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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밍이 May 10. 2024

하나님의 일을 하나님의 방법으로

하나님 나라

오래전, 소망이의 친구 중에서 마음에 들지 않는 아이가 있었다. 자세히 설명하기는 어렵지만 그 아이는 소망이에게 안 좋은 영향을 끼쳤고, 나에게도 버릇없게 행동했다.


더 싫은 것은 그 아이의 부모였다. 이기적이고 무례했다. 아이들이 아직 어렸기에 나는 그 부모와도 자주 마주쳐야 했는데, 그때마다 불쾌한 일들을 여러 번 겪었다.


솔직히 소망이가 그 아이와 어울리지 않았으면 했다. 나는 그 가족과 엮이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기도할 때마다 듣는 하나님의 음성은 '그 아이를 품으라'는 것이었다. 내가 기도하면서 그 가족들로부터 받는 스트레스와 울분을 쏟아낼 때면 하나님은 다 들으시고 나를 위로하셨다. 그런 다음 하나님의 눈과 마음으로 볼 때 그 아이와 부모가 얼마나 사랑스럽고 소중한 존재인지를 보여주셨다. 그 아이의 부족한 부분은 타고난 품성의 문제가 아니라, 부모로부터 제대로 교육받지 못한 결과였다.


그래서 나는 울며 겨자 먹기로 꾸역꾸역 그 아이에게 잘해주려고 애썼다. 아이의 버릇없는 행동과 그 부모의 이기적이고 무례한 태도를 견디면서, 나는 그 아이의 필요를 살피고 채워주려고 계속 노력했다. 그것이 선한 일이라고 믿었다. 그러다가 결국 번아웃이 왔다.


나는 하나님께 "더 이상은 못하겠습니다"라고 말하고 그 아이를 내 삶에서 지워버렸다. 하나님께서 명하신 일에 명시적으로 불순종한 것은 그때가 처음이었다. 그리고 불순종의 대가로, 나는 길고 긴 영적 침체기에 들어가야 했다.


하나님과 동행하지 못하는 삶에는 어떤 기쁨도 없었다. 나는 사막같이 메마른 삶을 견디면서 그저 살아내었다. 가끔은 억울하기도 했다. 내가 이렇게 최선을 다했는데, 끝까지 순종하지 못했다고 나를 이렇게 홀로 두시다니.


괴로운 침체기가 계속되자 나는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불순종의 죄를 회개하고 하나님 앞에 엎드렸다. 솔직히 전심으로 회개한 것은 아니었다. 여전히 그 아이를 품기 싫었고, 여전히 억울했다. 그래도 하나님께 순종할 힘을 달라고 끝까지 기도했어야 했는데 그걸 못한 것은 좀 죄송하기는 했다.


그 무렵 중보기도의 거장, 신디 제이콥스의 저서인 "대적의 문을 취하라"라는 책을 읽다가 인상 깊은 에피소드를 보게 되었다. (정확한 워딩은 기억나지 않지만) 신디가 누군가와 만나서 대화를 나누고 헤어질 때 습관적으로 "당신을 위해 중보기도할게요."라고 말하자 그가 정색을 하고 말했다. "하나님께서 당신에게 나를 위해 중보기도하라고 하셨나요? 그렇지 않다면 당신은 나를 위해 중보할 필요가 없습니다. 당신은 하나님께서 하라고 하시는 일만 하면 됩니다."


나는 이 에피소드를 보다가 갑자기 그 아이의 일이 생각났다. 하나님께서는 나에게 "그 아이를 품으라"고 말씀하셨다. 그래서 나는 '아이의 버릇없는 행동과 그 부모의 이기적이고 무례한 태도를 견디면서, 아이의 필요를 살피고 채워주려고 계속 노력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나에게 원하시는 게 과연 이것이었나?


하나님께 다시 여쭈었다. "그 아이를 품으라고 하신 게 정확히 '어떻게 하라'고 하셨던 거예요?" 하나님의 대답은 간결했다. 그 아이가 잘 되도록 중보하고, 그 아이가 잘못하는 것을 눈앞에서 볼 때 그것을 지적하고 바른 가치관을 알려주는 것, 그것이 전부였다. 아이의 가장 큰 문제는 부모로부터 제대로 된 교육을 받지 못한 것이었기에, 그 부분만 약간 도와주면 되는 것이었다. 나는 아이의 버릇없는 행동과 그 부모의 이기적이고 무례한 태도를 견딜 필요도, 그 아이의 필요를 살피고 채워줄 필요도 없었던 것이다.


나는 하나님께 무엇(WHAT)에 순종하면 될지를 여쭈었지만, 어떻게(HOW) 순종하면 될지를 여쭈어보지 않았다. 그 결과 하나님의 뜻을 지레짐작하고 헛고생만 잔뜩 했다.


최근에 나는 하나님이 원하시지만 나는 그닥 내키지 않는 일을 하나 하게 되었다. 그 생각에 부담감이 잔뜩 몰려오려는 순간, 나는 하나님께 이 일을 '어떻게' 하면 되는지 여쭈었다. 하나님이 명하신 방법은 내 짐작보다 훨씬 가벼운 것이었다. 그래서 나는 부담 없는 마음으로 순종했다.

 

순종은 선한 일을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내게 명하신 일을 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일을 하나님의 방법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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