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산에서 보내는 펜팔(14) - 산달의 청명 편지
복희야말로 천재만재 이야기꾼인 것 같아요!! 새 공부 이야기도, 꿈 이야기도, 음악 이야기도 너무너무 재밌어요. 어쩜 그렇게 감질나게 풀어놓을 수가 있죠? 늘 복희의 편지를 보면서 감탄해요. 그 솜씨를 닮고 싶어요. 이제 복희의 편지를 받을 때면 다른 어디에서도 맛볼 수 없는 할머니의 손맛 듬뿍 담긴 코스 요리를 대접받는 것 같아요. 약간은 쓴가 싶더니 끝에 가서는 결국 단 맛이 입천장을 달래주는 것만 같아요. 어떤 기분인지 짐작이 가시려나요!
그런데 음악 이야기라니. 복희, 조심하셔야 해요. 저는 음악 이야기라면 10통의 편지를 가득 채우고도 남을 만큼이나 떠들어 볼 수 있답니다. 소싯적엔 그랬어요. 지금은 그만큼은 아닐지도 모르겠지만요. 그것도 한때 이야기랍니다. 어렸을 때부터 피아노를 쳤거든요. 엄마는 저를 초등학교에 입학하기도 전부터 남들 다 가는 피아노 학원과 태권도 도장에 보냈어요. 다른 아이들을 피아노 학원 가기를 싫어하기도 하고 그러던데 저는 싫고 좋고를 떠나서 당연히 가야하는 곳이라 생각했나봐요. 한 7년차 되는 해부터 재미가 들려서 열심히 연습하기 시작했어요. 그때부터 혼자 클래식 곡들도 파고, 밴드도 시작했어요.
제가 다녔던 고등학교에는 예배당이 있었어요. 그곳에는 위엄있는 그랜드 피아노 한 대가 놓여져 있었는데, 사람들이 거의 집에 돌아간 주말에는 그 피아노와 함께 많은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답니다. 특히 해가 기지개를 펴는 새벽이나 어스름이 찾아오는 저녁, 옅은 빛에 취해 드뷔시를 연주할 때면 마치 온 세상에 저 혼자만 있는 것만 같았어요. 그런데 서울에서는 더 이상 이런 순간들을 누리기가 어려워요. 그곳을 떠난지 시간이 꽤 흐르고 나니 저는 이따금 고요한 숲 속에서 혼자 피아노를 연주하는 제 모습을 상상하고는 해요.
아! 복희의 우쿨렐레 수업 시간을 상상하니 저도 모르게 입이 귀에 걸려요. 제 안에 그런 순간에 대한 갈망이 있음을 느껴요. 우쿨렐레를 배우는 건 즐겁나요? 우쿨렐레를 연주할 때면 호흡이 줄의 진동 소리와 어우러지는 걸 느끼나요? 어려운 것은 없는지, 짜증나는 순간들은 없는지도 궁금해요. 제가 좀 들떠 보이죠? 그만큼 악기를 배우는 건 설레는 일이니까요! 사실 설레는 순간보다 답답하고 속이 터지는 순간들이 많이 있기도 하다는 걸 알아요. 그만두고 싶은 마음이 종종 드는게 다반사이니까요.
음악을 한다는 건 조급함과 싸우는 일일지도 모르겠어요. 씨앗이 싹을 틔우기를 재촉할 수 없듯이, 고양이가 내 품을 편하게 여기지 못하는 걸 저어하는 일이 쓸모없듯이요. 여우가 어린왕자에게 했던 말이 옳아요. "참을성이 있어야 해." 여우가 대답했다. "우선 내게서 좀 멀어져서 이렇게 풀숲에 앉아 있어. 난 너를 곁눈질해 볼 꺼야. 넌 아무 말도 하지 말아. 말은 오해의 근원이지. 날마다 넌 조금씩 더 가까이 다가앉을 수 있게 될 거야......” 날마다 조금씩 편해지는 것, 꾸준함을 연습하는 것, 피아노가 저를 변화시키려는 힘을 환대하는 것, 저는 그러면서 세상을 배웠던 것 같아요.
사실 복희의 ‘진지한’ 이야기에 손으로 입을 막을 정도로 공감하며 읽었답니다. ‘스몰 토크’라고 하죠. 최근에 새로 만난 친구들과의 대화 속에서 내가 스몰 토크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이구나 생각했어요. 막 ‘활동가’들의 네트워크 속에 들어온 신입으로서 받아들여야 할게 너무나도 많았던 저는 어쩌면 스몰토크를 사치처럼 여겼던 것 같기도 해요. 제게도 힘을 빼는게 정말 큰 숙제라는 사실을 깨달았어요. 최근에는 바쁜 동료와 잠시 차를 마실 기회가 있었는데, 그 짧은 시간 동안에도 저는 단체 이야기, 운동 이야기를 하고 있더라고요. 그 친구와 그런 방식으로만 소통하는 저를 미워하며 다음부터는 다른 이야기들을 좀 해보겠다고 다짐했어요.
