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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수정 Oct 06. 2022

캠핑이 좋싫다

캠핑 / 좋다가도 좋지 않은 모순적인 마음 같으니라고

캠핑이 좋다 


날이 추워지기 전에 가을 캠핑을 한 번 더 다녀와야 한다. 요즘 부쩍 센티한 남편은 캠핑에만 가면 그렇게 표정이 좋아진다. 머릿속을 어지럽히는 근심을 잊을 수 있다고 했다. 요즘 부쩍 회사일 때문에 힘든 모양이다. 그래 함께 가줄게! 가서는 가능한 음식을 안 하기 위해 밀키트도 주문해놨다.  


2시간 남짓 달려 도착한 외삼촌의 홍천 산속 땅엔 이미 어둠이 깔렸다. 남편은 서둘러 고기를 굽기 시작한다. 남편이 구운 고기는 역시 맛있다. 아침에 마신 커피 한 잔과, 누룽지 조금이 오늘 먹은 전부였으니 맛이 없을 수가 없지. 


아이들은 이곳에만 오면 호미와 삽을 들고 땅 파고 노는 게 일이다. 그게 뭐가 그렇게 재밌는지는 잘 모르겠으나 일단 내손이 안 가니 좋은 걸로 하자. 남편은 내가 내켜하지 않지만 따라온 걸 아는지 설거지는 전부 자기가 한다. 고기를 먹고, 라면을 끓여먹고, 고구마를 구워 먹고. 먹고 먹고 먹고 종일 먹는다. 다들 이러려고 캠핑에 오는 거겠지. 



화장실도 제대로 없고, 물도 안 나오던 올해 초와 비교하면 이곳에서의 캠핑이 훨씬 편해진 건 사실이다. 겨울에 왔을 땐 정말 옆 시냇가에서 물을 길어다 썼는데 말이다. 


조용한 산골, 여기저기서 들리는 풀벌레 소리는 좋다. 비가 부슬부슬 조금씩 내린다. 다행이다. 토요일엔 둘째를 재우다 함께 낮잠도 잤다. 며칠 정신없었는데 내겐 역시 잠이 보약이다. 아이들의 표정엔 내내 웃음이 떠나지 않는다. 며칠 더 자고 가자고 말할 정도로 아이들은 여기서의 시간을 즐겼다. 이래서 캠핑을 오는 거지.




캠핑이 싫다


9월에 갔다 왔다는데 또 가잔다. 그때도 사실 내켜서 간 게 아니다. 힘들어하는 남편이 아이들만 데리고 가면 힘들까 봐 같이 가준 거다. 근데 여전히 회사 일은 힘든가 보다. 이번에도 같이 안 가줄 수 없다.


전날 에버랜드에 다녀오는 바람에 방전된 체력으로 대충 짐을 쌌다. 금요일 아이들을 태우고 도착하니 이미 깜깜한 밤이다. 오전에 빈 속에 때려 넣은 커피 때문인지, 대충 요기만 한 점심 때문인지 속이 쓰리고 고프다. 나는 배가 고프면 신경이 예민해지지만 참자. 남편은 이제부터 고기를 굽기 시작한다. 


둘이 한참 놀던 아이들은 이제 엄마 아빠랑 같이 놀자며 목소리가 높아진다. 369게임, 손병호 게임, 배스킨라빈스 31 등등 아는 게임이 다 나온다. 아이들은 신이 나 방방 뛴다. 근데 사실 나는 별로 재미없다. 6세, 9세랑 하는 게임이 뭐 그렇게 재미가 있겠나. 


물을 데워 대충 얼굴과 손발만 씻는다. 세상 불편하다. 여기 오면 못 씻는 게 제일 고역이다. 제대로 머리도 못 감고 샤워도 못한다. 남편은 물을 데워서 쓰라지만 그게 더 불편하다. 무엇보다 이게 제일 싫다.


흙을 가지고 노는 아이들은 점점 거지꼴이 되어간다. 둘째는 옷에 주스를 흘렸다. 하아~ 저 빨래도 다 내 몫이다. 둘째 날 저녁이 되자 첫째는 난로 앞에서 졸기 시작했다. 졸려 죽겠는 아이를 달래 양치시키고 대충 씻겨 재웠다.


10월인데 아직도 모기라니! 둘째는 모기에 물리면 부어올라 조심해야 하는데 남편은 괜찮단다. 괜찮긴 뭐가 괜찮아! 나는 안 괜찮다고!!! 비도 조금씩 온다. 구질구질 세상 불편하다. 아 이제 그만 오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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