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스스로 취약하다고 생각하고 컴플렉스를 갖고 있는 부분이 '해야 하는 일'을 미루는 습관이다.
해야 하는 일이 즐거운 일이면 미룰 이유가 없다. 여기서 '해야 하는 일'이란 당연하게도 '해야 하지만 하기 싫은 일'이다.
나는 기본적으로 몸을 쓰는 일에 게으르고, 내적욕구가 아니면 움직이지 않는 성격이다. 나쁘게 말하면 고집이 세다;;; 그래서 하기 싫은 일을 하려면 꽤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
어릴 때는 하기 싫으면 그냥 하지 않았다. 그래서 주변 사람들을 깜짝 놀라게 하는 일이 종종 있었다. 조용하고 순해 보이는데... 차마 아무도 감히... 하지 않는 '엄청난' 짓을 덜컥 저질러버리는 것이다. 그 엄청난 일이란... '남들이 아무런 의문 제기 없이 다 하는 당연한 일들을 혼자 하지 않는 것'이었다(부끄럽지만...).
타고난 성격 탓이기도 하고... 외부와의 교류가 별로 없었던 집안 환경 때문이기도 했다. 아무래도 외부와 접촉이 많으면 본인 의사와 관계 없이 던져지는 변화들이 많았을 테고 자연스럽게 그것에 적응하는 훈련이 되었을 테니까.
사회생활을 하면서 이러한 성향을 고치지 않을 수 없었고 상당히 많이 고쳤다. 물론 그 과정에서 처절하게 깨지는 경험들이 수반됐다. 하지만 천성이 어디 가던가? 아직도 좋아하고 익숙한 일만 하는게 좋다.
내가 특히 질색하는 일은 주로 관공서와 관련된 일들이다. 일정에 맞춰 뭔가를 신고하고 서류를 제출하는 작업들은 정말이지 하기가 싫다. 아마 '관공서'라는 단어가 '의무', '당위' 등의 뉘앙스를 떠올리게 하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사실, 이것은 나의 편견이자 고집에 불과하다. 우리나라 공무원분들은 대개 친절하다. 특히 젊은 공무원분들은. 문제는 대개 그렇듯, 나한테 있다;;
다른 일들이야 하기 싫으면 하지 않으면 그만이지만...관공서에 관련된 일들은 하지 않을 수 없다. 특히 부동산 투자를 하면서부터는 하기 싫지만 해야만 하는 일들이 폭발적으로 늘어났다.
만약 싫다고 안 한다면? 어릴 때처럼 혼나거나 하지는 않는다. 다만, 상당한 '금전적' 대가를 치러야 한다. 날짜를 안 지키거나 내야 할 서류를 내지 않으면 그에 상응하는 '과태료'를 내게 되겠지. 돈 벌어보겠다고 기껏 투자해 놓고 과태료를 낸다면, 정말이지 천하의 멍청한 짓이 아닐 수 없다.
하지만.. 멍청한 짓이라고 스스로를 비난해도.. 여전히 하기 싫은 건 어쩔 수 없다. '마인트 컨트롤'을 시도한 적도 있었다. '이런 일을 할 수 있어서 정말 기뻐'라고 스스로에게 말하는 것이다. 큰 효과는 없었다. 좋아하지 않는다는 걸 스스로 알고 있는데, 무의식에 최면을 걸어버리면 모를까... 하기 싫은 일은 여전히... 하기 싫은 일이다.
이렇게 징글맞게 하기 싫은 일을 해치우기 위해 내가 동원하는 몇가지 방법이 있다.
첫째, 미리 해치우는 것이다. 청구서는 받는 즉시, 확인하는 당일에 내버린다. '받을 돈은 최대한 일찍 받고 줄 돈은 가능한 늦게 주어라'라는 말도 있지만, 나는 그렇게 하지 못한다. 기한이 한달이 남아 있든 두달이 남아 있든 간에, 청구서는 받는 즉시 내버린다.
두번째는, 두달 전부터 스케줄러에 적어놓는 것이다. '하기 싫은' 마음이 스물스물 올라오는 걸 방지하기 위해 스케줄러에 '아주 당연한 듯이' 꼭 해야 할 일들의 목록을 적어놓는다. 물론 두달 뒤 일이므로 당장 할 수도 없고 할 필요도 없다. 그냥 내 마음에 그 하기 싫은 일의 존재를 계속 '인식'시키는 것이다.
