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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피피 Sep 18. 2023

경로를 이탈하였습니다



이번 여름휴가를 맞아 남편과 딸을 데리고 제주도를 찾았다. 예전만큼 설레면서 짐을 싸는 게 아니라 그런지 마음은 생각보다 들뜨지 않았다. 여행에 대한 마음은 차분했지만 잊은 건 없는지, 다음 날 아침 잊지 않고 챙길 것은 무엇인지 다시 한번 정리하느라 머릿속은 끝나지 않는 정리들로 어지러웠다. 몸은 조금 지쳐있었다. 딸이 여행을 가기 전주부터 고열로 심히 아팠기 때문이다. 남편이 도와줬지만 홀로 딸과 보내야 하는 시간들의 합은 생각보다 컸다. 결국 제주도 여행 중 우리 가족은 병원을 찾아야 했다. 딸은 다행히 감기가 잦아지고 있었지만 되려 내 몸은 스트레스로 구내염 비슷하게 왔다고 친절한 여의사가 설명을 해주셨다. 나는 순간 눈물이 핑 돌 뻔했지만 마른침을 한 번 삼키고 말았다. 안 그래도 갑작스레 디스크도 찾아와 힘들었는데 거기서 아픈 곳이 하나 더 추가되니 서러웠다. 아프고 싶진 않았지만 아팠고 아프니 누군가에게라도 간호받고 싶고 위로가 필요하다고 생각됐다. 그러나 그런 생각도 내 위치에선 사치가 아닐까 그런 생각을 하며 처방전을 받아 들었다.     


 성인이 되고, 한 가정을 이뤄 두 사람 사이에 태어난 소중한 생명 앞에서 자연스레 나보다는 딸이 우선이 된다. 제주 여행에서 우리는 딸도 같이 먹을 수 있는 음식을 찾아서 먹어야 했기에 내가 먹고 싶었던 음식들은 그저 가고 싶었던 곳으로 남겨지고 말았다. 물론 모든 일정에 아이를 위해 맞추진 않았지만 어린아이의 존재는 내가 하고 싶은 것들을 야속하게 할 때도 있었다. 그것이 딸의 잘못도 아니고 그렇다고 내 잘못도 아닌 누구의 탓도 아니건만 나는 또 딸 앞에서 미숙한 엄마의 모습을 보이고 말았다.    

  

 예쁜 배경 사이로 행복한 우리 가족을 남기고 싶은데 좀처럼 도와주지 않을 때, 나의 사진도 남기고 싶은 순간에 아이의 짜증이 내 귀에 박힐 때마다, 올라오는 화들을 억누르다 터지다 반복하면서도 나는 나를 그 자리에 꼿꼿하게 남기려 애썼다. 아이가 태어나고 엄마가 되었다고 해서, 일을 하지 않는 주부라고 해서 사진에서마저 내가 사라지는 것도 싫었고, 아이 위주의 사진만 남기는 것이 내게는 더 큰 행복이라고 여겨지지 않았다. 어쩌면 내가 이렇게 생각하게 된 건 혼전임신에, 신혼조차 즐기지 못한 채 가정을 이뤄낸 현실 앞에서 내가 손해를 본 게 더 많다고 생각한 얕은 마음일지도 모른다.     


 한동안은 좋아하던 옷 쇼핑도 잠시 멈췄다. 마음 같아선 언제든 사고 싶을 때마다 사고 싶었지만 이제는 우리 집의 소비패턴을 너무나도 잘 알기에 무엇을 줄여야 할지 잘 알았기 때문이다. 그러다가 아이와 나선 외출에 눈이 돌아가 결국 맘에 드는 옷을 사고 나면 그동안 닫혔던 지갑이 문을 열고 나와 카드를 내밀고 만다. 그렇게 결제를 하고 금액을 다시 실감하면 남편에게 미안해지는 마음과 알바라도 해서 사고 싶은 것을 좀 더 편하게 사볼 궁리를 해보게 된다. 그러다 이내 다시 현실로 돌아와 보면 아이의 어린이집 등하원 시간에 맞춰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없음에 핸드폰의 화면에서 눈을 떼고 만다. 그동안 열심히 쌓아온 내 직장에서의 경력도, 그 사회 안에서 일어나고 있는 발 빠른 움직임들도 더 이상 내가 따라가기에 버거운 듯 숨이 찬다. 다시 일을 하고 싶은 이 마음과 일 대신 자식 하나 바라보며 잘 키워내고 싶은 마음의 양가감정이 한 번씩 왔다 갔다 할 때마다 나는 무엇을 위해 여기에 존재하는지를 또 고민하면서.     


 나라는 존재를 잊지 않기 위해 누군가를 만나고 나를 가꾸는 것이 가끔은 사치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그럴 때마다 한 번씩 억누르는 것이 돈인지 나인지 헷갈리곤 한다. 그러나 길을 잃은 나는 여전히 엄마로서도, 나라는 존재로서도 잘 해내고 싶어 욕심을 부린다. 그러다 또 한 번 진정으로 내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고민하다 보면 고민은 어느새 먼지처럼 사라지고 말 때가 많다. 일상의 연속 안에서 나를 깊게 돌아본다는 것은 좀처럼 쉬운 일이 아니라는 걸 또 깨닫고야 만다. 어디에 서 있어야 내가 나를 진정으로 마주할 수 있게 되는 걸까. 어딘지도 모를 그곳에 덩그러니 서 있는 나를 생각하노라면 차라리 목적지까지 막힘없이 길을 안내하는 내비게이션처럼 나의 꿈이 무엇인지 그 길로 안내해 주면 안 되냐고 묻고 싶다. 나는 지금 어디로 가고 있냐고, 목적지가 있기는 한 거냐고.      


 그러나 나는 현재 경로를 이탈한 자. 목적지를 스스로 재설정해야 하는 자. 로딩이 오래 걸릴 뿐 나는 알고 있을지 모른다. 내 목적지가 어디인지. 다만 가는 길마다 경로를 이탈하다 보니 목적지까지 도착하는 데 오래 걸리는 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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