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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수정 Nov 06. 2020

아이유라는 시인

아이유 / 가을의 아침엔 아이유를 듣는 게 좋겠다


<가을 아침>, 가을이니까 아침엔 이 곡에 좋겠다 싶었다. 아이들을 보내 놓고 책상에 앉기 전 커피 한 잔을 내려 소파에 앉았다. 창 밖의 가을가을한 나무들이 제 잎을 모두 떨구기 전 그 모습을 오래 눈에 담아두고 싶었다. 그녀의 목소리가 가을의 느낌을 더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딸각딸각 아침 짓는 어머니의 분주함과

엉금엉금 냉수 찾는 그 아들의 게으름이

상큼하고 깨끗한 아침의 향기와

구수하게 밥 뜸 드는 냄새가 어우러진  


가을 아침 내겐 정말 커다란 기쁨이야

가을 아침 내겐 정말 커다란 행복이야

응석만 부렸던 내겐


-아이유의 <가을 아침> 중에서-


가을 아침은 유명한(내가 아니까 유명한 것으로 하겠다) 음악 감독 중 한 명인 이병우 감독(아마 얼굴을 보면 많이들 아실 듯)이 작사 작곡한 곡이다. 몰랐는데 원곡은 양희은님의 곡이란다. 아이유 노래의 편곡은 기타 연주가 정성하 군이 했다. 열 살에 기타를 잡은 그가 성장하는 모습을 보며 남편은 그를 천재라고 했었다.

아침부터 아이유 노래를 듣고 나니, 몇 곡 더 찾아들어야지 싶다. 얼마 전 그녀가 나온 '유희열의 스케치북'을 보면서 나는 한 번 더 아이유라는 사람에게 빠지고 말았으니까. 참 좋다 하며 듣던 그 많은 노래를 그녀가 작사 혹은 작사 작곡한 곡인 줄은 몰랐다.


그저 노래 잘하는 귀여운 동생인 줄 알았는데 감정을 글로 쓰는 시인이었다. 그런 노래를 제 목소리로 부를 줄 아는 아티스트였다.


그날 스케치북에서 들려준 플레이리스트만큼은 그녀를 별로 좋아하지 않더라도 들어볼 만하다. 꼭 가사도 함께 음미해 주시길.



<금요일에 만나요>

그래 데이트는 자고로 금요일이지, 3집에 수록된 이 곡은 그녀가 작사 작곡한 곡으로 2013년에 나왔다. 아! 그녀는 김이나가 작사한 <Modern Times>를 부를 때에도 이미 이렇게 좋은 곡을 만들 수 있는 사람이었구나!


<삐삐>

남편은 스케치북 방송을 보면서 “삐삐가 이런 내용인 줄은 몰랐다”라고 했다. 그렇게 많이 들으면서도 남편은 이 노래의 가사의 뜻은 생각도 안 해봤나 보다. 아이유를 좋아하는 사람도 있고 아이유를 싫어하는 사람도 있겠지.


쟤는 대체 왜 저런 옷을 좋아한담?

기분을 알 수 없는 저 표정은 뭐람?

태가 달라진 건 아마 스트레스 때문인가?

걱정이야 쟤도 참


-아이유의 <삐삐> 중에서-


이라고 말하는 이들에게 선을 넘지 말라며 정색하는 그녀의 가사가 정말 그녀를 닮았다고 생각했다. 그래, 이런 게 아이유에게 어울린다. 그녀는 한없이 웃는 마론인형 같지 않아 그게 참 좋다.

핫핑크보다 보라색을, 긴 머리보다 단발을 좋아하며 조금 촌스러운 걸 좋아한다고 말하는 그녀. 날 좋아하는 것도, 날 미워하는 것도 안다며 그것을 받아들일 줄 아는 그녀는 스스로 ‘너무 아름다워 꽃잎 활짝 펴서 언제나 사랑받는 아이, YOU’(아이유의 <팔레트> 중에서)라며 이제 조금 스스로를 조금 알 것 같다고 말한다.


<무릎>

그녀는 먼 훗날 자신을 기억해 줄 단 한 곡을 꼽아달라는 말에 자신이 작사 작곡한 이 곡을 택했다. 자기 이야기 같다면서. 가사를 곱씹으며 들으니 노래가 참 아이유를 닮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잘은 몰라도, 낮의 아이유보다는 밤의 아이유에 가까울 것 같다.