한달, 2주일, 1주일, 하루... 이런 식으로 데드라인이 다가오면 내 고집스런 마음도 어느 덧 '그 귀찮은 녀석'을 받아들이는 상태가 된다. 핵심은, 마음에 받아들일 시간을 충분히 주는 것이다.
이 두번째 방법이 통하지 않는 강적도 있다. 복잡한 계산이나 신고 작업이 여기에 해당한다. 예를 들어, 임대조건신고나 양도세 신고 같은 것들이다. 막상 하고 보면 간단한 일들인데도... 왜 그렇게 하기가 싫은지.
이런 '강적'을 상대하려면 조금 더 치밀한 준비가 필요하다. 일단 시간을 충분히 확보하고 그 전날은 충분히 놀아둔다. 귀찮아하는 마음에게 변명할 거리를 주지 않기 위해서다. '피곤해서..', '힘들어서...'라는 핑계거리를 주지 않으려는 것이다.
그리고 나서 세번째 단계가 등장한다. 단것을 잔뜩 먹는다. 예전에는 과자나 사탕을 먹었는데 요즘은 M&M 초콜렛을 이용한다. 달아나려는 마음과 몸을 붙들어놓을 '당근'을 주는 것이다.
초콜렛을 먹으면 혈관에 당분이 공급되면서 기분이 좋아진다. 아무리 하기 싫은 일이라도 컨디션이 좋고 기분이 좋으면 그나마 좀 낫다. 이렇게 '최대한 기분 좋은' 상태에서 '마지못해' 노트북을 열고.. 궁시렁궁시렁 일을 해 나간다.
세번째 방법까지 동원했는데도 여전히 하기 싫을 땐... 마지막으로 고래고래 소리를 지른다. '빌어먹을!', '젠장!', '이런 건 다 쓸모없어!', '꺼져!', '최대한 빨리 해치워버려야지!'. 떠오르는 대로 마구 소리지르다 보면 거짓말처럼 기분이 좀 나아진다.
'공무원 안 하길 정말 잘했어, 만약 됐으면 왕재수 공무원이 되었을 테지.'
이제 그 '죽어도 하기 싫은 놈들'을 처리하기 시작한다. 아이러니컬하게도, 하기 싫은 마음은 딱 노트북을 켜기 전까지다. 일단 시작하면 일은 일사천리로 진행된다. 이런 일들의 본질은 그다지 어렵지 않다. 다만, 평소에 자주 하지는 않고, 딱 잊어버릴만하면 등장하는 일이기 때문에 익숙해지기 힘든 것 뿐이다.
짧으면 10분, 길면 20분~30분만에(중국은 인터넷이 안 좋아서 1시간~4시간까지 걸릴 때도 있다. 미치고 펄쩍 뛸 노릇;;) 이 일들을 해치운다. 그리고 나서 부끄러움에 사로잡힌다. '일 같지 않은 것들을 한다고 이 난리를 피웠구나'라는 자각이 찾아오기 때문이다.
그래도 목안의 가시 같은 놈들을 제거해버린 기쁨과 후련함을 잠시 만끽한다. 심지어 자랑스러움도 느낀다. 귀찮음과 싸워 이겨냈다는 조촐한 승리감과 함께 자신감 지수도 조금 상승한다.
'아냐, 공무원이 되었어도 결국엔 잘 해냈을 거야. 일은 매일 하는 거니까 익숙해지지 않을 수가 없잖아'
자신감이 오만함으로 발전한다.
그리고 나서는 '다음에는 조금 더 긍정적인 마음으로 즐겁게 해내겠다'고 다짐한다. 자신을 돌아보고 반성하는 건 내가 늘 잘하는 부분이다.
하지만 '어쩌다 가끔 하기 때문에 습관화시키기 힘든 놈들'을 즐거운 일로 만드는 건 늘 어렵다. 두번째 방법까지만 동원하고 세번째 단계까지는 안 가고 싶은 것이 솔직한 심정이다. 단 것을 많이 먹으면 건강에 좋지 않을 테니까. 게다가 싫다는 감정 자체랑 씨름하다보면 제풀에 지친다. 막상 일 자체는 별 거 아니어서 맥빠질 때가 많다.
어쩌다 가끔 하기 때문에 습관화시키기 힘든 일을 정말로 즐거운 일로 만들기.
마음을 꼬드기고 다독일 새로운 묘수를 생각해 내야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