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오랜만에 대학교 동기와 통화를 하였다.
내가 만학도로 대학엘 다녔기에 동기라고는 하지만 그는 아들 뻘이다.
오 년 전이던가, 8년쯤 되었나? 너무 오래전에 통화를 했기에 몇 년 전이 마지막 통화였는지 기억이 가뭇했다.
그가 아직도 저장된 번호를 사용하고 있는지도 모르면서 무작정 눌렀다.
왜 그런 날이 있잖은가, 누군가 갑자기 궁금해지는. 그날이 내게는 그런 날이었다.
몇 번의 신호가 갔고 바로 특유의 활기차고 유쾌한 웃음소리가 터져 나왔다. 이어서 여보세요라고 했던가? 목소리가 나오자 나는 잠시 멈칫했다.
내가 기억하고 있던 그의 목소리가 아니었다.
다시 그가 여보세요?라고 했을 때, 혹시, 저기...라고 더듬거렸다.
“맞아요. 누나.”
그가 먼저 말했다.
아, 그도 내 전화번호를 저장해 놨었구나. 안도하고, 어떻게 지냈어? 오랜만이지?라고 우리는 얘기를 이어나갔다.
마지막 통화한 것이 8년 전이라고 했다.
8년, 그리 긴 세월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결코 짧은 세월도 아니다.
오래 연락하지 않고 지낸 만큼 할 얘기도 많았다.
그동안 결혼해서 아이가 벌써 일곱 살이라고 했다.
아이가 그렇게 커나가던 동안 일도 많았다고 한다. 결혼하고 아이 낳고, 행복이랄 수는 없지만 그렇게 불행하지도 않던 생활에 균열이 갔고, 얼마 전에야 겨우겨우 마음에 안정을 찾기 시작했다고 했다. 그리고 개종을 했다고 했다.
나는 늦은 나이에 대학엘 갔다. 아이들이 어느 정도 자랐고, 더 늦으면 나중에 굉장히 후회를 하고야 말 것 같아서 대학 진학을 결정했다.
모든 게 낯설었다. 넓은 캠퍼스에서 강의실을 찾아다니는 것부터가 고역이었다. 강의시간표 짜는 것도, 학점관리도, 과제발표도, 리포터도, 시험시간 맞추는 것도 쉬운 것이 없었다. 그때마다 도움을 준 사람이 그였다.
낯선 환경에서 낯선 사람들 속에서, 그것도 나보다 한참 어린 사람들 틈에서 줄을 서서 학식을 기다리는 것이 왜 그리 어색했는지. 그때마다 나는 전화로 그를 찾았다. 그러면 어디선가 번개같이 달려와 나와 함께 줄을 섰다가 마주 앉아 밥을 먹어주었다. 내가 빠듯하게 강의시간표를 짰기에 많이는 아니었다.
살림을 하면서 다니던 학교였기에 강의가 시작하기 직전에 학교에 왔다가 강의가 끝나자마자 집으로 돌아가야 했다. 그중에 휴강이라든가, 축제가 있다든가, 강의가 일찍 끝난 때면 시간을 내어 모든 정보를 그에게 얻어들었다. 궁금하고 급한 일에 대해서는 거의 내가 전화를 걸어 그에게 물었다. 단 한 번도 짜증 내는 일없이 언제나 쾌활하고 씩씩한 음성으로 그는 대답해 주었다.
그는 대학원을 같은 학교에서 마치고 교직에 있다가 아픈 엄마와 함께 시골로 내려갔다는 소식이 끝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그 좋은 직장을 그만두고 엄마와 함께 시골로 간 거야?”
“네, 나중에 후회가 될 거 같아서 지금은 엄마와 함께 있어주려고요.”
그때도 내 마음이 울컥했다.
함께 5일장에 가서 장도 보고, 산책도 하고, 마주 앉아 밥을 먹는다고 했다.
그리고 엄마의 마지막을 지켰을 것이다.
거친 가정에서 자라서 용돈이란 걸 받아본 적이 없다고 했다. 고등학교 때부터 돈을 벌어 학비를 댔고, 대학에도 스스로의 힘으로 왔다는 그였다. 그렇게 거칠다면 거친 삶을 산 그였지만 심성을 밝고 건강하게 잘 간직하던 청년이었다.
그런 그가 개종을 했노라고 말했을 때 나는 가슴이 먹먹함을 넘어 뼈가 아파졌다.
나는 안다. 사람이 신념을 바꾸기란 쉽지 않고 종교를 바꾸기란 더 어렵다는 것을.
그렇게까지 되었다는 것은, 살면서 힘들다는 표현으로는 부족한 상황에 처했다는 것을.
“완전히 바닥까지 갔었어요.”
내가 기억하는 그는 언제나 긍정정적이었다.
“잘 되겠죠. 뭐.”
그렇게 말하며 이빨을 하얗게 드러내고 웃던 그의 얼굴이 떠올랐다.
그러나 전파 너머로 전해지는 그의 목소리에서는 완전한 절망을 맛본 뒤에라야 나올 수 있는 그 무엇이 느껴졌다.
“너 그거 알아? 요새는 건축 기술이 좋아져서인지 모르겠는데, 이제는 바닥이다 하고 생각하면 지하 1층이 있고 이제 진짜 끝이겠지 하면 지하 2층, 3층, 끝도 없이 나와.”
“그래요? 누나는 어디까지 가봤어요?”
“나중엔 이렇게 지하를 끝없이 내려가다 보면, 언젠가 바닥을 뚫고 다시 지상으로 나올 날도 있겠지 하게 돼. 왜 그러잖니. 세상에 생겨난 모든 것은 변하게 되어 있고, 끝이 반드시 있는 거라고. 좋은 끝이.”
나는 그렇게 믿고 있다.
다행히 그는 지하 1층, 2층, 3층, 끝도 없는 막막함을 밟지 않아도 될 거 같다. 상황이 정리되는 중이라고 하니까.
나도 나이라는 걸 먹는지 누군가의 좋지 못한 소식이 전해질 때마다 가슴이 아닌 뼈로 느끼게 된다.
그리고 조용히 눈을 감고 기도한다.
모두가 평화롭고 행복해지기를.
이번에도 오래, 뼈가 시리고 아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