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라카미 하루키는 '먼 북소리'에서 자신이 만난 그리스인들을 두 부류로 나눈다.
조르바계 그리스인 VS. 비조르바계 그리스인.
조르바계 그리스인은, 짐작 가능하겠지만, 성격이 좋고 술을 좋아하고 친구를 좋아하고.. 조금은 게으른 사람들이다. 비조르바계 그리스인은 자신의 고향 마을뿐 아니라 대도시나 다른 유럽 국가들에도 가본 경험이 있는, 보다 현대적인 사람들이다. 여기서 '조르바계'라는 명칭은 당연히, 소설 '그리스인 조르바'에서 따온 것이다(나에게는 너무 회자되면 읽게 되지 않는 그런 소설 중 하나).
자연스럽게, 조르바계 그리스인들은 미래를 생각하지 않고 현재에 몰두한다. 관광객이 많은 여름엔 일이 많다고 투덜거리며 일하고, 관광객이 썰물처럼 빠지는 겨울엔 술을 마시고 친구들과 노닥거리며 한가로운 시간을 보낸다. 그리고 60이 넘어 연금을 받을 날을 온 마음으로 기다린다. 이 사람들은 수다는 많지만 불만은 별로 없다.
반면에 비조르바계 그리스인들은 어쨌든 자신의 '관점'을 갖고 세상을 판단하면서 혼자 있는 시간에 무언가를 열심히 한다. 하지만 이방인인 하루키에게는 '웃음이 적고 까다로운 인상을 주는 사람들'로 여겨진다.
우리 집에도 두 부류의 한국인이 산다는 생각을 가끔 한다. 비유가 이상하지만 하루키의 표현을 빌리면, '조르바계 한국인'과 '비조르바계 한국인'이 그것이다. 조르바계 한국인은 남편과 딸이다. 남편은 놀기를 좋아하고 사람들과 어울리기를 좋아한다. 시간이 나면 예능 프로그램을 보면서 그 시간을 '진심으로' 즐긴다.
남편 표현에 따르면, '머리가 텅 비는' 그 느낌을 사랑한다는 것이다. 음악 프로그램을 보다가 아는 노래가 나오면 기타를 연주하면서 TV 속 노래를 따라부른다. 밤마다 이런 시간을 갖기 때문에 집에는 당연히 견과류와 맥주가 구비되어 있다. 내가 술 마시지 말라고 잔소리하면 그 소리를 듣지 않기 위해 견과류를 숨겨놓는다. 하지만 빈 맥주캔을 숨기는 건 까먹기 때문에 아무 소용이 없다.
또 하나의 '리틀 조르바계 한국인'인 딸을 이해할 수 없을 때, 나는 종종 '이럴 때, 당신이라면 어떤 마음일 것 같아?'라고 묻는다. 남편의 대답을 듣고 나서 그걸 딸에 대입해서 이해해보는 것이다. 처음엔 나 혼자 이해해보거나 책에서 아이 마음을 이해할 힌트를 얻으려고 했지만... 오랜 경험을 거쳐... 남편의 마음을 대입해보는 게 더 빠르다는 것을 알았다.
내가 보는 그의 모습은 퇴근 후, 아니면 주말이기 때문에 나에게는 늘 TV 보면서 맥주 마시고 기타 치는.. 그런 장면들이다. 좋은 책을 가져다 주어도 '노안 때문에 불편해서' 책을 못 읽겠다고 한다. 노안용 안경을 맞췄지만... 그는 안경에 적응하기보다는 아예 글씨를 멀리 하는 쪽을 선택한 것 같다. 그러면서 유튜브는 늘 본다. 글씨보다 이미지가 더 편하다고 한다.
어쨌든, 어제 일어난 작은 충돌의 단초는 '은퇴 이후' 였다. 나는 이제 남편 스스로 은퇴 이후를 계획해야 하는게 아니냐는 입장이고, 남편은 그런 건 은퇴 한 후에 생각하면 된다는 생각이다. 그에 따르면, 앞으로 10년은 더 일할 거고, 길면 15년도 일할 건데, 그걸 미리 생각해봤자 무슨 소용이 있냐는 것이다.
'미리 생각해도 10년 후의 일이니 상황은 또 바뀔 수 있다. 그럼 지금 괜히 고민하느라 시간만 낭비한 셈이 된다. 지금은 이 생활에 충실하고 은퇴 이후는 은퇴한 후에 고민해도 늦지 않다.'는 것이다.
맞는 말이다. 그런데 10년 후에 은퇴하는게 아니라 5년후에 은퇴하게 된다면? 그는 이렇게 말한다. '그것도 그때 가서 생각하면 된다. 5년이면 아직 멀었다. 5년 후에도 나는 '틀림없이' 새 일을 찾을 것이다.'
그러면서 '당신은 너무 걱정이 많다. 맨날 걱정하면서 사는 것 같다. 그냥 릴랙스하면서 시간을 즐겨라.'라고 말한다.
맞다. 우리집에서 걱정은 나 혼자 도맡아 하고 있다....
그런데 당신이 걱정하지 않기 때문에 나 혼자 걱정하는 게 아니냐. 내가 걱정하는 타입이 아니었다면 당신도 어쩔 수 없이 조금은 걱정을 하고 있을 것이다. 생각해보니 나만 손해다. 앞으로는 나도 걱정하지 않을 테니 알아서 해라.
이런 말이 나오면... 그는 내 눈치를 보면서 슬쩍 생각하는 척 한다. 그리고 10분 후에는 언제 그랬냐는 듯, 스포츠 프로그램이나 음악 프로그램으로 돌아간다.
'조르바계 한국인'과 '비조르바계 한국인'의 의견 대립은 거의 항상, '조르바계 한국인'의 승리로 끝난다. 나는 '내가 걱정이 너무 많다'는 사실을 알고 있고, '조르바계 한국인'인 남편이 더 많이 웃고 유쾌한 사람이라는 걸 안다. 그래서 나도 옆에서 같이 예능 프로그램 보면서 머리를 텅 비운다. 그래서 주말이 지나면 TV 본 기억밖에 나지 않을 때도 많다. 아예 외출해서 밖에서 시간을 보내면 달라지지만.
세상은 '비조르바계' 사람들이 이끌어가는 것처럼 보인다. 그들은 항상 너무 열심히 생각하고 노력한다. 세상을 비판하고 더 좋은 세상을 만들려고 한다. 하지만 정작 그 세상 속에서 그들은 분투하는데 시간을 다 보내고 즐기지는 못한다. 어쩌면 진짜 승리자는 '조르바계' 사람들일지도 모른다. 그들은 항상 기분이 좋고 자신에게 관대하고, 주변 사람들에게는 더 관대하다.
나도 원래부터 조르바계 인간형으로 태어났으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해본다. 불행히도, 우리 집의 또 다른 '리틀 비조르바계 한국인'인 아들을 보면 '천성'이라는 건 정말 있다는 생각이 든다. 혼자 뭘 열심히 하고(보통은 쓸모 있는 일이 아니지만), 그 일이 잘 안된다고 짜증 내고 어떻게든 되게 만들려고 분투한다.
내 관점으로는, 하루키도 '비조르바계 인간'이다(보통 사람들이 관심 있는 분야가 아닌 비주류 분야에 몰두하는). 그도 그리스에 머무는 동안 '조르바계 그리스인'들이 부러웠던 거라고 생각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