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릉이야기#3] 이런 삶, 맞는 건가

현타가 왔다

by 윤혼자

오늘은 쉬는날이었다. 일주일에 단 하루. 그 아까운 쉬는 날을 잠만 자며 보냈다. 아침에 눈을 뜨니 일곱 시였고 금세 눈이 감겼다. 다시 눈을 뜨니 오후 한 시. 오늘은 양양의 오일장을 가보기로 계획한 날이었다.

아침에 일어나서 집안 청소 싹 하고 시외버스 타미널로 가서 양양행 버스를 타야지. 내가 좋아하는 시장 구경 맘껏 해야지. 다음에 엄마가 오면 같이 가기로 했으니 미리 탐색해야지.

이런 마음을 먹고 아침에 눈을 떴는데 온몸이 아팠다. 여덞 시간 서서 일하는 노동은 영영 적응이 되지 않을 것 같은 느낌이다. 사실 서서 일하는 것보다 내 몸이 더 피로한 것은 무릎과 손가락 관절통이다. 손가락 관절이 다 부어 아침이면 뻣뻣해 굽혀지지 않는다. 뜨거운 물로 샤워할 때 손을 좀 녹여줘야 관절이 움직인다.

아무튼 이런저런 이유로 느즈막히 일어났지만 몸은 천근만근. 대충 집에 있는 음식으로 끼니를 때우고 넷플릭스를 봤다. 고양이들은 그릉그릉. 모두 내 주변으로 모였다. 아이들을 한마리씩 쓰다듬으며 드라마나 보고 있는데 어느새 또 졸음이 몰려왔다. 잠들기 전 시간을 확인하니 세 시쯤이었나. 다시 눈을 뜨니 여덟 시. 대체 몇 시간을 자는 거지. 자도 자도 피곤하고. 집안일도 하나도 못 했는데. 쉬는 날 이렇게 날려먹어도 되나.

열 시까지 빈둥거리다가 그제야 집안일을 시작했다. 그리고 지금은 새벽 열두 시 사십육분을 지나고 있다.


잠시 쓰레기를 버리러 나갔다가 담배 한대를 피우는데 계속 생각 하나가 꼬리를 물고 있다. 나는 지금 이 삶에 얼마나 만족하는가. 워라밸을 그렇게 중요시했던 내가, 주 6일 혹은 7일을 일하는 것이 맞는가. 고작 집에 와서 다섯 시간 가량 집안 일 하고 밥 먹고 다시 잠드는 삶. 이 삶이 맞는 건가. 나는 고양이들과 더 많은 시간을 보내기 위해, 더 쾌적한 집에서 살 수 있게 하기 위해 이곳에 왔다.

서울에서는 매일 야근과 특근을 반복하며 아이들에게 죄책감이 있었는데. 나는 그걸 하지 않으려고 이곳에 왔다. 이거..진짜 맞나?

노동이야 그렇다고 치자. 카페 일을 하며 최저시급 받는 삶. 그냥 내가 하는 만큼 최소한의 돈을 벌 수 있는 삶. 감사하지. 감사한 것이지. 원래 하던 일을 때려치우고 타지에 와서 이 정도의 삶까지 생각 못한 건 아니니까.

근데 시간이 흐르고 있다. 시간이 하루하루 너무도 빠르게 흐르고 있다. 나의 하루가 고양이들에겐 일년인데. 나의 하루하루를 일하는 데만 쓰고 있다. 공휴일에도 쉬지를 못하고 주말도 이틀 다 쉴 수 없으니 나는 이 아이들을 보살피고 사랑해줄 시간이 더 줄어들었다.


그래서 이게 맞나? 이 생각이 자꾸 든다. 물론 야근이 없는 일이니 칼퇴는 하지만.. 집에 와서 부지런히 아이들과 교감하며 사랑을 주지도 못하고 있다. 내 몸이 먼저 힘드니 오자마자 뻗기 일쑤다.


불과 세 달도 되지 않았다. 조금 적게 일하고 더 많은 시간을 아이들에게 쓸 수 있는 방법..없을까?

일년. 딱 일년만 이렇게 살고 내년부터 집에서 시간을 보낼 수 있는 일(이를테면 하던 디자인 일을 다시 재택으로 하는 일)을 시작해볼까.

얘들아. 딱 일년만 엄마 이렇게 너희 잘 못챙기고 오롯이 쉬는 날에도 나만 챙기는 거 너희가 이해해줄 수 있을까?

이 고요하고 사랑스러운 내 집에서 내 사랑하는 고양이들과 더 많이 오래 같이 있고 싶다. 하루하루가 갈수록 아이들이 나이먹는 게 두렵다. 이 섣부른 걱정을 멈추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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