무릎을 베고 누우면

나 아주 어릴 적 그랬던 것처럼

머리칼을 넘겨줘요  

그 좋은 손길에 까무룩 잠이 들어도

잠시만 그대로 두어요

깨우지 말아요

아주 깊은 잠을 잘 거예요

-아이유의 <무릎> 중에서-


<밤편지>

내가 가장 좋아하는 그녀의 가사가 있는 노래는 <밤편지>다. 사실 이 곡을 그녀가 작사한 곡이란 건 이날 스케치북을 보면서 알았다. 아이유는 이런 가사를 쓸 수 있는 가수였다. 아이유를 좋아하지만, 이날 아이유가 한참은 더 좋아졌다.


이 밤 그날의 반딧불을

당신의 창 가까이 보낼게요

음 사랑한다는 말이에요  


나 우리의 첫 입맞춤을 떠올려

그럼 언제든 눈을 감고

음 가장 먼 곳으로 가요  


난 파도가 머물던 모래 위에 적힌 글씨처럼

그대가 멀리 사라져 버릴 것 같아

늘 그리워 그리워


-아이유의 <밤편지> 중에서-



요즘엔 노래를 들어도 그냥 스피커로 “아이유 노래 틀어줘”해서 듣기 때문에 이 노래가 몇 집에 수록된 곡인지, 작사 작곡은 누가 했는지 모르고 그저 들었다.


예전엔 그랬다. CD로 음악을 들을 때, 앨범에 담긴 노래와 그 노래의 순서엔 나름의 스토리가 있었다. 그 앨범을 듣고 듣고 또 듣다 보면, 한 곡이 끝난 뒤 다음 곡의 전주가 흘러나오기 전의 그 시간에 느껴지는 여운이나 설렘 같은 것도 있었다. 유튜브 뮤직이 셔플로 들려주는 노래의 순서엔 없는 그것 말이다. 이젠 앨범보다는 곡으로 소비되는 경우가 더 많지만, 어쩐지 그때의 이야기 가득한 앨범이 그립기도 하다.


아이유가 쓴 가사를 보면서 그녀가 꽤 단단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다행이다. 넘어지면 깨질 것 같이 위태로워 보이는 인형 같은 연예인은 아니라 어쩌면 훨씬 더 오래 그녀의 노래를 들을 수 있을 테니까.



가을이 가기 전 아이유의 노래를 좀 더 듣고,

날이 더 쌀쌀해지면 브로콜리너마저의 '유자차'로 겨울을 맞아야지.





PS. 일주일에 한번 글을 공유하는 글쓰기 모임에서 이 글을 공유했더니 하나 같이 아이유 팬임을 자처 했다. 그 댓글이 재밌어 공유해 봅니다.


S : 아이유가 부른 '잊혀진 계절'(어젯밤이 10월의 마지막 밤이었죠!!!!)을 여러번 들으면서 남편이랑 아이유 얘기했었는데!!! 울 남편, 아이유의 삼촌팬이라고 아이유 넘 좋다며..


Y : 아이유ㅎㅎㅎ 저희 남편이 너무 팬이라... 아이유의 이지금 노래도 좋답니다.


H : 나도 아이유 넘 좋아함~ 최애곡도 밤편지♡ 전에 효리네민박에 나와서 알게 되었던 노래인데, 그때도 가사를 참 잘 쓴다 싶어 책을 많이 읽나보다 했던 기억이 나네~

얼마전 성시경이 아이유는 일반 연예인 같지 않다며 두 발이 땅에 닿아있는 사람이라고 표현했다는 말을 듣고 참 적절한 표현이라 생각을 했었어


W : 아이유의 노래로도 훌륭하지만 좋아했던 옛 노래들을 다시 꺼내주는 아이유라 저는 조금 더 친숙하게 느껴지는 것 같아요.

E : 저도 아이유 좋아해요. ...아이유 노래 언급하신 것들도 좋지만 스물셋, 팔레트, 김건모 노래 리메이크한거랑... 등등 그런 발랄함 속에 있는 아이유 목소리도 좋아요^^


Y:  정말 대단하죠? 저도 좋아해요! 단단한 사람이라는 것도 어떤 느낌을 말하시는지 알것같아요!


B : 아이유는 참 복 받은 아티스트네요. 우리가 이렇게 다 좋다고 합창하는 줄 알까? 여린데 단단하고 알차서 좋아요. 어린데 너무 많은 시선을 받는 게 힘들까 봐 안쓰럽기도 하고요. 좋은 사람이 좋은 노래를 하니 더 좋게 들리는 것 같습니다. 저도 거의 매일 아이유 통장에 돈 넣어주는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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