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가 떠나는 여행
1번째와 2번째 쓴 글이 바뀌고... 암튼 좌충우돌 연재 글쓰기를 하는 중입니다.
오늘은 드디어 3번째 연재.
우선 최대한 제가 처음에 정한 목차에 맞춰서 글을 써보려고 합니다.
수학여행.
요즘은 한자에 따라서 뜻이 달라지는 언어유희(?)에 재미를 느끼고 있습니다.
저번에 비행에 이어서 이번엔 수학여행.
짐을 싸고 다른 지역으로 이동하는 여행도 좋지만 요즘엔 지식여행(?)이 더 좋아집니다.
시간과 장소에 상관 없이 언제든 떠날 수 있으니까요.
이번엔 제가 전에 써두었던 글을 올려볼게요.
오늘은 누구나 갈 수 있는 여행을 소개할까 합니다.
도대체 무슨 여행인지 궁금하신가요? 바로 수학(數學)여행입니다.
국어, 영어, 수학 할 때의 그 수학이 맞습니다.
수학여행보다는 수학공부가 우리에겐 더 익숙하잖아요.
그런데 학생이 아닌 지금에서야 수학은 여행이라는 걸 깨달았습니다.
수학만큼 다양한 사고를 가능하게 해주는게 없더라구요.
한문제에 대해서 답을 찾기 위해서 여러가지 방법을 생각해보니까요.
중요한 건 답이 있기 때문에 푸는 방법을 찾는거죠.
우리가 여행을 하는 이유는 다양한 경험과 내 존재에 대한 고민때문이잖아요
처음엔 수학(數學)여행으로 시작했는데 지금은 저를 수련하는 수학(修學)여행이 되었네요.
예전에는 왜 철학자가 수학자인가 이상하게 생각했는데 지금은 이해가 되더라구요.
사춘기 때에도 나의 존재에 대해 고민해보지 않았는데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으면서
내 존재에 대한 궁금증이 막 생겨났죠.
다양한 문제들이 느닷없이 생기고 그 문제들을 해결하려고 노력하지만 뜻대로 되지 않는
경우도 많았죠. 문제를 보는 눈과 유연한 사고를 할 수 있다면 좋을텐데 말이죠.
수학은 학생 때나 공부하고 수학을 전문적으로 하시는 분들만 하는 거라고 생각했는데
어쩌면 수학은 우리가 살면서 함께 해야 할 동반자라는 생각이 듭니다.
제가 이렇게 수학여행을 시작하게 된 계기는 첫째 아이가 고등학교에 입학하게 되면서부터 입니다.
남편은 직장을 다니니까 집에서 살림하는 제가 아이의 교육에 더욱 신경을 써야 되잖아요.
고등학생이 되면 다니는 학원을 늘리는데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거든요.
남편과 저는 학원은 1명당 1학원만 보내기로 했어요. (다른 과목을 배우고 싶을 땐 기존에 다니던 학원은 그만두기로 아이와 합의를 봤죠. 영어 학원 선생님이 좋은지 절대 못 그만둔다고 하네요.)
많은 학원을 보낸다고 아이를 더 사랑하는건 아니잖아요. 특히 아이의 상태도 모르고 학원만 보내는 것은 방관이고 책임회피거든요. 그렇게 여러 학원을 보냈는데 그에 따른 결과가 나오지 않을 때는 학원비가 아깞다는 생각과 함께 아이에게 잔소리를 하게 되는 비극이 시작되겠죠.
아이도 힘들지 않으면서 가정의 경제적으로 학원비 부담을 줄일 수 있는 방법을 찾아봤습니다.
요즘 주변에서 하도 '수포자'라는 말들을 많이 해서 우선 수학에 접근을 시도...
우선 아이들이 어떤 문제를 공부하고 있는지 알아야지 아이와 대화도 되잖아요.
아이가 산 문제집을 펼쳐서 개념도 보고 문제도 풀고 모르는 건 해설도 보고 했는데 잘 이해가 안되더라구요. 그래서 무료로 들을 수 있는 인터넷 강의를 찾아봤는데 한 과목에도 여러 선생님들이 있더군요.
