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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삶을 가꾸는 건축가 Apr 18. 2022

문득 지나가다가 새를 보다

이철의 탐조 이야기

이철은 문득 길을 가다가 어딘가 유심히 쳐다보며 걸음을 멈추고 있을 때가 있다. 멈추어서 날고 있거나 나무 등에 앉아 있는 새를 보면 유심히 쳐다보곤 한다. 누구인지 궁금증을 유발하기 때문이다. 아니면 버릇처럼 쳐다보는지도 모른다. 그 새의 이름을 알게 된다고 해서 뭐 달라지는 것은 없다. 그래도 버릇처럼 천천히 시선을 옮겨 뚫어져라 쳐다본다.      

한참을 보아도 소리만 들릴뿐 모습을 못 보기도 하지만, 운이 좋으면 모습을 볼 때도 있다. 새가 보이면, 새의 크기가 어떤지, 어떤 자세로 앉아있는지, 어떤 행동을 하고 있는지, 무슨 소리를 내고 있는지 살핀다. 몇 가지 정보를 살펴보면 어떤 새인지 알 수 있다. 알게 된다고 뭐 달라지는 것은 없지만, 어떤 생명체가 있었다는 것을 알아주는 것 자체가 의미가 있었던 것은 아닐까.     

이런 버릇이 생긴 시작점이 언제였을까. 그 시작점은, 새를 처음 알게 된 것은 초등학교 때 할아버지 댁에 놀러 갔을 때부터였다. 그때 우리 집은 인천 십정동에 있었고, 할아버지 댁은 부천 송내에 있었다. 주말마다 할아버지 댁을 방문하곤 하였다. 그때 할아버지 댁에 앵무새 두 마리가 있었고, 내가 너무 좋아해서인지, 할아버니께서는 가져가라고 했고, 형과 나는 앵무새 두 마리가 든 새장에 막대기를 껴서 들기 편하게 만들 다음에 전철을 타고 집으로 가져왔다.     

새를 집에서 키우는 것은 그리 유쾌하지는 않았다. 냄새나고 털 날리고 매일 밥을 줘야 하고, 새장을 주기적으로 청소해야 했다. 당시 우리는 단독주택에 살았지만, 새를 밖에서 키울 수는 없었다. 새를 밖에 내놓으면 고양이들의 습격에 안전하지 않았다. 그래서 발코니 또는 중문이 달려있었던 현관에 놓고 키웠다.     

부모님께서는 그리 좋아하시지는 않았지만, 내가 너무 좋아해서 인지 꽤 오래 키우게 되었다.

앵무새를 키우다가 십자매도 키우고, 문조도 키우고 중학교 때까지 키우다가 고등학교 때는 꿩을 마당에서 키우다가 날려 보내기도 했다. 그게 시작이었다.      

두 번째 계기는 대학교 입학하고 놀기 바쁜 3월 즈음이었을 것이다. 이철은 서울시립대학교 건축도시조경학부에 합격해서 입학했다. 사실 조경을 하고 싶어서 갔는데, 아버지께서는 건축을 하길 원하셨다. 그때가 97년이니, IMF 이전이라서 건축이 완전한 활황세를 타고 있을 때였다. 이철과 아버지의 생각이 달랐지만, 어찌 되었든 2개를 동시에 충족하는 학부가 만들어져 있어 그곳에 가게 되었다. 입학하고 동아리를 찾아다녔다. 조경이나 식물에 관련된 곳이 어디 있나 찾아다녔다. 그러다가 만난 곳이 #야생조류연구회 였다. 그나마 이철이 생각한 자연에 제일 가까운 학과였다. 더군다나 이 과는 조경과에 연결점이 많아서 동아리 가입하는데 망설임이 없었다.     

이 동아리는 새를 연구하고 보러 다니는 곳이었다. 일주일에 여러 번 학교 뒷산인 배봉산에 새를 보러 갔다. 매주 서울 근교로 새를 보러 갔다. 그리고 방학 때마다 섬에, 철새도래지에 새를 보러 갔다. 이렇게 새를 보는 것을 '탐조探鳥'라고 했다. 우리나라에는 새가 400여 종이 넘는 새가 있는데, 대학교 때 열심히 보면 200종 정도 보고, 나처럼 중간 정도 하면 100종 정도 본다.

그때는 누가 많이 보는 것이 마치 경쟁 같은 것이었다. 지금은 열심히 탐조를 하지 않으니, 몇 종 정도 알아볼까. 그래도 새가 있다는 것은 아니, 그것이 다행이다. 동아리 활동에서 또 하나 재미있었던 것은 동아리 멤버들에게 새명을 지어주는 절차가 있다. 1학년 때 열심히 활동하고 활동을 한다는 것을 증명하면 2학년 초반쯤에 새명을 받았다. 새명은 그 사람의 성향, 생김새 등등을 면밀히 검토해서 선배들이 후배들에게 선물을 해주는 행사로 아주 중요했다. 나의 새명은 "밀화부리". 왜 밀화부리였는지는 가물가물하다.      

우리 학교에서는 겨울마다 제주도에 탐조를 갔다. 일주일씩 가서 3개의 포인트에서 탐조를 했다. 개체수를 세고, 매년 그 변화를 조사했다. 특히 제주도에는 저어새가 많이 있었다. 많이라고 해봐야 20여 마리 정도다. 전 세계 2000여 마리 정도 있으니, 20여 마리를 한 번에 보는 것도 장관이었다. 넓적한 부리를 물속에 반쯤 담그고 휘저으면서 먹이를 찾는 모습이 아직도 생생하다.      

대학교 졸업하고 바쁜 회사생활에 #탐조 활동은 거의 없었다. 그러나, 언젠가 다시 시작할 수 있을 것이라고 믿는다. 지금도 버릇처럼 고개를 돌리고 쳐다보는 버릇이 있는 것을 보면 그 열정이 몸 안에 있음을 느낀다. 지금은 새 이름을 많이 잊어먹었다. 그래도 가끔 도감을 보면서 다시 이름을 되새긴다. 문득 지나가다가 새를 보고 있는 이철을 보면 윤영은 가끔 무슨 새인지 묻곤 한다. 매번 답을 잘해주지는 못하지만, 그래도 무슨 새인지 이름을 알려준다.

지금은 아직 경황이 없지만, 언젠가 다시 탐조를 시작하는 그날을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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