간혹 그런 꿈을 꾸기도 해요. 꿈 속에서 저는 친구들이나 동료들에게 이런저런 이야기를 막 떠드는데 제 친구들은 제 이야기를 듣는 것에 피로해하는 낌새에요. 그럴 때면 나는 왜 그들과 마음이 공명하는 이야기를 하는 것에 날마다 실패할까 고민하게 돼요. “나의 언어가 저들에게 닿고 있지 않구나.” 복희의 표현대로 제 대화의 방해꾼 또한 ‘경직된 윤리관’인 것 같아요. 머리로는 내 윤리관을 내세우는 것보다 저들과 대화를 통해 깊은 관계를 맺는게 중요하다는 걸 알면서도, “나는 이렇게 깊은 생각을 하는 사람이야”라고 자랑하기라도 하는 것처럼 말해요.
저도 음악 이야기로 다시 돌아가볼까 해요. 복희는 좋아하는 음악가가 있나요? 전 여러 뮤지션들을 좋아하지만 제가 좋아하는 이들의 일관적인 공통점을 생각해보면 삶이 곧 음악이 되고 음악이 곧 삶이 된 사람들이더라구요. 최근에 사카모토 류이치라는 음악가를 다룬 다큐멘터리인 ‘코다’를 봤어요. 아직 다 보진 않았지만, 인상깊었던 장면이 있었어요. 사카모토는 원전 참사가 있었던 후쿠시마에 가서 쓰나미에 잠겼던 피아노를 하나 발견해요. 그 피아노를 연주하고 나서는 송장을 어루만지는 느낌이었다고 말씀하시더라구요. 그러면서 하셨던 말씀이 마음에 남아 오래 생각해 볼 문장이 되었어요.
"일반적인 피아노 소리는 인간이 억지로 조율한 부자연스러운 상태인거지. 그런 억지스러움에 대한 혐오감이 내 안에 있는 것 같아요. 그래서 나는 자연이 조율해 준 그 쓰나미 피아노 소리가 굉장히 좋게 느껴져요.”
피아노는 보통 주파수를 나타내는 단위인 440헤르츠로 조율되고는 해요. 간혹 432헤르츠로 조율되는 경우도 있고 피아노 연주자들마다 마음대로 할 수 있기는 하지만, 각 음계의 간격이 일정하다는 것은 모든 피아노와 서양 악기의 공통점이에요. 그런데 아시아와 중남미 등의 전통 악기들은 셀 수도 없이 다양한 음계를 채택하고 있어요. 가장 낮은 음에서부터 가장 높은 음까지의 스펙트럼은 무한하니까요. 우리의 귀는 440헤르츠에 너무나도 익숙해져 있어서 다른 주파수의 소리를 잘 포착하지 못할 때가 많은 것 같아요. 복희가 새들의 소리를 잘 구분하지 못하는 것처럼요! 아마 저도 인간의 주파수의 귀가 너무나도 적응되어 있어 그들의 노래나 비명을 듣기 위해서 많은 훈련이 필요하지 않을까요?
사카모토의 말은 사카모토가 평생 사회에 적극적인 목소리를 냈다는 점에서 큰 힘을 얻는 것 같아요. 그의 세계는 늘 소리로 가득 차 있다고 해요. 파도소리, 빗소리, 숲의 소리들을 길어내 음악으로 만들어내는 그가 저는 참 놀라웠어요. 원전을 반대하고 삼림 보호를 위한 그의 행동과 숲 속에 들어가 그들의 소리에 귀기울이는 모습이 많이 겹쳐보여요. 어쩌면, 우리가 ‘듣지 않음으로써 듣지 못하게 된’ 소리들을 들으려는 하나의 태도에서 비롯된 일관된 삶일지도 몰라요. 그를 잘 알지 못하지만, 그의 삶은 참 아름다워요.
새들을 서로 다른 언어로 말해요. 나무도, 풀들도, 곤충들도요. 너무나도 당연한 사실인데, 우린 종종 놓치는 풍경이죠. 그래서 우리가 듣는 소리들은 하나의 주파수가 아니라 여러 주파수들의 화음일거에요. 숲마다 어떤 공명이 발생하는지 지켜보는 것도 재밌어 보이네요! 어쩌면 복희의 진지함도 우리의 유연함을 만들어내는 하나의 주파수일지도 몰라요. 그리고 전혀 어울리지 않은 복수의 소리들이 어우러져 간혹 협화음을 만들어내는 순간들이 있잖아요. 그런 순간은 아주 가끔이어서 우리에게 희열을 주곤 해요. 궁금해요. 복희의 진지함은 어떤 순간들에 화음을 만들어내나요?
오늘 아침, 짬내서 책을 읽다가 발견한 문장이 맘에 들어서 그걸로 편지를 마무리해요. 복희가 제게 선물해준 문장에 대한 보답이에요. 제가 저를 어떻게 생각하든 저의 아름다움을 알려줘서 고마워요. 아름다운 하루 보내세요!
"내가 생각할 때, 나는 내가 생각하는 것, 바로 그것이 된다” -미셸 셰르-
p.s. 씨앗 잘 받았어요! 해바라기, 목화, 분꽃, 메리골드 모두 잘 모시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