우선 일타강사님의 강의를 들어봤습니다.
고등학교 졸업하고 거의 30년만에 처음 듣는 고등 수학 수업...
중학교 수학도 아닌데 과연 내가 얼마나 알아들을 수 걱정을 했거든요.
40분정도 수업을 하는데 전혀 지루하지 않고 너무 재미있는 거에요.
학생 때 이후로는 수학을 공부하지도 않은 주부인데도 이렇게 이해가 된다는 게 신기했죠.
다양한 풀이를 하시면서 " 수학은 아트다. 너무 재미있지 않니? "
라고 하시면서 어떻게든 이해할 수 있도록 설명하시는 모습을 보면서 40분짜리 <수학을 주제로 한 쇼>를 보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선생님의 강의를 듣다 보니까 나도 모르게 시험을 잘 볼 수 있을 거 같은 이상한 자신감까지 생겼어요.
(학생과 달리 제가 시험에 대한 부담 없이 봐서 그런거겠죠?)
강의를 다 듣고 나니까 다음 강의가 궁금해서 이어서 또 듣고...
집안일이 쌓였는데 이렇게 강의를 듣고 있는 내 모습이 참 우습기도 했죠.
(반복되는 집안일로 쓰던 뇌만 쓰다가 다른 뇌를 써서 그런지 뇌가 맑아지는 느낌이랄까...)
다 듣고 나서 문제도 풀어봤죠. 답을 맞추는 순간...
(뭐야? 학생도 아닌데 이렇게 풀리다니... )
왜 이렇게 모순일까요. 학생 때는 수학의 재미를 알았으면 얼마나 좋을까요?
아이들 공부에 열심인 친구에게 물어봤더니 자신도 문제가 잘 풀려서 신기했다고 하더라구요.
(답이 없는 인생을 살아오면서 답이 있는 수학을 만난 즐거움이랄까...)
어쩌면 우리가 인생을 살면서 다양한 경험을 한 것이 수학문제를 푸는 데 도움이 된 건 아닐까요?
그동안 한 문제에 풀이는 하나만 봤었는데 여러 방법으로 풀 수 있다는 걸 40대 중반에서야 깨닫다니...
요즘 인터넷 강의하시는 선생님들 강의를 듣다보면 설명들을 참 잘하시는 거 같아요. 저같은 주부도 이해할 수 있으니까요. 예전에 우리가 배우던 방식과는 분위기도 많이 다르고요. 자신에게 맞는 선생님을 골라서 들을 수 있는 폭도 훨씬 넓어졌잖아요.
강의 중에서 인상에 남았던 건 아이들이 수학을 빨리 풀려고 하지 않고 다양한 방법을 생각하면서 풀어보면서 수학의 매력을 알았으면 좋겠다는 말씀이셨죠. 대한민국에서 수포자가 사라지도록 노력하신다면서요.
수학 공식은 암기가 아니라 원리를 통해서 증명을 하면 우리의 뇌에 익숙해지고 그러면서 저절로 외워진다고요. 물론 처음엔 시간이 걸리지만 그것들이 쌓이면서 문제 푸는 속도는 저절로 빨라진다구요.
요즘 학생들 사이에서 '수포자'라는 말을 많이 하는데 아시나요?
수포자(數抛者)
수학을 포기한 사람이에요.
사전을 찾아보니 이런 예문들이 있었어요.
고등학생 10명 중 6명은 이른바 ‘수포자→수포자 우리말샘, <<세계일보 2015년 7월>>
이과 학생들은 필수적으로 수학을 공부해야 하기에 좀 낫지만, 문과 학생들의 경우는 많은 학생들이 수포자의 길을 걷는다. →수포자 우리말샘, <<내일신문 2016년 6월>>
교실에는 수포자뿐만 아니라 학포자가 얼마든지 있다. 수포자→ 우리말샘, <<전북일보 2016년 1월>>
단어를 새롭게 정의해보면 어떨까요?
