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해서 웃는 것이 아니라 웃으면 행복해진다’라는 말이 있듯이 자신감도 내가 나 자신을 믿는 것 혹은 내가 나 자신을 믿지 못하는 것 ‘그 단 하나의 차이’에 있지 않을까?
겉으로 보면 별차이 없어 보이는 ‘그 작은 차이’때문에 [하고 싶다]에서 [할 수 있다]로 바뀔 수 있다. 누구나 품고 있던 자신감이 발현되는 것이다.
지금 우리는 각자 자유로운 존재로 자신의 운명을 스스로 책임져야 하는 시대에 살기 때문에 절대적으로 자신을 믿어야 한다. 자신감을 장착하며 살아야 한다. 당연히 자신 있게 살아야 하는데 어느 순간 상처받은 나 자신을 발견한다. 한 번 쪼그라든 자신감은 좀처럼 회복되질 않는다. 그러다 우연히 타인에게 칭찬을 듣게 되면 기분이 갑자기 좋아지면서 자신감이 생긴다.
‘뭐 이렇게 쉽게 회복이 된다고??’
책의 서두에 작가가 한국 독자들에게 남긴 문장이 있다.
“자신감을 가진다는 것은 결국 타인에 대한 믿음이자 자기 행동에 대한 믿음, 더 나아가 삶에 대한 믿음입니다.” 자신감은 내가 자발적으로 챙겨야 하는 것은 맞지만 사실상 자신감은 타인이 주는 것이다. 남들이 내가 할 수 있다고 믿는다면 나 역시 할 수 있다는 믿음이 생기는 것이다.
그렇게 되기 위해 내가 먼저 타인을 신뢰할 수 있어야 한다.
내가 타인을 신뢰할 수 없다면 나도 ‘내적 불안’에 시달린 나머지 나 자신조차도 신뢰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른다. 그 누구도 혼자서 자기 자신을 신뢰할 수 없다.
결국 자기 신뢰란 무엇보다 타인의 사랑과 애정이 쌓여서 생기는 것이다.
단연코 책을 통해 자신감을 잃어버리지 않을 수 있는 (나만 몰랐던) 새로운 방법은 내가 먼저 타인을 믿을 수 있어야 한다는 내용이었지만 이외에도 자신감을 끌어올릴 수 있는 여러 가지 팁들이 많다.
‘타인의 경험은 대머리의 빗과 같다’는 중국 속담처럼 나 자신의 경험과 나의 실력을 통해서만 스스로를 신뢰할 수 있다. 실력과 경험이 곧 자신감인 것이다.
시간에 쫓기지 않는 것도 자신감이다. “급한 일이기는 한데, 중요한 일인가?”와 같은 질문이 필요하다. 나에게 참으로 어려운 일이기는 한데 바로 그 자리에서 모든 것을 해결하려고 하지 않는 것이다. 그 문제에 대해 찬찬히 생각할 시간을 가져야 한다. 때로는 그저 잠을 푹 자는 것이 최선의 방법일 때도 있다.
현실은 불확실할 수밖에 없다. 와중에 우리는 결정해야 한다.
너무나 선택지가 많아 결정장애까지 생기는 요즈음이다. 어떻게 결정해야 할지 불안해하기보다 결정할 수 있는 자유를 즐긴다고 생각해 본다. 내가 결정을 내릴 수 있다는 것에서 특별한 기쁨을 느끼는 것이다. 자신의 의지대로 결정을 내리자 오히려 마음이 차분해졌다. 옳은 결정이라는 확신이 들었기 때문이 아니다. 그저 결정을 내렸기 때문이다.
회사원 대부분은 회의실에서 미팅을 하거나 쌓인 이메일들을 처리하거나 자료를 만드는 데 시간을 쏟는다. 최종 결과물이 무엇인지조차 모른 채 중간 목표들을 달성하는데 몰두한다.
이처럼 최종 결과물을 볼 수 없기 때문에 자신의 능력을 확인할 수도 없다. 그저 절차에 따라 일을 하고, 상사에게 보고할 뿐이다. 이런 구조에서는 내가 어떤 일을 하는지 정확히 말하기가 어렵다. 눈에 보이는 결과물로 인정받지 못한다면 불안에 사로잡히게 된다.
제빵을 위해 반죽을 해보거나 그림을 그리거나 가구를 만들거나 정원을 가꾸는 일들. 손으로 무언가를 하는 일들을 실천해 보는 것은 자기 신뢰를 회복해 줄 수 있으며, 이것을 통해 삶에 대한 자신감을 가질 수 있다.
우리 모두는 유일무이한 존재다.
우리 모두는 똑같이 신성한 존재이고, 생명을 불어넣는 방식은 저마다 다르다. 나는 그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다. 그런 존재인 내가 욕망한다. 자신의 욕망에 양보하지 않는 것이 자신에게 충실한 것이다. 자신의 욕망에 충실하면 비교하면서 괴로워하지 않게 된다. 남과 비교하지 않는다면 우울해질 일도 자신감을 잃어버릴 일도 없다. 우리 모두는 소중하다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된다.
내가 자신감이 없어서 이 책을 읽은 것이 아니다.
우리는 누구나 자신감이 필요한 순간이 온다. 자신감을 더욱 채워놓고 싶은 순간이 있다. 그럴 때마다 다시 펼쳐 읽고 싶은 책이 필요했다. 이 정도면 충분하지 않을까?
작가와 이름이 같은 샤를 드골 (Charles de Gaulle, 1890~1970)이 이야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