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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이어린 Apr 29. 2023

천재만재 이야기꾼 산달에게

지리산에서 보내는 편지(13) - 덕복희의 청명 편지

산달, 지난 편지를 읽고 얼마나 들떴는지 몰라요! 똥개시절 이야기의 보답이 이렇게 근사하다니, 이번 편지엔 똥오줌 못가리던 시절 이야기까지 줄줄 불어댈 뻔 했습니다. 저는 아홉시만 되면 퓨즈가 나가듯 잠이 든다고 했는데, 누군가 ‘옛날 옛적에’로 시작하는 이야기를 해준다면 잠을 순식간에 쫓아낼 수도 있어요. 산달의 이야기는 꼭 목련만큼이나 향기롭고 우아했어요. 정말 고마워요. 저도 까만 밤의 운동장을 가로지르며 전등에 반짝 빛나는 목련에게 홀딱 반하던 순간을 기억한답니다. 여섯 꽃잎을 한 장 한 장 떼며 문법을 알려주셨다니, 꽃잎이 곱절은 많은 국화여도 즐겁게 배웠을 거예요.


봄의 새소리가 참으로 다채로워요. 산달이 사는 곳도 그렇겠지요? 새도감을 뒤적거리다가 후투티라는 이름의 새를 봤어요. 머리도 꼭 락커처럼 모히칸 스타일을 했길래, ‘와 이 새는 한국에서 보기 힘들겠지?’싶을만큼 이색적이었거든요. 그런데 새벽요가를 마치고 동이 틀 시간이 되면 꼭 바깥에서 누가 ‘구구구’하고 노래하는 거예요. 작은 드럼을 두드리는 듯이 편안하고도 차분한 목소리였어요. 누군지 알아내려고 새소리를 모아놓은 유튜브를 마구잡이로 보았는데, 이 목소리의 주인공이 후투티였던 거죠! 이렇게나 가까이 모히칸 드러머가 살고있었다니. 아직 얼굴은 만나보지 못했지만 집 근처에서 이웃들을 잘 살펴야겠어요.


전 학창시절에도 음악에 두말할 것없이 가장 재능이 없었는데, 요즘 새공부를 하자니 음악공부처럼 고역이에요. 영상으로 새소리를 달달 외우고도, 실제로 들으면 다 똑같은 소리처럼 들려요. 그런 제가 올해는 우쿨렐레를 배우기 시작했답니다. 제 옆지기가 우쿨렐레를 잘 친다는 소문을 듣고 마을 이웃 두 분이 떡과 반찬을 잔뜩 갖다주시며 스승으로 모시니 결국 얼렁뚱땅 강좌를 열게 됐어요. 그렇게 네 명이 모여 일주일에 한번 우쿨렐레를 쳐요. 햇살이 차르르 쏟아지는 이웃집댁에서 우쿨렐레를 연주하다보면 바깥에 딱새들이 꼬리를 팔랑 떨면서 창가에 앉는 게 보여요. 전 요즘 그 시간이 참 좋아요.


물론 딱새나 후투티는 제 형편없는 연주를 듣기 거북해할지 모르겠어요. 작년부턴 장구를 열심히 치고 있는데, 장구는 사실 인간이 아닌 동물들은 다들 듣기 무서워하는 것 같아요. (집회할 때는 더없이 흥이 나는 악기지만요.) 그래서 숲에서도 연주하기 미안하지 않은 우쿨렐레를 배우기 시작한 건데 여전히 조금 미안할 수밖에 없는 실력이랍니다. 산달은 어떤가요? 제가 예상한 대로라면 음악을 좋아할 것 같아요! 산달은 새공부를 해도 저보다 일취월장이겠어요.


사실 음악 얘기를 꺼낸 이유가 있어요! 저는 제가 너무 진지한 게 싫어요. 친구를 새로 사귀거나 사람이 많은 곳에 어울리기도 별로 안좋아하고요. 누군가를 만나면 시시콜콜한 이야기 나누기가 제일 숙제에요. 반드시 모든 것에 심오한 의미가 있어야하는 양 굴어요. 전 잡담이랍시고 자꾸 일 얘기를 꺼내서 친구들을 질려버리게 만드는 재주가 있답니다. 글을 쓸 때도 지나치게 거창해지곤 하는데요. 그렇게 종이 위에 우주의 진리나 세계평화를 쏟아내고 나면, 새벽에 쓴 글도 아닌데 느끼하고 부끄러워서 두번은 못읽겠어요. 전 밤 아홉시에 머리만 땅에 닿으면 즉시 잠에 드는 사람으로서 ’이불킥’을 해본 적은 없지만, 만약 한다면 이불보다 제 무릎관절을 더 걱정해야 할 거예요.


