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근을 하고 그를 만나러 가던 길이었다. 오늘 대화 중 그가 보낸 한 메시지를 계속해서 곱씹었다. 당연히 우린 앞으로 서로가 더 좋아질 거야. 되새길수록 별의 별 맛의 웃음이 터져 나왔다. 사람의 욕망과 감정은 이렇게나 변덕스럽고 변화무쌍한데 어떻게 그런 말을 할 수 있을까? 젊은 날의 치기인가? 용기를 낸 걸까? 아니면 아직 아무것도 겪어보지 않은 걸까? 아니면 알면서도 믿고 싶은 걸까? 그 이유가 무엇이건 사랑이라는 감정을 긍정적으로 바라보는 그가 부러웠다. 동시에 마음에 경보가 울렸다. 감정이 피어오르고 있었다. 전에도 겪어본 적 있었다. 사랑에 빠지는 일은 삶에 대체할 수 없는 힘과 행복을 가져다주면서 동시에 딱 그 정도 크기의 아픔도 각오해야 하는 일임을 덕분에 알았다. 끝이 있는 연인 관계에 대한 지침과 지겨움,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랑을 진심으로 믿고 싶다는 욕망 둘 사이에서 마음이 외줄 타기를 했다. 그 아이가 괜찮은 사람처럼 느껴지는 만큼 더 신중해지고 싶었다.
그날은 평소보다 말을 많이 했다. 적막이 흐르면 마음이 피어오르고 있는 감정을 보라고 자꾸 눈앞에 갖다 댔다. 아직 시간이 필요하다고 두려워서 도망치고 싶었다. 그래서 일단 뭘 말하는지도 뭘 말하고 싶은지도 모르고 말을 이어나갔다. 그는 나의 대책 없는 횡설수설을 옆에서 조용히 들어주었다. 양재천을 두 바퀴쯤 돌았을 때 내 말에 내 귀가 아팠다. 도대체 얘는 무슨 생각으로 이걸 다 듣고 있는 거지? 궁금증이 내 마음의 소리보다 커졌을 때 마침내 입이 닫혔다. 고개를 돌려 그를 쳐다봤다. 그는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뭘 묻고 싶었는데 질문이 한순간에 잊혀졌다. 너는 말 한마디 없이 말하는데 능한 사람이구나. 아이 어도어 유. 나도 모르게 말이 튀어나왔다. 생각보다 덤덤했던 마음이 방금 전의 말이 실수가 아니었다고 알려줬다. 그가 참아왔던 숨을 토해내듯이 파하 하고 웃었다. 꽉 잠가놓은 창문을 오랜만에 활짝 연 것처럼 내 마음에도 깨끗한 바람이 송송 불어왔다. 나도 모르겠다. 바람이 차갑고 달아서 아이스크림을 문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