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플릭스 시리즈의 앤은 동명의 원작과 애니메이션처럼 분명히 우리에게 감동을 주지만, 사뭇 다른 점도 있다. 이 드라마가 어떤 면에서 페미니즘의 교과서 같은 형태를 취하고 있기 때문이다. 인간이라면 모두가 페미니스트여야 한다는 말에 동의한다. 너도 페미 하냐?라는 물음은 완전히 무지에서 비롯된 것이다. 페미니즘이라는 단어만 나와도 인터넷에서 댓글 싸움이 벌어지고, 아주 민감하게 반응하는 요즘 같은 때에 이 드라마가 어쩌면 도움을 줄 수도 있겠다. 빨간 머리 앤의 또 다른 주인공인 마릴라는 넷플릭스의 앤 시리즈에서 아주 중요하고 또 의미가 있다. 앤이 페미니즘의 한가운데에서 본인의 신념을 펼치는 캐릭터라면, 마릴라는 그런 앤을 위해 바뀌어가는 입체적인 캐릭터다. 사실 이 이야기는 앤 보다도 마릴라의 성장담이다.
마릴라
시즌 1에서 마릴라는 융통성이 없고 고지식하며, 그가 살고 있는 에번리 사람들도 마찬가지다. 입양이라는 큰 결심을 한 마릴라에게 앤은 예상치 못하게 생긴 짐과 같았을 것이다. 적당히 연민을 느끼고 도덕적인 관념이 있는 그로서는 아이를 쉽게 내칠 수도 없거니와, 아이를 덜컥 맡기에는 다가올 고난이 너무나 피곤한 중년의 여성이다. 초반에 앤에게 호의적인 모습을 보여주는 매튜와 상반되기 때문에 시청자들은 마릴라를 더욱 못된 계모처럼 볼 수밖에 없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생각해보자. 그 누가 예상치 못한 아이를 선뜻 입양할 수 있을까? 시종일관 자연에게 말을 걸며 눈 앞의 모든 것에 과하게 반응하는 정신없는 소녀를. 살면서 이 정도의 행복을 느껴본 적이 없다고 신에게 감사하는 아이를. 결국 마릴라는 앤을 돌려보내는 데에 실패한다. 이 선택은 마릴라의 모든 인생을 바꾸어놓는다.
초록 지붕 집에 온 앤은 학교에 가게 되고, 마릴라는 중년의 나이에 처음으로 아이의 엄마, 보호자라는 역할을 맡게 된다. 어느 날 집에 찾아온 마을 주민은 마릴라를 <진보적인 어머니 모임>에 초대한다. 그때 마릴라는 처음으로 알게 된다. 아이를 키우기 위해서 많은 새로운 것들에 부딪혀 보아야 한다는 것을. 자칭 페미니스트라는 이 부인들은 현시점으로서 아주 계몽적인 이야기를 늘어놓지만, 마릴라는 초대받은 것이 기꺼우면서도 본인이 이 자리에 섞이지 못한다는 느낌을 받는다. 부인들이 말하는 페미니즘은 그들의 딸을 위한 것이다. 여성들이 직업을 가져야 한다, 고등교육을 받아야 한다. 모두 맞는 말이다. 하지만 그걸로 원하는 것은 무엇일까? 더 높은 자리에 올라서 높은 직위의 남자와 결혼하는 것?독신 여성을 위한다고 말하지만... 드라마의 시대적 배경으로 보아, 이에 관한 논의가 오가는 것 자체는 꽤나 놀라운 일이지만 여전히 현시점의 우리는 어딘가 불편하다. 마릴라도 그렇다. 그가 본질적으로 이곳에 어울리지 못하는 이유는 이 초록지붕의 가정이 특수한 형태인 이유도 분명 있을 것이다. 이 부인들은 모두 결혼을 선택한 사람들이지만, 마릴라는 그렇지 않다. 그녀는 결혼도 남편도 없다. 다만 남들과는 다른 생각을 하고, 사소한 것을 좋아하고, 쉴 새 없이 말을 늘어놓는 딸이 한 명 생겼을 뿐이다.
앤은 학교에서 큰 상처를 받고 돌아와 학교에 가기 싫다며 마릴라에게 안겨서 운다. 나는 그 상대가 왜 매튜가 아닌 마릴라일까?라는 생각을 종종 했다. 드라마에서 보여주지 않은 그들의 시간 사이에 앤에게 마릴라는 어떤 존재였을까 하고.
