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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호도 Apr 15. 2021

꿈의 도시에서, <에밀리, 파리에 가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 Emily in Paris , 데일리 프랑스/ 경선

넷플릭스의 여성들 06

에밀리, 파리에 가다 <Emily in Paris>

분량 1 시즌 10

평점 3.0



 파리에 한 번도 가보지 못한 나는 언제나 파리의 꿈을 꾼다. 말 그대로 꿈같은 도시, 파리. 파리에서 맞는 아침을 상상해 보면, 음.. 일단 창문 밖에 에펠탑이 보이고, 아침식사로 근처 베이커리에서 사 온 바게트와 (핸드 드립으로) 갓 내린 커피 (ㅋㅋㅋ) 등이 떠오른다. 내가 생각하는 낭만의 도시 파리는 이런데, 막상 파리에 다녀온 사람들은 다시 가고 싶은 곳으로 잘 꼽지 않더라. 왜일까? 사진의 풍경은 그대로 일 텐데, 무엇이 우리의 발걸음을 돌려놓는 것일까.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에밀리, 파리에 가다>는 파리에 환상을 가진 에밀리가 도시에 적응해 가는 과정을 담고 있다. 주인공 에밀리는 미국인으로, 파리에 출장 기회를 운 좋게 얻게 되어 고향을 떠나 프랑스로 향한다. 사랑하는 남자 친구를 뒤로 하고 망설임 없이 파리행을 선택할 정도로, 그녀는 커리어에도 진심이고 파리에 대한 로망도 진심이다. 뭔가 이상한 것들은 새로운 도시의 설렘으로 잊혀지고 모든 게 잘 될 것만 같은 기분이 드는데! 현실은 하는 것마다 잘 되는 일이 없다. 이 드라마에서 에밀리는 완벽한 이방인으로, 동등한 조건에서 업무에 대한 능력을 인정받던 과거와는 완전히 다른 포지션이다. 그녀의 제안이 받아들여지기 위해서는 남들보다 열 배 스무 배의 조건들이 갖춰져야 하는 것이다. 드라마 내에서 이런 지점을 재미있게 표현한 점들이 많다. 미국과 프랑스의 문화적 차이를 적나라하게 보여주는데, 아무래도 미국인 시점이 주인공이다 보니 조금 치우쳐진다는 평도 있는 듯하다. 어쨌든 양국의 문화가 다 생소한 나에게는 눈도 즐겁고 재미있는 작품이기는 했다.



낯선 곳에서



1. 언어

 타지에 가서 제일 서러울 때 언제일까. 바로 말 안 통할 때일 것이다. 나는 하루 종일 말 안 하고도 살 수 있어, 하는 사람 있을까? 설령 있더라도, 부당한 일을 당했을 때 나 자신을 변호할 수 있는 것은 오로지 나뿐이며, 그걸 언어로 전달할 수 있는 것도 나밖에 없다. 극 중 에밀리는 프랑스에 와서 계속 영어만 쓰려고 한다며 직장 동료에게 지적을 받는다. 에밀리가 시간을 내서 프랑스 학원에 다니는 것, 그들에게 무례하지 않게 말하려는 노력은 보이지 않기 때문에 없는 것이 된다. 사람들이 날 보며 무언가를 말하며 웃는데, 나는 그게 무슨 뜻인지 모르는 것. 비슷한 기억을 가진 이들은 모두 공감할 만한 최악의 상황이다. 이 에피소드는 동양권인 우리에게 더 아프게 다가오기도 한다. 실제로 교환학생, 유학을 다녀온 많은 친구들이 인종차별을 호소하곤 했고, 유독 파리는 그것이 심하다는 거다. 다시 가고 싶은 여행지에 파리가 인기가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 얼굴이 하얗고 서양인인 에밀리도 저런 일을 겪는데, 당연하게도 카메라 너머의 우리는 더한 현실을 겪는다.


2. 집

 에밀리가 파리에 와서 묵게 된 숙소는 건물의 꼭대기 층이다. 프랑스에서는 이런 방을 하녀방(Chambre de bonne)이라고 일컫는데, 과거에 하녀들이 쓰던 방이라고 해서 하녀방이라 부른다. 보통 프랑스의 아파트에서 이런 방은 엘리베이터가 끝까지 가지 않기 때문에 계단으로 몇 층을 더 올라가야 한다고 한다. 물가가 비싼 파리에서 은근히 인기가 많은데, 꼭대기 층이라 전망이 좋은 이유도 한 몫한다. 극 중에서 에밀리의 방은 실제 하녀방과는 좀 거리가 있는 모습으로, 파리의 하녀 방들은 건축법을 위반한 작은 크기의 방들도 많다고. 다른 건 몰라도 에밀리의 방 창문 너머로 보이는 에펠탑은 우리가 상상하던 바로 그것이다. 고된 하루를 마치고 돌아오면 언제든 나에게 위로가 되어줄 것 같은.

