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년 차 직장인의 소심한... 휴가에 대한 단상
직장인들이 회사로부터 간절하게 원하는 것들 중 하나. 바로 휴가이다.
법적으로 직장인에게 보장되는 휴가임에도 쓰기가 어려운 것은 사실이다. 그리고 아이러니하게도 휴가는 짬밥이 늘어날수록 쓰기가 어려워진다. 차라리 신입사원 시절에는 선배나 부서에서 휴가를 가라고 권장했던 것 같다. 물론 신입사원이야 사무실에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이었으니 그랬겠지만. 확실히 나이가 들수록 휴가를 감에 있어 고려해야 할 것들이 점점 많아지고, 남의 눈치도 더 보게 된다. 부서장들이 휴가를 쓰고도 오후에 슬렁슬렁 회사를 나오는 꼬락서니를 보면 이건 확실하다.
다른 글에서 말한 적이 있지만, 우리 회사는 각자가 자신이 맡은 프로젝트를 수행한다. 그렇기에 딱히 같은 팀에 팀원이 있건 없건 별 도움이 되지 않는다. 물론 일손이 필요한 상황에서는 서로가 도움이 될 수 있겠지만 평상시에는 딱히 서로의 일에 관여를 하지는 않는다. 그래서 나름 휴가도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는 편이다. 각자가 자신의 상황에 따라 타인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범위 내에서 휴가를 사용한다.
그러던 어느 날 K 대리가 부장님께 휴가를 쓰겠다는 보고를 하던 중 일이 발생했다.
“부장님 제가 휴가가 너무 많이 남아서요, 12월 초에 10일 정도 휴가를 몰아 쓰려하는데요”
모든 부서원들은 그들의 대화에 귀를 기울였다. 초미의 관심사였다. 새로운 시도이다. 나는 이미 올해 휴가를 많이 사용했기 때문에 글렀지만, 내년에는 나도 저렇게 써야겠다 라는 생각이 불시에 들었다. 부장은 잠시 고민하는 듯했다. 고민의 공백이 너무 길었다고 생각했는지 부장이 입을 열었다.
“야 네가 무슨 대단한 일을 했다고 10일이나 휴가가냐? 그러다 너 자리 없어진다”
부장은 곧이어 농담이야 농담. 이라고 하며 아... 10일?? 괜찮을까? 라며 고민을 이어갔다. K 대리는 당찬 90년대 생이었다. 그에게는 부장의 말이 농담처럼 들리지 않았나 보다. K 대리는 바로 속사포 같은 말로 화답했다.
“제가 그동안 바빠서 휴가를 못 갔기에 다 몰아서 쓰는 거고요, 업무에 전혀 문제가 없게 조치할 겁니다. 물론 혹시 모르니 노트북도 가지고 갈 예정이거든요?”
이런 걸 보고 요즘 신조어로 갑분싸(갑자기 분위기 싸해짐) 라고 하나보다. 부장은 의자를 뒤로 한껏 젖혀 앉아 팔짱을 꼈다. 부서 분위기는 가라앉았다. 나 역시도 당황스러웠다. 주변을 둘러보니 나를 기점으로 후배들은 고개를 끄덕이는 듯했고, 선배들은 미간을 찡그리기 시작했다. 나는 어느 쪽에 서야 하나 잠시 고민했다. 그때 카랑카랑한 목소리의 A차장이 끼어들었다.
“K 대리 그렇게 말하면 안 되지, 그거 매너 아니야. 자기만 좋자고 그렇게 휴가 길게 가면 전체 부서 의욕에 저하가 생긴다고”
어느 쪽에 설까 고민하던 나는 슬그머니 후배들 편에 서기로 했다. 왜냐하면 A차장은 진작에 모든 휴가를 모두 소진한 것을 나는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익숙하지 않다고 틀린 건 아니다
한 조사에 의하면 우리나라 직장인의 연간 휴가일수는 세계 최저 수준이라고 한다. 딱히 출처와 세부 숫자를 밝히지 않을지라도 대부분 공감할 것이다. 혹자는 이 보다 낮을 것이라고도 했다. 고기도 먹어본 사람이 맛을 알고 놀아본 사람이 잘 놀 수 있다고 하던가? 휴가도 마찬가지. 그동안 휴가를 제대로 가본 적도 그렇다고 즐겨본 적도 없는 한국의 직장인에게 휴가란 여전히 그림의 떡이자 내 것이지만 내 것이 아닌 것만 같은 존재이다. 그나마 새로운 세대가 회사에 들어오면서 조금씩 인식이 바뀌고 있는 것은 사무실에서 피부로 느껴진다. 당당하게 자신의 의견을 피력한 K 대리와 눈빛으로 그를 응원하는 후배들. 카랑카랑했던 A차장도 그 시선을 분명히 느꼈을 터이다.
쉬어본 적이 없으니 휴가 간다는 말이 부자연스럽고 집에 일찍 가본 적이 없으니 야근이 자연스러운 우리 세대들. 어려운 부탁을 해서 미안한데... 요즘 것들이 이런 휴가 문화를 어서 빨리 바꿔줬으면 좋겠다. K 대리처럼 할 말 좀 따박따박하고, 싫은 건 싫다고 더 적극적으로 이야기해 줬으면 좋겠다....
솔직히... 나는 K 대리처럼 말할 자신이 없다...
K 대리 멋있었다.
얼른 바꿔줘라 나도 좀 편승하게.
나도 쉬고 싶다 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