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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삶시 세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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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이도 Apr 09. 2023

할머니 냄새

나의 친할머니는 매일매일 옷을 아침저녁으로 두 번 갈아입으실 정도로 깔끔하신 분이었다. 어렸을 적 할머니와 함께 살던 시절, 나는 그녀를 보고 배운 대로 매일 아침저녁 비누로 목과 귓속까지 뽀득뽀득 씻고 깨끗하게 다려주신 옷으로 갈아입었다. 할머니를 앞에서 와락 안을 때마다 할머니는 아이고 우리 강아지라고 나를 부르시곤 늘 똑같은 질문을 하나 던지셨다.


할미 노인 냄새 안 나냐?


나는 노인 냄새가 무엇인지 몰라 그냥 할머니 냄새가 난다고 했다. 그럼 할머니는 항상 자신의 옷 냄새를 킁킁 맡으시며 그러냐 하고 다른 주제로 휙 말을 돌리시는 것이었다. 할머니가 가진 패턴이었다. 노인 냄새가 나냐고 묻고 늘 똑같은 나의 대답을 듣고 다른 주제로 넘기는 것.


오랜만에 같은 질문을 들었던 때가 있었다. 중학교 때 치매 증세가 오신 할머니를 집에서 모시기 시작한 후였다. 할머니는 내가 어릴 때와 똑같은 말투로 자신에게 노인 냄새가 나냐고 물으셨다. 그 사이 머리가 조금 큰 나는 할머니가 궁금해하시던 노인냄새가 어르신들에게서만 나는 체취임을 알고 있었다. 지하철이나 다른 공공장소에서 어르신들을 마주했을 때 어렸을 적 할머니 냄새와 비슷한 냄새가 났기 때문이다. 그래도 깨끗한 세제향과 늘상 사용하시던 오이 비누향이 섞인 할머니 냄새는 아무나 나지 않았다. 그래서 말했다. 아니 그냥 할머니 냄새나요. 할머니는 그때와 똑같이 온몸의 냄새를 킁킁 맡으시곤 그러냐 하며 습관처럼 말을 돌리셨다. 그 순간 나는 직감했다. 할머니가 내게 처음 그 질문을 건넸던 그때부터 이미 그녀는 자신이 걱정하던 그 냄새가 자신에게 나고 있음을 짐작하고 있었을지도 모르겠다고. 그 이후로도 몇 번 더 같은 질문을 반복하시던 할머니는 한순간 삶의 많은 부분을 잊고 어린아이가 되었다.


나이가 들어가며 예전만큼 신체에 순환이 잘 되지 않으면 노인 냄새가 나기 시작한다고 한다. 인간이라면 누구나 겪을 자연스러운 일. 그래도 실제로 겪는 것은 다를 것이다. 머리로는 알아도 마음으로 받아들이기 어려운 많은 것들과 마찬가지로 말이다. 할머니에게 노인냄새란 이젠 정말 영락없이 노년에 접어들었다고 인정할 수밖에 없는 일종의 마지노선이었을까? 고작 전만큼 밤을 새지 못하거나 소화가 되지 않는 것만으로도 마음은 이토록 묘한데 말이다. 열 걸음을 걷고 쉬었다 가자고 나를 붙잡으시던 할머니가 생각난다. 한세월을 쉬어야 다시 열 걸음을 걸을 수 있는 시간을 맞이하기 두렵다. 세월이 흘러도 마음은 별반 다르지 않을 것 같다. 할머니의 마음도 그랬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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