1. 수포자 數包者: 수학이라는 대포를 장착한 자
2. 수포자 數砲者: 수학을 인삼처럼 귀하게 여기는 자
3. 수포자 數脯者: 수학을 말린 고기처럼 씹어먹는 자
수포자에서 내던지다, 버리다라는 뜻의 '포'만 다른 한자로 바꿔봤습니다.
1번의 '포'는 대포
2번의 '포'는 일정한 양으로 싼 인삼
3번의 '포'는 얇게 저미어서 말린 고기
이게 뭐지? 라는 생각이 드시나요?
뜻은 다소 억지스럽지만 부정적인 의미를 없애는데 의의가 있으니까요. 이런 의미로라도 수포자라고 이야기한다면 우리의 무의식속에서는 수학을 포기하라고 하지 않을겁니다.
나태주 시인의 <풀꽃>에서 그렇게 말하잖아요.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
너도 그렇다.
수학이라는 녀석이 그런 녀석인가봐요.
처음에 봤을 땐 싸가지 없어 보이는데 자세히 보고 오래 보면 괜찮은 애라는 걸 알게 되죠.
그러다 익숙해지면 나중엔 척 보면 알게 되구요.
여기서 고백을 할까합니다. 사실 저는 살포자입니다.
살림을 포기하려던 자입니다. 남들처럼 결혼하고 아이낳고 주부가 되면 다 살림을 잘 하게 되는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저는 15년이 넘게 했지만 처음 그대로입니다. 일어나서 아침 식사를 준비하면 설거지가 싱크대에한가득 쌓이고 설거지가 끝나면 점심식사를 준비해야할 시간이 되구요. 왜 우리는 하루에 세 끼를 먹는 걸까요? 저처럼 서툰 주부에게는 참 버겁거든요. 오랜시간동안 음식을 준비했는데 맛이 없으면 제가 한 고생은 아무것도 아닌것이 되구요. 결국 결론은 똥으로 되버리잖아요. 제가 제일 싫은 것은 밥은 안먹고 반찬만 먹는거에요. 드라마나 광고를 보면 어머니는 자신이 만든 음식을 가족들이 맛있게 먹는 모습을 보면서 흐믓해하잖아요. 그런데 저는 음식이 빨리 없어지면 음식준비해야 할 걱정부터 되거든요. 힘들다고 외식을 자주 할 수도 없잖아요. (남편 혼자서 버는데...)
이것만 봐도 다른 집안 살림이 어떨지는 상상이 되시죠? 제가 게으르냐구요? 저는 아침 5시 반부터 저녁 11시까지 정말 열심히 하거든요. 그런데 티가 안나요. 남편도 안쓰러운지 옆에서 쉬엄쉬엄 하라는데 그렇게 하면 어떻게 되겠어요? 제가 너무 한심하고 짜증나서 가출을 한 적도 있어요.
(저는 가족들에게 말 하고 잠시 따로 살았답니다. 혼자 살아보니까 집안일도 별로 없고 좋던데... ) 잠시의
방황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왔어요. 돌아와서도 저는 예전처럼 살림에 서툴지만 견뎌내고 있습니다.
제가 살림을 못한다고 주부가 아니라고 할 수는 없잖아요.
제가 이런 이야기를 장황하게 늘어놓는 건 수학을 못한다고 포기까지 하진 말아달라고 말씀드리려는 거에요.
사실 저는 고등학교 때 이과였는데 수학을 엄청 못했어요. 그런데 수학 선생님은 좋아했거든요. 이상하잖아요. 좋아하는 선생님의 과목은 대부분 잘 하기 마련이잖아요. 그때는 수포자라는 말이 없었지만 아무튼 수학을 포기하지는 않았어요. 그런데 신기한거는요. 30년이 지난 지금 수학 강의를 듣는데 수학에 대한 감각이
조금은 남아있었다는 걸 깨달았어요. 오랜만에 수학 공식들을 봤는데도 반갑고 수학 문제를 풀어보고 싶은 마음이 생겼어요. 비록 학생 때는 수학을 못했지만 싫어한 기억은 없었던거죠.