프랑스에서 또 하나 재미있는 점은, 우리가 생각하는 층수에서 1을 더해야 해당 층수가 된다는 점이다. 한마디로 3층에 있는 레스토랑에서 만나기로 했다면, 그 3층은 사실 4층 높이인 것이다. 대학 교양 수업에서 교수님이 알려주신 팁이 있다. 친구와 약속을 잡을 때 장소를 건물 몇 층이 아닌 건물 ‘앞’처럼 양쪽 모두에게 명확한 단어를 쓰면 된다는 것이다. 머리 어딘가에 그 이야기를 기억해놨었는데, 드라마를 보며 문득 그 생활의 지혜가 떠올랐다.



3. 직장

 정식 출근하기로 온 첫날부터 에밀리는 난관에 부딪힌다. 출근을 했는데, 회사가 문을 안 열었다! 사실 한국에서는 정말 찾아볼 수 없는 풍경이다. 요즘에야 자율 출퇴근제, 재택근무 등의 도입으로 좀 나아졌다 해도, 특수 업종이나 일부 직업군들은 여전히 새벽 어스름한 하늘을 보며 출근길에 오른다. 특히나 신입사원의 경우 정시 출퇴근조차도 눈치가 보여 의도치 않은 얼리버드가 되기도 한다. 이걸 보면서 참 문화가 다르다고 느꼈다. 잘 모르는 나로서는 한국기업문화와 미국 기업문화를 두고 미국은 한국보다 여유롭다며 어렴풋이 생각했었는데, 미국인이 보기에도 프랑스의 시간 문화가 신기한 걸 보니 별다를 바가 없구나 싶기도 하고.(ㅋㅋ) 이걸 보면 대체 우리나라의 직장인들이 얼마나 어벤저스인지 새삼 실감하게 된다. 갑자기 한국 직장의 하이퍼 리얼리즘 드라마 미생이 떠오른다. 특별히 회사에서 지정해주지 않으면 사무실 근무가 기본값인 우리와 다르게, 프랑스는 자율 재택근무를 하기도 한다고 하니, 일하다 아픈 것도 죄가 되는 한국인은 입맛이 씁쓸하다.

 직장에서 에밀리가 다양한 프로젝트를 성공적으로 이끌면서 아무래도 U.S 승, 프랑스 패 같은 느낌이 좀 있다. ‘미국인 아가씨’라고 불리는 호칭도 결국 에밀리의 자리가 여기가 아니라는 듯 씁쓸하다. 왜 나를 싫어하냐는 에밀리의 질문에, 당신의 속도가 우리와는 다르다고 말하는 장면이 있다. 어느 직장을 이직하든 새로운 문화에 적응하는 것은 당연히 감내해야 할 일이다. 하지만 그곳이 아예 다른 문화권이라면 그건 상당히 어려워진다. 나의 장점이 순식간에 단점이 되어버릴 수도 있다는 것이니까. 소위 ‘미국식’ 추진력이 부담스럽다고 하는 이 사람들에게 ‘미국식’으로 업무 능력을 인정받아온 에밀리는 어떻게 극복할 수 있을까? 에밀리는 자주 비틀거리고, 난관을 겪지만, 그만큼 성취하고 성장한다. 뭐, 드라마라서 그럴 수도 있겠지만, 결국 성공의 순간은 누구에게나 찾아오는 것. 영원한 실패란 없다.


4. 연애?

처음 파리에 왔을 때 에밀리에게 힘이 되어 준 친절한 친구들. 파리에서 얻은 유일한 따뜻한 것들이다. 그런데 아뿔싸, 친구의 남자 친구인 아랫집 남자에게 매력을 느끼는 에밀리. 맹세코 처음엔 몰랐다. 자꾸  대시하는 거래처 사장도, 마음이 있는 듯 없는 듯 구는 이웃 남자도 복잡하기만 하다. 내가 기억하는 릴리 콜린스 (에밀리 역)의 마지막 영화는 <러브, 로지>인데, 고구마로 악명이 높은 영화다. 대체 이 배우의 러브라인은 왜 이렇게 순탄하지 않은 것인지. 에밀리는 이 시리즈에서 많은 남자 배우와 다양한 관계를 보여주는데, 다 보아하니 멀쩡한 놈이 없다. 로맨스까지 잘 안될 이유가 뭐냐고 대체. 어쩌면 낯선 이곳에서 에밀리가 아직 마음을 정착할 준비가 안되었다는 깊은 뜻일지도 모르지만. 시리즈 초반 에밀리는 이미 가정이 있는 유부남 (근데 이제 핫함을 곁들인..)에게 지속적인 대시를 받는데, 이 남자의 행동이 불편한 것은 비단 불륜이기 때문도 있겠지마는, ‘흥미롭고 예쁘장한 미국인’으로 보는 그 시선이 노골적으로 느껴져서일 수도 있겠다.



각자의 프랑스


“프랑스의 멋진 거리를 걸으며, 노천카페에서 커피와 크루아상을 먹는 그런 상큼한 데일리 프랑스를 상상한 여러분께 심심한 위로의 말씀을 드린다.

 이건 나의 이야기고, 나는 그런 사람이 아니며, 그건 나의 프랑스가 아니다.”