선택, 그리고미래
에번리의 조그만 학교에 있는 아이들은 이 작은 마을의 어른들이 말하는 모든 것을 진리처럼 받아들인다. 앤은 학교의 상급생 하나를 두고 성적인 농담을 했다. 앤은 그런 농담들의 의미를 몰랐지만, 모두가 알고 있었다. 어른들이 하던 말을 따라 했을 뿐인데 무엇이 문제였을까? 앤의 친구들은 모두 앤을 싫어하게 되고, 차별적인 선생님도 앤을 싫어한다. 아이들은 종종 심하게 악의적이고, 의도하지 않았더라도 누군가에게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준다. 그걸 해결하는 방식은 미숙하다. 본인의 상처를 갈무리하는 것에도 그렇다. 떠올려보면 우리의 어린 시절에도 그랬던 거다. 어른들이 생각하기에 별 것 없는 것으로도 아이들은 날카롭게 반응한다. 조리 있는 말과 상식이 오가지 않는 이곳에서 자신의 무언가를 형성하는 것은 어려운 것이다. 아이들의 세계는 그런 거다. 쉽게 상처 받지만 잘 낫지 않는. 하지만 말마따나 그 아이들 모두가 그런 것이 익숙하지 않다. 그래서 그걸 본인이 가장 신뢰하는 어른들의 반응으로 평가한다. 마릴라가 앤을 안아주지 않았다면 어땠을까? 네가 그런 말을 한 것은 잘못한 거라고, 이대로라면 학교에 보낼 수 없다고, 그 아이들에게 사과라고 했다면? 앤은 그 일을 하나의 법칙으로 기억할 것이다. 그리고 그건 분명히 아이에게 도움이 되는 방법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알고 있다. 앤의 지난 모든 시절을 알게 된다면 앤을 탓할 수 있을까? 그 애가 겪어온 많은 고난들이 만들어낸 모습을 진정으로 미워할 수 있을까? 아마 앤은 그저 친구들 사이에서 재미있는 아이로 기억되길 바랐을 것이다.
마릴라는 앤의 잘못에 대해 다그치지 않고, 직접 학생의 부모님을 만나 대화를 나누어 보려고 한다. 집 안으로 들이는 것조차 꺼려하는 차가운 반응과 함께, 앤의 사정을 참작해 줄 생각도, 그 아이가 선하다는 것도 인정할 수 없다는 대답이 돌아온다. 그건 고아에 대한 편견과 맞물려 더욱 견고하다. 이제부터는 어른의 몫이다. 그런 애랑 같은 교실에서 교육을 받을 수 없다고 항의를 하거나, 그 애를 안아주거나. 마릴라는 그들에게 말한다. 부모는 아이의 잘못을 마땅히 교육해야 하나, 아이가 지금껏 살아온 것은 본인의 잘못이 될 수 없고, 그것을 옳은 방향으로 이끌어가는 것은 어른이 할 일이라고. 그리고 그것을 하려고 하지 않는 사람들은 어른일 수 없다고, 당신들은 페미니스트가 아니라고. 마릴라의 진정한 첫 번째 선택은 바로 이 지점이었다. 마릴라는 마침내 결정한 것이다. 지금까지 맞다고 생각해왔던 안온한 품에서 벗어나기로. 붉은 머리에 빼빼 마른 이 작은 아이의 뒤에 서주기로. 앞으로 완전히 새로운 길로 들어서는 것을 기꺼이 선택한 거다.
그러니까 어른도 똑같은 것이다. 앤의 시선으로 보는 어른들은 도저히 이해가지 않는 행동을 하고 그것을 강요한다. 우리가 어릴 때도 그랬다. 어른이 되면 너도 이해할 거야, 라는 수많은 말들에 묻혀버린 의문들. 하지만 결국 어른이 된다는 것은 무엇일까? 역시 그게 맞았지, 라면서 과거의 모든 것을 답습하는 것? 의문을 하던 아이도 결국 어른이 된다. 그 어른들은 분명 지금의 어른들과는 많은 방식에서 다를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어른이 되어서도 바뀔 수 있다. 생각을 바꿀 수 있고, 잘못을 인정할 수 있다. 그걸 하지 못하는 건 어른이 되지 못한 것이다. 모 웹툰의 유명한 장면처럼, 성인이 되는 것과 어른이 되는 것은 하늘과 땅만큼이나 다르다. 19살 한 해가 지나가는 순간 우리는 성인이 되지만, 특별한 지혜를 얻는 것은 아니기에.
평범하고싶은모두에게
마릴라의 고민은 시즌 전반을 거쳐 계속해서 늘어가고, 그만큼 발전한다. 이 느릿하지만 분명한 흐름을 함께하면서 드라마가 전하는 완곡한 페미니즘의 메시지를 분명히 알 수 있을 것이다. 마릴라가 변화한 이유는 오로지 앤 때문이다. 마릴라가 변하지 않아도, 그녀 자체의 삶에는 아무 문제가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 아이의 삶이 지금까지 보다 더 행복하기를 바라기 때문에, 더 아름답고 반짝이는 미래를 살아갔으면 해서,... 그래서 결국 그 페미니즘이 무엇인가? 나의 행복과 직접적으로 연결되지 않는다고 해서 침묵해야 하는 것이 아니다. 나의 가족, 친구, 자녀, 결국에는 우리 모두가 같은 선상에 서기 위한 노력이다. 누군가를 누르고자 함이 아니다. 그렇기에 평등을 주장하는 현실의 모두가 알아야 하는 것이고, 나아가야 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