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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이어린 Apr 29. 2023

익숙함을 약속해준 덕복희에게

지리산에서 보내는 펜팔(2) - 산달의 소한 편지

복희! 벌써 저에게 그 이름은 아주 멋진 이름이 되어 버린 것 같아요. 얼굴도 목소리도 알 수 없는 편지에서 저는 오직 복희가 쓰는 단어들로 복희의 윤곽을 상상하게 되거든요. 글이란 건 사실 굉장히 솔직하기도 하죠. 평소에 그 사람이 어떤 낱말들을 수집해왔는지 어렴풋이나마 엿볼 수 있기 때문이에요. 복희의 말들에는 사랑을 고민해 온 흔적들이 화석처럼 남아 있다고 느꼈어요. 그리고 저는 그 화석에 덕복희라는 이름표를 붙일 뿐이겠죠.


저는 한 번도 제 이름을 다른 방식으로 불러 본 적이 없는데요. 그래서 이번에 새 이름을 찾는 것도 굉장히 고민을 많이 했던 것 같아요. 생각나는 이름만 많아서 6가지를 펼쳐놓고 친구들에게 뭐가 좋을까 같이 고민해달라고 부탁했어요. 그러다가 한 친구가 정해준 이름을 골랐는데, 끝내 입에 붙지 않아서 편지를 시작하기 직전에 다른 이름으로 바꿨고, 그게 ‘산달’이라는 이름이에요. 이름을 고민하던 중 제 눈 앞에 있던 트리트먼트의 향, SANDAL WOOD에서 따온 이름이랍니다. 향이 참 좋더라고요. 그러고나서 생각해보니 ‘산처럼 달처럼’ 이라는 뜻도 붙여볼 수 있었어요. 그 이름이 지리산과 그곳에 사는 반달가슴곰을 연상하게 만든다는 것은 나중에 깨달은 사실이에요. 그렇게 짓고 나니 참 흡족하더군요.


가벼운 고민일지도 모르지만, 이름을 짓는다는 건 꽤 의미있는 일일지도 몰라요. 우리의 언어 세계에서 무언가로부터 이름을 가져다 쓴다는 것은 그 기표에 대해, 표상에 대해 책임지겠다는 약속이기도 하니까요. 저는 앞으로도 떡볶이를 먹을 때마다 자신의 이름을 된소리로 발음하는 것을 주의해야 한다는 복희의 당부를 떠올리겠죠. 복희가 이제 똥을 멋진 존재로 바라보기 시작한 것처럼요. 복희는 어떤 순간에 저를 떠올리게 될까요? 아무튼, 제게 대체할 수 없는 하나의 의미가 되어주어 고맙습니다. 휘영청 달 밝은 날 지리산에서 복희와 떡볶이를 노나 먹을 수 있기를.


이름 하나 정하는 것 가지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늘어놓았네요. 어쩌면 이게 제 습관일지도 몰라요! 언어를 지나치게 세심하게 쓰려고 하는 버릇 말이에요. 저는 대화할 때 ‘음,,,’, ‘뭔가,,,’ 라는 추임새들을 자주 붙이는데, 그런 저를 세심히 지켜봐 준 한 친구는 ‘또 말들을 고르는 중이구나?’ 라고 얘기해줘요. 생각해보면 저 스스로도 ‘어떻게 표현해야 할 지를 모르겠어.’라는 말을 자주 하거든요. 제 문장들이 종종 준비되지 않아 투박하고 거칠다고 느껴요. 제 안에 스며든 여러 생각의 조각들이 있는데, 그것들을 전달하는 일은 제게 아직 어려운 일이에요. 저도 누군가가 저를 오해하는 일이 정말 무섭거든요. 늘 충분히 이야기할 시간이 제게 주어지지 않는다는 것이 문제입니다. 모든 사람이 서툰 우리의 이야기를 조금씩만 기다려주면 얼마나 좋을까요? 그래서 요새 저는 충분히 이야기하지 못 하는 상황에서 그냥 입을 닫고는 합니다.


그래서 기후 운동을 한다는 것은 어쩌면 기다리는 일일지도 모르겠어요. 사람들에게 나의 말이 가닿기를 기다리는 일이기도 하고요. 기후위기를 만들어낸 세상에게 입을 가로막힌 생명들이 충분히 이야기를 꺼낼 수 있도록 기다리는 일이기도 해요. 그리고 우리는 그 이야기들을 차분히 듣고, 수집하고, 번역하는 거죠. 복희의 말처럼, 이해와 오해를 넘나들지만 차분히 바라보며 기다리는 거에요. 그들의 말들이 우리에게 충분히 익숙해질 때까지요. 우리가 바라는 민주주의가 바로 그런 모습이 아닐까요?


복희가 또 그런 말을 했잖아요. “익숙함이야말로 경이로움”인 것 같다고요. 참으로 그래요. 무엇이 익숙해진다는 것은 참으로 경이로운 일이에요. 낯설고 생경한 것들이 내게 익숙해진다는 것은 그것이 익숙해질 수 있도록 하는 노력이 있었다는 말이잖아요. 오늘 좀 어색했지만, 내일 다시 만나고, 모레 또 인사하고. 그렇게 하루하루에 이해와 오해를 반복하다 보면 결국 우리는 친구가 되겠죠. 처음이 어렵지, 익숙해지면 어렵지 않을 거에요. 우리는 그런 사랑을 가지고 있는 존재들이잖아요!


그런데 복희, 사랑은 어떤 걸까요? 우리는 우리가 사랑을 받은 방식대로 다른 존재들을 사랑하잖아요. 저는 궁금해요. 사랑이 과연 그런 형태만 있는 것인지, 우리는 사랑이 아닌 방식으로 사랑할 수 있을지. 제 고등학교 때 문학 선생님이 이런 문장을 전해주셨거든요. “우리에게 부족한 것은 사랑이 아니라 상상력이다.” 라고요. 우리는 또 다른 사랑의 방법을 상상해볼 수 있을까요? 사랑의 새로운 길들을 찾아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이 이야기는 기회가 있다면 다시 제대로 하기로 해요. 복희에게 사랑은 어떤 것인지도 궁금해요.


겨울이 지나고 봄이 되어 어느덧 우리의 말들이 소복히 쌓인다면, 복희는 제게, 저는 복희에게 그런 익숙함을 선물할 수 있을 거에요. 그리고 그곳에서 또 하나의 세상이 열린다고 생각해요. 저는 그 이유 하나만으로 이렇게 글을 쓰고 있어요. 제가 복희의 이야기를 기다렸던 것처럼 복희도 저의 이야기를 기다릴까요? 제가 복희의 글을 읽고 침대 위에서 깔깔 웃었던 것처럼 복희도 그럴까요? 궁금한게 참 많지만, 조급하지 않으려고 해요. 차분하게 바로보고 기다리면서 복희의 세계를 만나볼래요. 사랑해보려구요. 그럼 또 이야기 나눌 때까지 건강하세요.


p.s. 새파란 잠자리는 어디서 날아오나요?


궁금한 게 많은 산달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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