에 본진이 있었군. 나는 또다시 달렸다. 달려간 그곳에는 나와는 달리 헬멧을 장착한 전문 배달인들과 나와 같이 무소유의 도보 배달인들이 엘리베이터를 기다리고 있었다. 4층 문이 열리자, 포장된 비닐봉투를 바삐 옮기는 직원들이 보인다. 비닐봉투, 환경오염의 한 축을 담당하는 녀석, 이라는 생각은 집어치우고 프로세스를 파악한다. 1) 직원이 주문받은 물품을 선별해 비닐봉지에 담고 주문정보가 담긴 영수증을 붙인다. 2) 주문번호 끝자리별로 나누어진 선반에 해당 비닐봉지를 놓으며 주문번호를 외친다. 3) 배달인은 주문번호를 확인하고 영수증에 붙은 QR코드를 스캔하여 픽업을 완료한다. 4) 배달을 시작한다. 내게 배정된 주문번호를 확인하고 비닐봉지를 픽업해 나간다. 떠나려던 엘리베이터 안의 배달인이 나를 보고 열림 버튼을 눌러준다. 이것이 동료애다. 나도 이제 진정한 배민커넥터다.
- 도보의 경우 B마트 본진 근처 배회 추천. 배차가 잘 잡히고 음식 대비 배달이 용이.
- B마트의 경우 물품을 배차 전 필히 확인. 생수처럼 무거운 물품이 여럿 들었다면 낭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