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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경치사냥꾼 Feb 07. 2022

외식은 사랑을 싣고

동묘갈비는 사랑


외식할까?


확진에 확진이 거듭되어 격리가 길어졌다. 2주간 아내와 나는 자택격리를 했고 삼시세끼 집밥만 먹어야 했다. 배달 시스템이 워낙 발전해 마음만 먹으면 뭐든 시켜먹을 수도 있었다. 하지만 나는 배달음식에 강한 거부감을 가지고 있었기에 그 흔한 배민 앱을 한 번도 켜지 않았다. 배달음식을 싫어하는 이유는 세 가지다. 먼저 플라스틱 용기가 쌓이는 게 보기 싫다. 내 돈 주고 산 것도 아닌데 버리기는 왜 또 그리 아까운지 모르겠다. 둘째, 주방환경과 조리과정이 베일에 쌓여있다 보니 위생이 의심스럽다. 특히 외부에 랩핑을 하여 밖에서 안이 보이지 않게 해 놓은 배달전문 음식점들을 지나칠 때면 의심이 가중된다. 마지막으로 속이 더부룩하다. 배달음식의 대부분은 밀가루 기반이라 먹고 나서 속 편한 적이 별로 없다. 가뜩이나 장이 안 좋아서 남들보다 더 그렇게 느낄 수 있다. 주식 장이라도 좋았으면 좋으련만.  대신 마켓컬리에서 반조리식품을 구매해 끼니를 간신히 때워나갔다. 단조로운 식단에 변주를 준 마켓컬리에 감사의 인사를 전한다. 설상가상으로 격리가 끝나갈 즈음 미각을 상실해 얼마 없던 입맛까지 떨어졌으니 식욕이 0에 수렴할 지경이었다. 보통 미각이 돌아오는데 2주 정도 걸린다고 했는데 다행히 이틀째 라볶이의 매운맛 덕분에 조금씩 찾아갔다. 격리해제가 되자마자 기분전환도 할 겸 을왕리로 바람을 쐬러 갔고 겸사겸사 조개구이를 먹었다. 미각과 더불어 식욕이 완전히 돌아왔다. 알다가도 모를 인체의 신비.


그리고 월요일이 돌아왔다. 격리해제 후 2주간 재택근무라는 회사 지침을 따르다 보니 점심에 집밥을 먹었다. 내일 점심도 집밥. 모레도 글피도 집밥을 먹어야겠지. 그래서인지 저녁이 되자 식욕도 별로 없고 입도 짧으면서 외식은 좋아하는 INFP 아내가 예상치 못한 질문을 던졌다. 외식할까? 둘 다 출근을 했더라면 저녁으로 두말없이 집밥을 먹었을 것이다. 월요일부터 외식하는 건 자린고비인 나에게 가당치도 않은 일이기 때문이다. 월요일 외식은 아무리 생각해도 과하다. 하지만 우리 부부는 격리에서 가까스로 풀려났고 또 일주일 내내 숱하게 집밥을 먹어야만 한다. 그래서 나는 나의 자의식으로부터 잠시 도망쳐 아내와 함께 동묘갈비로 달려갔다. 생갈비야 기다려라 내가 간다.



삼겹살과 생갈비를 각각 1인분씩 주문하고 오랜만에 맥주 한잔도 하자고 아내가 제안했다. 단호하게 아내의 제안을 거절하고 진로 이즈 백을 외쳤다. 삼겹살에 소주는 못참지. 동묘갈비는 신혼집 이사 오기 전부터 왔던 곳이다. 고기의 질이 좋고 무엇보다 밑반찬이 기막히다. 시래기 된장국도 맛있지만 이 집의 하이라이트는 묵은지김치다. 사장님 기분 좋으시라고 '이 김치 너무 맛있어서 그런데 어디서 사셨냐'고 여쭤봤는데, 진짜 사셨다고 한다. 그리고 비싸다고 하셨다. 난 또 사모님 솜씨인 줄 알고 칭찬해드리려 한 건데, 역시 돈으로 안 되는 건 없다. 아내와 소주 잔을 부딪치며 정치 얘기를 나누니 기시감이 들었다. 동묘라서 그런건지 단순히 티비에 대선후보들이 나와서인지 모르겠지만 우리의 모습이 영락없는 동묘 할아버지들 같았다. 그런 우리의 모습이 귀여웠다. 제발 그가 당선되지 않기만을 바란다.


성공적인 외식을 마치고 아내 손을 잡고 청계천을 지나 성북천을 걸어 집으로 돌아왔다. 별거 아닌 이야기들을 나누며 걸었는데 차디찬 바깥공기와 다르게 따뜻한 온기가 우리 사이에 피어나는 듯했다. 때로는 화딱지가 날 때도 있지만 아내와 결혼하길 참 잘했다, 고 오늘도 나는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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