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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이도 Apr 07. 2023

돈과 개미와 인간

언젠가의 겨울밤이었다. 나는 판교역 인근의 한 까페에서 한 금융권 남성과 커피챗을 가지기 위해 기다리고 있었다. 인생에 금융권 종사자는 처음이었기에 어떤 사람일지 궁금한 마음이 가득했다. 이윽고 칼같이 각이 잡힌 양복을 입고 세상 만물을 내려다보는 표정으로 까페로 들어온 그는 내가 앉은자리로 묘하게 건들거리며 다가와 악수를 청했다. 퇴근을 하자마자 출발했는데 길이 너무 막혀서 조금 늦었다고 했다. 이름이 무엇인지, 나이는 몇 살인지, 관심사는 무엇인지 뻔한 대화 몇 개가 오가고 난 뒤 그는 단도직입적으로 묻겠다며 앞으로 뭐가 되고 싶냐고 물었다. 음악과 문화예술을 공부하던 중 국제개발에 조금씩 관심을 가지던 터였다. 나는 최근 3세계 국가의 문화예술분야 개발과 교육 개발 원조에 관심이 생겼다고 말했다. 일순간 그가 되지도 않는 소리를 들은 것처럼 코웃음을 쳤다. 갑작스레 변한 그의 인상에 나는 당황스러웠다. 왜 웃어요? 그는 다시 세상 모든 것을 제 밑으로 바라보는 눈으로 나를 바라보며 말했다.


"몇 살이라 그랬죠? 위에 있는 사람들이 밑에 있는 사람들을 같은 인간으로 볼 거라고 생각해요? 대중은 발에 툭툭 채이는 개미만도 못해요. 누가 개미 죽는 거 신경 쓰나요? 죽든지 말든지 상관없이 갈길 가잖아요. 우리 커피는 여기까지 할까요. 아직 많이 어린것 같아서 조언 하나 할게요. 앞으로 정말 ‘인간’ 답게 살고 싶다면 저 위에 있는 사람들과 생각을 동기화시키세요. 지금 당신 인생을 바꿀 수 있을 정도로 중요한 말 해준 거예요~"


그러곤 그는 인사도 없이 제 가방을 들곤 사라진 것이다. 나는 생전 처음 겪어보는 당황스러운 상황에 한동안 자리에서 떠나지 못했다. 무언가를 잘못한 사람처럼 얼굴이 화끈거리던 것과 속에서 낯설게 치고 올라오는 감정들은 차치하고서라도 그가 말하는 윗사람이란 누굴 뜻하는 건지 그는 왜 나에게 이런 말을 하고 사라지는지 알 수 없었다. 어쨌든 생각지도 못한 관점을 얻게 된 순간으로 내 머릿속에 꽤나 인상 깊게 각인된 모양이다.


시간이 흘러 돈이 주는 자유의 맛을 알게 된 나는 이제 자발적으로 돈과 자본주의와 자산 증식에 관심을 가지고 찾아본다. 그러던 중 몇 년 만에 그가 번뜩 떠오른 것이다. 돈이 최고의 가치인 세계를 알려준 그 사람. 그는 원하던 대로 그런 사람에 가까워졌을까? 자본주의 하에서는 정말 돈이, 더 많은 돈이, 더더더 많은 돈이 자원 경쟁의 관점에서 승리의 지표가 될 수 있음을 알지만 더 많은 자원 획득 외에 다른 가치를 추구하는 것을 미개한 것으로 바라보는 관점은 여전히 조심하고 싶다. 극단적인 마음은 참으로 효율적이고 생산적일 수 있으면서 동시에 아주 편협하고 위험하기 때문이다. 돌이켜봐도 별에 별 사람들이 다 있다. 재미난 세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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