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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이어린 Apr 29. 2023

웃음을 선물하고 싶은 산달에게

지리산에서 보내는 펜팔(11) - 덕복희의 춘분 편지

산달, 제가 가장 좋아하는 꽃이 목련이에요! 목련님을 닮았다니 입에 바른 말이라도 기쁘네요. 백목련의 겨울눈은 털이 보송보송하고 엄지손가락만큼 커다란데요. 전 그 겨울눈만 봐도 첫사랑을 만난 것처럼 심장이 두근두근거린답니다. 구례는 꽃이 셀 수 없이 피었어요. 매화, 살구, 산수유, 명자나무, 생강나무, 히어리, 목련… 며칠 전엔 냉이 좀 캐다 먹으려 했더니 벌써 꽃대가 다 올라온 거 있죠. 저처럼 빈틈투성이 농부는 구례 같이 따뜻한 곳에서 지내면 봄에 눈코 뜰 새가 없어요.


이틀 전은 햇살이 좋아 섬진강 쪽으로 산책을 하다 이웃 할아버지를 만났는데요. 할아버지께서 냅다 “감자도 안심고 어딜 돌아댕겨?”하면서 호통을 치셨어요. 감자 심는 철에 농부식 인사인가 봅니다. 감자를 안심고는 어딜 돌아댕길 수 없는 것이죠. 결국 어제 아침 해가 뜨자마자 감자를 심었어요. 제 씨감자들은 작년에 제가 키운 분들인데, 너무 작아서 제 콧구멍에도 들어갈 지경이에요. 올해는 방울토마토보다는 컸으면 좋겠다고 소원을 빌었어요.


산달! 제 어릴 적 별명은 똥개였어요. 사실 가족들은 아직도 저를 가끔 똥개라고 부른답니다. 동네 어린 개가 똥을 초코파이인양 야무지게 먹는 것을 보면 절로 탄식이 나오는 제게, 이 별명은 어디가서 말하기 썩 명예롭진 않은데요. 실은 제가 어릴 적부터 잔병치레가 하도 많아, 이웃집 할머니께서 ‘똥개들은 아무거나 먹어도 건강하니 똥개라고 부르면 낫는다’는 특별처방을 내려주신 유래가 있답니다. 그후 마법처럼 잔병이 덜했대요.


어릴 적 전 제가 정말 똥개인 줄 알았던 것도 같아요. 코딱지도 잘 먹고 종이나 흙도 먹으면서 컸어요. 엄마랑 아빠 몰래요. 그러다 어느 봄즈음에 뒷산 너머 마을로 언니랑 놀러갔다가 길을 잃었어요. 그때 제가 글쎄, 냄새로 집을 되찾아왔어요. 아까 이 근처에서 꽃냄새가 났고, 그 다음에 공사장 냄새, 그 다음에 개울가 물비린 냄새… 냄새를 지도 삼아 그걸 거꾸로 셈하면서 되돌아 온거죠. 그날 저녁 언니가 가족들에게 ‘내 동생이 정말로 똥개가 됐다’며 무용담을 늘어놓았어요. 그날만큼 기분이 우쭐했던 적도 없을 거예요.


이번 주제가 ‘잊을 수 없는 향기’에요. 전 이날이 꼭 색이 바랜 필름사진처럼 기억이 나요. 어떤 냄새였는지 선명하진 않은데 괜히 알 것 같은 기분이에요. 요즘도 구례의 봄꽃이 핀 낡은 마을길을 돌면, 꼭 서울 신림동의 그 판자촌으로 돌아가 있어요. 아마 그 판자촌은 사라졌을지도 몰라요. 재개발이 됐을 법한 동네였으니까요. 2020년도 섬진강 수해 이후, 구례군은 제방을 높인다고 모든 지천마다 벌겋게 파헤쳤어요. 강변을 걸으면 꽃냄새나 개울가 물비린 냄새는 없고 공사장 흙먼지 냄새만 나요. 포크레인을 피해 떠난 물살이들은 저처럼 냄새로 이곳을 기억하다가는 길을 영영 잃을 지도 모르겠어요. 그들의 집도 ‘재개발’된 셈이니까요.