데일리 프랑스 (Daily France, 경선)


 드라마를 보고 예전에 읽었던 책이 생각났다. 교환학생을 간다면 꼭 프랑스로 가고 싶다고 예전부터 생각했다. 그런데 왜  프랑스여야 했을까, 하면 솔직히 잘 모르겠다. 바람소리가 섞인 불어가 좋았고, 영화가 좋았고, 칸 영화제에 한번쯤 가보고 싶었고. 모두에게 각자의 프랑스가 있는 거다. 작가는 프랑스에서 그림 말고는 특별히 좋은 게 없었다고 한다. 까슬까슬하고 밋밋한 프랑스를 책으로 경험할 수 있다. 드라마 속 에밀리가 겪고 있는 많은 일들을 책에서도 비슷하게 찾아볼 수 있는데, 그중 기억에 남는 것은 이것이다. 지내던 스튜디오의 관리비가 평소보다 배로 나온 상황, 한국에서도 이런 문제를 해결하려면 마음을 단단히 먹어야 한다. 무엇이 어디서부터 잘못되었는지, 나의 의사를 받아들이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고민이 필요하다. 하물며 관리비 통지서마저 프랑스어인 이곳이라면 이건 점점 더 힘들어진다. 그 무력감과 피로함이 담백한 그림체로 흘러온다. 동네 베이커리에서 빵을 사는 것도 부담스러워 빵의 나라 프랑스에서 마트표 빵을 먹던 일이라든지, 타인의 시선으로 보는 프랑스는 이렇게나 다르다.


 우리는 보통 결핍을 애먼 데서 채우려고 하곤 한다. 친구랑 싸우고 상처 입은 마음을 배달음식으로 때우려고 한다던지, 출근하기 싫은 마음을 커피 한 잔에 타서 먹던지. 비행기로 한참을 타고 온 이 곳 프랑스에서 작가는 고향과는 다른 어떤 것을 기대한다. “글쎄, 뭔가 대단한 걸 이루고 싶은 건 없는데, 그저 행복하고 싶을 뿐이야.” 그러나 긴 타지 생활을 잠시 멈추고 도착한 그리웠던 집에서, 왜인지 멀리 두고 온 작은 기숙사 방이 내가 돌아갈 곳이라고 생각한다. 도망치듯 다시 돌아온 차갑고 조용한 방. 행복을 찾았을까? 그게 무엇이든 말이다.

 

 낭만의 프랑스는 안녕. 이 이야기는 흥분감에 가득 차 써 내려간 여행기가 아니라 늦은 밤 연필로 꾹꾹 눌러쓴 일기장과 같다. 내가 바라는 내가 되기 위해 떠난다. <에밀리, 파리에 가다>도 마찬가지다. 더 즐거운 일을 하고 싶고, 더 많은 것을 배우기 위해, 더 나은 나를 향한 프랑스. 드라마로 상큼하고 톡톡 튀는 프랑스를 경험했다면, 이 책으로 차분하게 젖어보는 것도 좋다. 다른 무엇보다도 같은 한국인인 작가가 겪은 일들이라 조금 더 코 앞에 있는 듯한 기분이다. 작가 경선의 데일리 프랑스(Daily France)는 1부는 웹툰과 단행본으로, 2부는 웹툰으로만 공개되어 있다.



<에밀리 파리에 가다>는 앞서 말한 프랑스 문화에 대한 것 말고도 연출적으로 상당히 재미있는 부분이 많다. 이 드라마의 제목이기도 한 emilyinparis는 극 중 에밀리의 인스타그램 계정 이름이기도 하다. 에밀리의 계정은 그녀만의 시각이 담긴 파리의 곳곳을 담으며 급속도로 성장한다. 솔직하게 빛나는 미모가 계정 성장에 한몫을 한 것 같지만? 에밀리의 의견은 프로젝트의 시각을 바꾸어놓고, 그녀가 저지르는 실수마저도 또 다른 방법으로 해결된다. 그 과정에서 프랑스의 직원들이 무능하고 구세대 같다는 인식을 주입시키기도 하지만. 마케팅에서 절대 빼놓을 수 없는 대표 SNS 인스타그램을 다루는 연출 방식은 꽤 재미있게 담긴 것 같다. 더해서, 에밀리의 출근룩 패션도 볼만 한 포인트 중 하나인데, 비비드 한 색감과 아이템을 매치하여 열정적이고 발랄한 에밀리의 이미지를 강조한다. 에밀리의 대척점이라 볼 수 있는 직장 상사 실비의 패션은 상대적으로 고급스럽고 우아하게 하여 두 사람의 문화적 차이를 극명하게 나타낸다. 화려한 색감과 아름다운 파리, 확실히 눈이 즐거운 드라마다. 평점은 시즌 2까지 보아야 좀 더 오를 여지가 있을 것 같다. 사실 내가 보고 싶은 건 과도하게 급진적인 미국식 문화의 충격! 보다는 두 나라의 색이 적당히 섞여 조화로운 프로들의 직장생활이었던지라.





* 브런치 넷플릭스 스토리텔러로 선정되어 넷플릭스 멤버십과 소정의 상품을 지원받았으며, 넷플릭스 콘텐츠를 직접 감상 후 느낀 점을 발행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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