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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줄라이 Feb 23. 2020

우리가 해야 할 일은, '그냥 그 문을 여는 것'

'불운'을 맞닥뜨리는 우리의 자세

세속적인 성공을 거두려면 운이 중요한게 맞다. 하지만 안심이 되는 건... 상황은 늘 변하며 사람은 머물러 있는 존재가 아니라는 것이다. 운 나쁨을 받아들이고 나면 인생의 다른 문이 열린다.

우리가 할 일은 그 문을 열고 나가는 것이다.



어제 TV 프로그램 '슈가맨을 찾아서'를 봤다. 탤런트 겸 가수로 활동했던 '정인호'와 3인조 여성 보컬 그룹 '씨야'가 나왔다.


이들이 활동했던 2007년은 내가 미국에 가서 한창 적응하고 있을 때였다. 그래서 나는 정인호의 원히트 원더송인 '해요'를 전혀 모를 뿐 아니라 그룹 '씨야'도 남규리의 얼굴만 알 뿐이다.


그런데도... '슈가맨을 찾아서'를 보면서 좋은 책이나 영화보다도 더 큰 감동을 느꼈다. 왜냐면.. 이들의 이야기는 실제로 일어났고, 지금도 일어나고 있는 인간조건의 드라마이기 때문이다.


정인호는 KBS 공채탤런트로 활동하던 중에 가수로 데뷔했다. '해요'가 좋은 반응을 얻고 가창력과 외모를 겸비한 남자가수로 기대를 모았다고 한다. 제2의 조성모가 될 거라는 예측도 있었다. 그는 '이소라의 프로포즈'에 출연하기 위해 전날 얼굴을 작아보이게 하기 위해 사우나에서 냉온찜질을 반복했다고 한다. 그러다가... 다음날부터 안면마비가 와서 라이브로 노래를 부를 수 없었다고 한다. 실력파 가수로 밀고 있었는데 라이브를 할 수 없으니... 결국 타이밍을 놓치게 되고 그는 대중의 관심에서 잊혀졌다.


'씨야'는 아마 굉장히 나쁜 소속사를 만났던 것 같다. 노래는 계속 가요프로그램에서 1위를 하고 그룹은 유명해졌지만 멤버들은 돈도 받지 못하고 늘 컵라면으로 끼니를 때웠다고 한다. 돈만 밝히는 소속사와 멤버들간의 오해로 그룹은 인기 절정의 순간에 해체되었다. 이들의 노래를 좋아했던 많은 사람들에게 아쉬움과 의아함을 남기고.



그리고.. 13년 후... 이들은 '슈가맨'이라는 프로그램으로 대중 앞에 돌아왔다.


정인호는 사업가가 되었다. 주로 동남아와 거래하며 지금 생활에 완전히 만족하기 때문에 프로 가수로서의 활동은 고려하지 않고 있다고 한다. 단지 음악을 사랑하는 사람으로 평생 음악을 가지고 갈 것이라고 말한다.


씨야는 멤버들이 각자의 장기를 살려 자리를 만들어가고 있다. 남규리는 배우로 자리를 잡았고 다른 멤버들도 뮤지컬과 솔로 가수로서 발판을 만들어 가고 있다. 고음이 장기인 김연지는 뮤지컬 배우로 각광받고 있고 목소리 톤이 좋은 이보람은 그룹 내에서 맡겨진 '중음 전문' 역할을 벗어나 호소력 있는 가창력을 보여주고 있다. 다들 홀로서기를 하고 있다.


이들을 보면서, 흔히 말하는 성공에 '운'이 얼마나 중요한지 다시금 느낄 수 있었다. 성공하려면 운이 7, 나머지가 3이라는 '운칠기삼'이라는 말이 있다. 그런데 정인호나 씨야를 보면 '어쩌면 인생은 운칠기삼이 아니라 '운구기삼'이 아닌가'하는 생각도 들 정도다.   


만약 정인호가 방송 전날 사우나에 가지 않았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제2의 조성모라는 찬사를 받으며 모두가 기억하는 가수로 자리매김했을 수도 있다. 중요한 무대를 앞두고 사우나에 가서 무리했던 것은 두고 두고 그에게 후회와 원망을 남겼을 것이다.


씨야가 조금 더 나은 소속사를 만났더라면 어땠을까? 멤버들도 더 나은 대접을 받았을 것이고 고생만 하고 인기 절정의 순간에 그룹이 해체되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20대 초반의 어린 아가씨들이 겪어야 했을 고통이 느껴져서 마음이 많이 아팠다.  


보통 우리는 불운을 두려워한다. 내가 최선을 다해도 나의 의지와 관계 없이 나에게 닥쳐오는 불행의 그림자, 운명의 장난으로 인생이 엇나가지 않을까 무서워한다. 


다른 사람의 고통을 보면서 그 패닉의 감정이 나에게 전이되어 '나도 저렇게 되면 어쩌나'라는 두려움이 우리 안에 자리잡는다. 그리고 그 두려움은 우리를 행동하지 못하게 만든다. 어찌 보면 상상 속 두려움의 포로가 되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가 보지 못하는 것은 고통의 다음 순간, 또 다음 순간에 고통을 겪은 주인공들이 어떻게 그 순간을 이겨내고 받아들였는가다. 지켜보는 사람들은 그들이 경험한 고통의 순간에만 머물러 있지만, 주인공들은 그 순간을 밀어내고 인생의 다음 장으로 나아가고 있었다.


그들은 불행해지지도 않았고 그 순간을 평생 후회하면서 살고 있지도 않았다. 다시 떠올리면 눈물이 차오를 정도로 아직 희미한 상처는 남아 있지만, 그들은 과거에 살고 있지 않고 현재에 살고 있다.


세속적인 성공을 거두려면 운이 중요한게 맞다. 하지만 안심이 되는 건... 상황은 늘 변하며 사람은 머물러 있는 존재가 아니라는 것이다. 운 나쁨을 받아들이고 나면 인생의 다른 문이 열린다. 우리가 할 일은 그 문을 열고 나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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