왜 살다보면 싫어하는 사람이 생기잖아요. 그러면 그 사람이 없는데도 생각만 하는 것도 끔찍하잖아요.
저는 수학을 너무 싫어하지는 말고 그냥 '수학이라는 녀석이 이렇게 생겼구나'라고 마음을 편하게 가지시라는 거에요. 물론 대학 시험을 앞둔 입장에서는 수학의 비중이 커서 미울 수도 있겠지만요.
(어떤 아이는 어렸을 때 영어 조기 교육땜에 너무 싫어서 영어로 된 티셔츠도 안입는다는 이야기도 들었네요.)
가장 좋은 것은 학생 때 마침 수학도 좋아하고 점수도 잘 나오는 것이겠죠. 사실 제가 지금 수학을 좋아한다고 해서 제 인생이 달라질게 뭐가 있겠어요. 그렇지만 지금의 저에게 수학은 삶의 의미가 되어주었어요.
매일 매일 못하는 살림만 하다가 수학을 풀어서 맞추고 나니까 괜히 기분이 좋아지고 하루가 즐거운거에요.
(어려운 문제는 아니었어요.) 그래도 내가 할 수 있는 걸 발견하게 해줬잖아요.
뭐든 꼼꼼하게 생각하지 않고 행동이 앞서서 실수투성이인 저는 수학 문제를 접하면서 주어진 문제가 무엇을 말하는지 해석하는 능력과 다양한 방법 풀이를 통해서 폭넓은 사고를 할 수 있는 뇌가 만들어지고 있다는 걸
느끼거든요. 답이라는 목적지를 향해 여러 가지 길을 찾는 찾아가는 과정이 참 즐겁죠.
사실 아이 공부 때문에 시작한 수학이 아이 덕분에 수학을 다시 만나게 됐네요.
가끔씩 하려던 수학여행이었는데 요즘은 시간을 더 내서라도 자주 하려고 합니다.
아이들 수학 때문에 걱정되시는 부모님이시라면 아이들의 점수만 가지고 논하지 마시고 직접 수업도 들어보시고 아이와 함께 머리를 맞대고 고민해보면 어떨까요?
수학이 힘드신분이라면 강의를 듣는 척, 문제집을 빌려가서 문제를 푸는 척이라도 하는 노력을 하시는거에요. 강의를 보면서 즐거워 하는 모습을 보이고(실제로 보면 선생님들 수업 재밌게 해요.)
문제집을 푸는 걸 보면서 아이는 자기껀데 빼앗긴 기분이 들거에요. 괜히 공부는 안해도 자신거를 지켜야겠다는 마음이 생기겠죠. (아이들이 어릴 때 밥 먹는 거 싫어할 때 억지로 먹으라고 안하고 맛있게 먹는 거 보여주면 아이들이 정말 맛있나해서 안 뺏길려고 자신이 먹는다고 하잖아요. 그런 방법과 비슷하다고 할까.)
제가 강의에서 배운 수학을 몇 가지를 아이한테 슬쩍 이야기해봤더니 아이의 반응이 좋더라구요.
(확실히 아는 것만 아는 척 하시길 추천드려요.)
요즘 제게는 병이 하나 생겼습니다.
뭐든 수학이랑 연결 짓는 병이죠. 어슷썰기를 할 때도 각도는 몇도 정도로 자를지, 깍둑썰기는 지름이 몇 cm로 자를지, 채썰기의 간격은 몇cm로 할지, 두부나 묵을 자를 때도 어떻게 자를지 고민해봅니다. 생각해보니 제사상에 올리는 두부 부침은 두께가 몇cm, 동그랑땡의 지름은 몇cm가 적당할까요?
이러다가 반찬 하나도 못 만들겠네요. 그냥 이런 생각을 하니까 반찬 만드는 것도 좀 재밌어지네요.
엉뚱하지만 수학을 좋아할 수 있다면 괜찮잖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