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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줄라이 Apr 02. 2020

든든한 백으로 곁에 있어준다는 것

방패처럼 때로는 태산처럼

잊지 마. 엄마는 항상 네 얘기를 들어주고 슬픈 일이 있을 때마다 네 손을 잡고 함께 울어줄 수 있는 사람이라는 걸.  


엄마로 살게 되면서 늘 답답한 것이 하나 있었어. ‘이 시대를 사는 엄마’로서의 롤모델이 없다는 점이 늘 아쉬웠지. ‘이상적인 엄마’라고 하면 누가 떠오를까? 신사임당? 한석봉 어머니? 다 훌륭한 분들이지만 이 시대의 엄마는 아니지.


진짜 살아 있는 엄마로서 닮고 싶은 사람은 아직 만나지 못했어. 하지만 ‘나도 저런 엄마를 가지고 싶어’라고 생각하게 만드는 그런 분들은 있더라.


바로 '곽덕순' 아주머니와 ‘황덕이’ 아주머니야. 이 두 분이 누구냐고? TV 드라마로 만난 최고의 엄마들이지. 


넌 TV 드라마를 좋아하지 않지만 '동백꽃 필 무렵'이란 드라마를 알 거야. 워낙 히트하기도 했고 비교적 최근에 끝난 드라마니까.

 

주인공 ‘동백’이는 7세때 엄마에게 버림 받고 고아원에서 자랐어. 그래서 항상 애정을 갈구하면서도 거절당하는데 두려움을 안고 있지. 그녀는 사람들의 눈치를 보고 마음 가는 대로 행동하지 못해. 버려진다는 데 대한 트라우마가 있기 때문이야. 그녀는 버림 받기 전에 먼저 포기하고 떠나버리곤 하지.

 

그런 동백이를 일으켜 세우고 당당하게 만들어준 것이 용식이야. 용식이는 항상 땅만 바라보면서 걷던 그녀가 고개를 들고 하늘을 쳐다보도록 만들어준 사람이야.

 

용식이가 그토록 동백에게 헌신적으로 사랑을 퍼부을 수 있었던 건 내면에 사랑이 가득 차 있기 때문이야. 그리고 그의 어머니, 곽덕순 여사가 아무 조건 없이 '내 새끼'만 바라보면서 그를 있는 그대로 인정해주고 그 자체로 사랑해주었기 때문이지.


TV 드라마 <동백꽃 필 무렵>

 

사실 용식이는 사회적 기준으로는 크게 내세울 게 없어. 하지만 그는 자신감으로 가득 차 있지. 외부에서 바라보는 시선과는 달리, 자신에게 만족하고 자신을 있는 그대로 좋아한단다. 요즘 말로 자존감이 높은 사람이야.

 

그토록 자존감이 높은 그가 자존감이 바닥인 동백이를 사랑하게 된 것은 어쩌면 자연스러운 일인지도 몰라.


자신에게는 넘치는 자존감이 어떤 사람에게는 생명을 구하는 '구명조끼'와 같은 역할을 한다는 것을 알게 되고, 그 조끼 덕분에 상대방의 내면에 점차 당당함이 차오르는 모습을 보는 것, 그것이 오로지 자기 덕분이라는 걸 느끼는 것은, 다른 것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벅찬 보람이었기 때문이야.

 

이렇게 누군가가 아무 조건 없이 퍼부은 사랑, 오롯이 그 사람 자체를 바라봐준 그 시선은 그런 것들이 결핍된 사람에게 전이된단다.

 

몇 년 전에 본 드라마 '또 오해영'의 엄마 ‘황덕이’ 아주머니도 무척 인상 깊었단다.


TV 드라마 <또 오해영>

 

이 드라마에는 두 명의 '오해영'이 나와. 예쁜 오해영과 안 예쁜 오해영. 예쁜 오해영은 부모로부터 따뜻한 사랑을 받지 못했고 평범한 오해영은 겉보기에는 무뚝뚝해 보여도 자식을 있는 그대로 사랑하고 외부로부터 딸을 지켜주는 방패가 되어주는 엄마 ‘황덕이’ 여사 밑에서 컸지.

 

예쁜 오해영은 자존감이 다치는 것을 참아내지 못하고 애인을 버려두고 도피했지만, 평범한 오해영에게 자존심 따위는 중요하지 않아. 창피한 줄도 모르고 좋아하는 사람에게 거침없이 다가가고 들이대지.


번번히 거절당해도 그녀의 근본적인 자존감은 까딱없어. 왜냐하면 자신을 전적으로 믿어주고 지지해주는 단 한 사람, 즉 엄마가 뒤에서 태산 같이 지켜주고 있거든.

 

결국, 오해영의 튼튼한 자존감은 사랑을 두려워하던 남자주인공의 마음을 열게 된단다.

 

요즘엔 이런 드라마가 점점 많아지는 것 같아. 그만큼 사람들은 자신을 있는 그대로 봐주고 인정해주는 '단 한 사람'. 어떤 약점을 보여도 자신을 지지해주고 떠나지 않고 품어줄 단 한 사람을 갈구하는 것 같아.

 

보통은 부모가 그 역할을 해주어야 하지만, 요즘 부모들은 본인들도 그런 사랑을 받아본 적이 없는 경우가 많단다.


엄마도 마찬가지야. 엄마도 평가와 판단, 일방적인 기대 같은 것이 없는, 순백의 사랑을 받아보고 싶었단다. 하지만 엄마의 어린 시절은 이미 끝났고 엄마는 어른이 되었지. 지나간 시간은 이미 지나간 거니까 이젠 엄마가 그런 사랑을 주고 싶단다. 바로 너에게.

 

곽덕순 아주머니와 황덕이 아주머니는 그런 의미에서 엄마한테는 선배님이자 선생님이었어. 엄마가 아이에게 주어야 할 사랑이 어떤 것인가를 생생하게 보여주었으니까.

 

있는 그대로, 모라 보이더라도, 현재 아이의 모습을 인정하고 아이가 좋아하는 것을 함께 바라봐줄 수 있는 엄마. 무슨 말을 해도, 아무리 어리석은 짓을 해도, 평가하지 않고, 판단하지 않고 아이의 기쁨에 공감하고 슬픔에 함께 울어줄 수 있는 엄마.

 

아, 한 사람 더 있다. 얼마 전에 끝난 드라마 ‘사랑의 불시착’의 캐릭터 ‘서단’ 엄마도 빼놓을 수 없어.


서단의 엄마, ‘고명은’ 아주머니는 사랑하는 사람을 잃고 식음을 전폐하는 딸을 보면서 이렇게 말하지.


“왜 해 줄 수 있는 게 없어?”

“우린 네 말을 들어줄 수 있어.”

“우린 너랑 함께 울어줄 수 있어.”


그 장면을 보면서, 그 대사를 들으면서 난 폭풍 눈물을 흘렸단다. 내가 너를 위해 언제든 해줄 수 있는 두 가지, 내가 너에게 기억되고 싶은 모습이 바로 그것이었음을 깨달았거든.


네가 이 한가지를 꼭 기억해 줬으면 좋겠어.


엄마는 항상 네 얘기를 들어주고 슬픈 일이 있을 때마다 네 손을 잡고 함께 울어줄 수 있는 사람이라는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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