이번 주제가 ‘나를 바꾼 꿈’인데요. 평소엔 꿈을 꾸더라도 물에 그은 선처럼 순식간에 사라져버리거든요. 제가 기억하는 몇 안되는 꿈들은 다들 음침하고 징그럽고 어두워요. 그런 꿈들만이 돌에 새긴 선처럼 생생하게 뇌리에 남아요. 이번 편지에도 제 꿈 이야기를 쓰자니 호러 영화를 한 편 쓰게 생겼더라고요. 심지어 그런 호러씬들 안엔 제 깊은 죄책감이 숨어있어요. ‘이렇게 사는 게 옳은 거야!‘하던 제 경직된 윤리관이 만든 꿈이죠. 로드킬 당한 고양이를 구조해 살려놨는데 목만 겨우 남아서 물을 마셔도 목 아래로 줄줄 새던 이야기, 소의 위장을 뒤집은 것으로 만든 샤워볼로 제 몸에 피칠을 하며 목욕하는 이야기 등이에요. 참고로 전 말싸움조차 없이 평화롭고 싱겁게 끝나는 영화나 드라마만 즐겨본답니다.


음악 이야기로 다시 돌아가야겠어요. 악보에서 도레미를 찾기도 헤매는 제가 노래를 만들기 시작한 때가 있어요. 제 옆지기가 우쿨렐레로 코드를 몇개 연주하면서 저에게 아무 말이나 뱉으면서 아무 멜로디나 붙이라고 한 거죠. 모든 말에 의미 부여를 하는 저에게 ‘아무 말이나 뱉으라’고 하는 건, 한 시간짜리 연설을 하라는 말보다 어렵게 들렸어요. 도대체 아무 말이 뭔지도 모르겠고, 그 아무 말에 멜로디를 붙이라니 영 쑥쓰러워서 한 마디도 못 뱉겠더라고요. 헛소리를 하거나 우스꽝스러운 멜로디를 만들어도 누구도 평가하거나 비웃지 않다는 건 천천히 깨달았어요.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나마 아무 말이나 흥얼거릴 수 있게 됐죠. 그래서 성다양성 축제에서 들레네교향악단이 해마다 엉망진창 합창을 선보일 수 있었는지도 몰라요. 직접 만든 어설픈 노랫말과 멜로디로요.


음악이 내내 어려우면서도, 올해 열심히 악기를 배우거나 새소리를 끈질기게 따라다니는 건 이런 까닭일 거예요. 음악은 저에게 힘을 빼는 방법을 알려주거든요. 덜 진지하게 사는 방법을요. 산달이 지난편지에서 한빛이 애증의 공간이었다고 했잖아요. 사실 좋기만한 것들은 별로 없어요. 가족이든 연인이든 어떤 공간이나 기억이든, 사랑과 미움과 애틋함과 서운함이 마구 섞이는 듯해요. 그래서 저라도 산달같은 결론을 내렸을 거예요. 세상을 바꾸겠다면서 나를 미워하기보다, 그 미운 세상과 내가 서로를 만들었다고 믿어버리자고요. 모든 숨들이 섞여서 결국 다 하나라고도 믿고요.


그런데도 전 저의 진지한 모습들이 여전히 예뻐보이지 않아요. 내 꿈은 왜 다 저런 모양일까, 왜 그렇게 고리타분한 글을 쓰고야 말았을까, 제 자신이 시시해보일 때가 많아요. 이런 모습들도 제 공동창조자일텐데 말이에요. 덜 진지해지려고 하지만, 사실 정말 필요한 건 ‘진지한 그대로도 충분한’ 마음일 것 같아요.


산달, ‘명금류’라는 말 들어봤어요? 명금류는 ‘소리가 고운 새’라는 뜻인데, 참새같이 조그마한 새들을 가리킨대요. 큰 새들은 성대가 굵어서 섬휘파람새나 방울새 같이 고운 소리가 나지 않고, 거칠고 위협적인 소리를 낼 수 있죠. 이 말을 들은 제 친구가 ‘와 그것 참 좋다!’하며 감탄하는 거예요. 자신은 키가 크다고 늘 부러움을 받는데, 실은 키가 작든 크든 각자 매력이 있을 뿐 큰 게 더 멋진 건 아니라고요. 그런데 명금류는 작기 때문에 오히려 아름다운 소리를 낼 수 있다니까 좋았다는 거죠. 아마 키가 작은 제게 해주고 싶었던 말 같더라고요. 참 다정한 친구죠?


저도 제 진지한 모습들을, 도리어 진지하다는 이유로 좋아하게 될 수 있을까요? 산달의 지난 편지를 곱씹으며 노력해봐야겠어요.


산달! 전 친구가 냉이를 잔뜩 나눠준 덕에 냉이를 안캤어요. 그런데 산달의 편지를 보니 냉이 캐는 즐거움을 제가 놓칠 뻔했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냉이 꽃대가 모조리 올라오기 전에 납작 엎드려 냉이를 찾았답니다. 냉이를 보면서도, 목련과 연꽃, 산과 달, 메리올리버의 시를 보면서도 떠올릴 이가 있다는 건 참 풍요로워요. 제가 산달을 떠올리는 순간마다 산달에게 봄볕이 닿기를 바랄게요. 구례는 벌써 목련이 옷을 갈아입는 청명입니다!


P.s. 감자님은 제가 자나깨나 물을 너무 열심히 갖다바치는 바람에 운명을 달리하셨습니다. 물이 많으면 씨감자가 썩으니 제발 그만 주라고 이웃분이 와서 저를 말리셨을 땐 이미 너무 늦은 뒤였어요. 감자님께 심심한 위로를…


냉이주먹밥 해먹은 덕복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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