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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줄라이 Feb 15. 2020

해외살이에 로망을 갖게 되는 어떤 이유

어젯밤 브런치에서 세계 여행, 한달 살기, 이민을 떠난 사람들의 이야기를 한참 읽었다. 너무 재미있어서 자야 할 시간을 살짝 넘겼고 그 여파로 오늘 아침에 평소보다 많이 늦게 일어났다.


이런 이주 스토리는 항상 일정 정도의 관심을 끄는 것 같다. 하긴 나도 30대 중반까지는 이런 이야기를 읽으면 마음이 흔들리곤 했다. 어떤 나라에 태어났다는 이유만으로 평생 그곳에 살 이유는 없지 않은가? 어쩌면 다른 곳, 다른 나라에서의 삶은 여기보다 더 나을 지도 모르는데. 태어난 곳은 내 의지대로 바꿀 수 없지만 내가 정착할 곳은 내가 정할 수 있는 시대이지 않나.


20대 중반, 나는 실제로 이주공사를 통해 캐나다 이민을 추진한 적이 있다. 호주 독립이민도 혼자 준비했었다. 그때 내가 이 나라를 떠나려고 했던 것은 새로운 나라를 동경했기 때문이라기보다는 이 나라, 이 곳이 싫어서였다. 당시의 나는 늘 한국 탈출을 꿈꾸었는데, 그때 내가 어떤 마음으로 그랬는지.. 그 마음을 비교적 객관적으로 돌아볼 수 있게 된 것은 거의 10년이나 지난 후였다.


그것은 '사회의 주류가 아니라고 스스로를 정의하는 사람이 갖는 마음상태'였다.


남들이 어떻게 보든간에, 자신을 주류로 생각하지 않고, 다수 구성원의 사고방식에 동의하지 않는 사람들은 스스로를 마이너리티라고 생각하기 마련이다. 그런 사람들은 현재 속해 있는 사회에 준거의식도 희박하고 미련도 없다. 즉, 버릴 것도, 잃을 것도 별로 없는 셈이다.


어떤 사회에서 기득권을 갖고 있고 스스로가 상위 그룹에 든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몸 담고 있는 사회를 떠날 생각을 하지 않는다. 이들은 탈출을 꿈꾸지도 않고, 여행에 대한 환상도 없다.


친한 지인 A는 남편의 일 때문에 미국에 1년 있었는데, 늘 그곳 생활에 대해 불평하고 돌아오고 싶어했다. 강남구에 살고 있고 남편이 명문대를 졸업했다는 데 큰 자부심을 갖고 있던 사람이 갑자기 미국에서 영어가 서투른 일개 동양인(보통은 중국인으로 여겨지지만) 여자로 격하돼 버리는 데 대한 분노였을 것이다.


한마디로 한국에서 갖고 있던 자신의 사회적 지위와 준거성이 하루 아침에 소멸되고 '동양인', '이주자'라는 2류 집단으로 도매금 강등을 당한 느낌이었을 것이다. 혹시 오해할까봐 말해놓지만, 나는 그녀를 매우 좋아하며 지금 어떤 감정을 가지고 그녀의 예를 드는 것은 아니다.


즉, 외국으로 가서 생활하려면 사회적 지위와 정체성이 리셋되는 위험을 감수해야 한다.


하지만 어떤 사람들에게는 그 '원점 복귀'가 희망이 되기도 한다. 이곳에서 자신의 사회적 위치나 살아온 이력이 마음에 들지 않고 새로운 사회적 페르소나를 만들고 싶어하는 사람들이다. 물론 개중에는 천성적으로 모험을 좋아하고 새로운 경험을 해 보고 싶어하는 사람들도 있다.


'준거성의 결여'


10년이 지난 후에 20대 초중반 나의 상태를 정의한 문구다. 나는 국가에도, 민족에도, 내가 태어난 동네에도, 가족에도, 친구들에게도 소속감이 없었다. 남들 보기에는 아니었을 지 모르겠지만 스스로의 눈에는 철저한 외톨이였다.


누구나 준거성, 다른 말로 소속감을 갖고 있다. 어떤 사람들은 '한국'이라는 나라에, 또 어떤 사람은 '○○ 학교 출신'이라는 사회적 지위와 자신을 동일시하고 소속감을 느낀다. 준거집단이 큰 사람도 있고 작은 사람도 있다.

나의 경우에는 전자다. 나의 준거집단은 주로 '인간', '생물', '피조물'이었다. 그러니 생활 공간이 미국이든, 영국이든, 유럽이든 큰 상관이 없었다. 나를 '지구 여행자'로 분류하는 이상, '어디에 살 것인지'는 큰 의미가 없었다.  


그래서 나는 흔히 은둔형 외톨이나 '독고다이', 또는 '루저'로 불리는 사람들의 마음을 비교적 잘 이해하는 편이다. 이들은 자신이 속해야 할 그룹에서 환영을 받지 못했거나 어떤 이유로 처음부터 그런 그룹이 없었던 사람들이다. 이른바 '소속'을 갖지 못했거나 스스로 그들과 동질감을 느끼기를 거부하는 사람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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