제 이야기가 길었어요. 실은 산달이 바쁘고 지친 나날을 보내는 것 같아 즐거운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었어요. 제가 아는 웃긴 얘기라곤 똥이나 코딱지 얘기 뿐인가 봅니다. 다음 번엔 좀 더 세련된 유머를 고민해볼게요. 그렇지만 설사 다음 번에도 또 방구 얘기 따위를 해도 웃어주기로 해요. 저는 하루종일 침대에서 뒹굴거리다 제 편지를 읽고, 한껏 게으름을 피우며 느긋한 편지를 썼다는 산달의 답신이 오기를 응원할게요.


지난 경칩편지의 이야기를 아주 소중하게 읽었어요. 누구에게나 착한 아이가 되려고 노력하고, 외투를 벗기는 건 햇살이라고 믿다가도, 책을 읽고 문득 세상에 실망하고, ‘네가 너라서 좋아’라고 말하기를 연습하는 이야기요. 치열하면서도 애타게, 또 스스로 엄격하면서도 타인을 사랑하기를 실패하지 않은 이야기 말예요. 전 산달이 스스로를 잘 안다는 생각이 들어요. 저에게 자신을 알아차리기란 결코 쉽지 않거든요. 산달은 자신을 선명하게 마주하고도 흔들리지 않아보여요.


지난주에 구례 옆동네 하동에서 큰 산불이 났어요. 주민이 집에서 태우고 남은 잿가루를 산에 퇴비삼아 주시던 게 원인이 되었죠. 숲의 존재들이 무사한지 어제 모니터링을 갔는데요. 산불 현장을 가본 것도, 산불 전문가의 설명을 듣는 것도 처음이었어요. 결론부터 말하자면, 숲엔 그새 새순이 돋아나고 있었어요. 지리산은 소나무만 남기고 키 작은 활엽수를 모조리 잘라내는 인공수림이 아니라서 피해가 적었다고 해요. 활엽수는 불에 타지 않는 물기둥과 같아서, 불기둥과 같은 소나무를 작은 물기둥들이 용사처럼 지켜준 거죠. 도리어 낙엽 카펫을 한 차례 걷어낸 셈이라 그 아래 햇빛을 못보던 씨앗들이 새롭게 자라날 기회가 될 수도 있는 거라고요.


전 이 다행한 이야기를 들으면서 산달의 이야기가 겹쳐 보였어요. 어떤 순간에 우리는 ‘내가 알던 세상이 완전히 엉터리였군’하고 느끼곤 하잖아요. 모든 걸 과감히 불태워야하는 순간이 오죠. 산달이 하나하나의 죽음을 가슴에 새겼듯이요. 그런데 건강한 숲에서 그런 대소멸이 찾아오면, 도리어 새로운 생태계가 열리는 문이 돼요. 산달이 하나하나의 삶도 가슴에 새긴 것처럼요. 숲 바닥이 온통 잿가루인데도, 재를 살짝 걷어내면 바로 아래 낙엽은 타지도 않은 채였어요. 전문가 분은 숲에 오히려 잿가루 거름을 뿌린 효과일 거라고 웃으며 말씀하셨어요. 전 산달의 지난 이야기가 끝내 성벽을 무너뜨리는 나팔소리가 될 거라고 믿어요. 우린 대소멸 속에서도 그런 이야기를 계속 만들어내기로 해요.


고단한 새벽까지 산달의 이야기를 써내려가주어서 고마워요. 꽃샘추위가 반짝 찾아오는 춘분이에요. 산불이 난 다음날, 춘분다운 강한 비바람과 천둥번개가 쳐서 산불을 크게 막아냈죠. 대소멸 속에서도 지구는 절기에 따라 여전히 자신의 일을 하고 있어요. 산달도 자신의 일을 하면서 하루하루를 보내세요. 햇살을 쐬면서 꽃 같은 하루를 보내는 일이요!


감자 심고 돌아댕기는 덕복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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