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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삶을 가꾸는 건축가 Jun 20. 2022

주택 살이

아파트에서 주택으로 이사하기

대한민국에서 아파트에 사는 사람들의 수가 과반을 넘고, 다양한 집들이 외면 받고 있는 현실에서 건강한 주거공간은 무엇인가에 대한 고민을 하지 않을 수 없다. 나는 30년을 단독주택, 다가구주택, 원룸 등에 살았고, 최근 10년은 아파트에 살다가 다시 단독주택으로 이사를 했다. 법적으로 주거공간은 단독주택과 공동주택으로 나뉘지만, 현실에서는 아파트단지와 아파트단지가 아닌 주거공간으로 구분된다. 최근에는 아파트단지가 아닌 골목에 있는 동네의 건축을 ‘중간건축’, ‘중간주택’이라고 칭하며, 이곳에 우리의 건강한 삶에 답이 있다고 말하기도 한다.

10년 동안 살았던 아파트의 삶은 편리함 그 자체였다. 일정의 관리비를 지출하면 아파트 단지 내 공원을 산책할 수 있고, 재활용쓰레기도 관리사무소에서 정리해주었다. 주차장도 넓어서 주차문제로 서로 얼굴을 붉힐 일도 없었다. 현관문만 닫으면 옆집에 누가 사는지 전혀 신경 쓸 필요 없어 원하면 주변과 단절하는 것이 매우 쉬운 구조였다.

그러던 중 작게나마 내 사업을 하게 되었고, 집과 사무실을 한 장소에서 해결하는 방법을 고민하게 되었다. 그 고민 속에는 기능적인 해결과 함께 편리한 아파트를 떠나 건강한 집에 대한 갈망이 있었다. 건강한 집에 대한 생각들에 맞는 장소를 고르기 위해서 주말마다 답사를 다녔다. 거의 1년은 돌아다니고 부동산에 문의하고 거주조건에 대한 체크리스트를 만들어서 일정 점수가 되는지를 재차 검토하였다. 주거지로 아파트를 고르는 것보다 다양한 조건이 많은 중간주택을 고르는 일에는 많은 에너지가 소요되었다.

거주조건 체크리스트에는 다음과 같은 조건이 있었다.

첫 번째는 지하철과의 거리이다. 이것은 주거지로서 삶의 안정성과 관계가 있다. 통상 인식하는 역세권은 도보 5분 거리로 지하철에서 10분 도보거리라고 하면 역세권은 아니라고 인식한다. 그러나, 주거지로서의 안정성을 갖기 위해서는 어느 정도 번화한 거리에서 안쪽으로 들어갈 필요가 있고 그 거리는 도보 10분 정도인 것 같다. 지하철과의 적당한 거리로 인해서 추가로 얻을 수 있는 장점은 왕복 20분의 걷는 시간이다. 또한 이러한 골목길 주택의 장점은 도보로 걸어 다니는 루트가 다양해질수 있다는데 있다. 매일매일 다른 길로 다니면서 동네의 변화도 볼 수 있어, 두뇌 회전에 좋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두 번째는 활성화된 동네 골목시장이다. 매일매일 다니는 길에서 그 날 필요하거나 문득 먹고 싶은 것이 있으면 쉽게 구매할 수 있다. 더욱이 최근에는 지역사랑상품권이 있어 어느 경로보다도 저렴하고 좋은 물건을 얻을 수 있다.

세 번째는 산책할 수 있는 공원이나 자연이다. 도보권내에 언제라도 편하게 접근할 수 있는 작은 공원이 있어 산책과 휴식이 가능한 곳이 있어야 한다. 동네 산책중에 자연스럽게 만날 수 있는 자연이 있다면 최상일 것이다.

네 번째는 텃밭이다. 주택의 옥상이나 작은 마당에 상추 등을 심을 수 있는 작은 화분을 놓을  곳이 있다면 나만의 텃밭을 가꾸며, 건강한 먹을거리를 먹을 수 있다. 도시에서도 자연이 주는 기쁨을 느낄 수 있다.

마지막으로 땅과 가까워야 한다. 현관을 열면 바로 길이 보이고, 몇 걸음만 내딛으면 도로에 도달할 수 있어야 한다. 아파트 현관을 열고 엘리베이터 홀에서 기다리고 1층에 내려와 홀을 지나 밖으로 나가는 과정은 땅과 멀어지는 단절의 느낌이었다.

고민 끝에 거주조건에 부합하는 동네 안에 있는 오래된 붉은 벽돌집을 만나 이사를 했다. 처음에는 동네주택의 삶이 낯설었지만, 점점 건강한 삶을 위한 공간에 자연스럽게 적응하고 있다. 지난 겨울에는 폭설이 내려 밤에 집 앞에 눈을 쓸었다. 아파트에 살면 절대 하지 않을 일인데, 내 집 앞의 눈은 내가 쓸지 않으면 아무도 쓸어주지 않으니, 당연히 해야 할 일이었다. 집 앞 골목길의 눈을 치우는 것도 골목길 주택에 사는 낭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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