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구 년의 기록
학부 때부터 친한 선배가 있었다. 어떻게 친해졌는지는 아직도 잘 모르겠다. 어느새 아는 사이가 되어 있었고, 오가며 지나치고 인사하며 장난을 치던 편한 사이였다. 신기하게도 그 선배는 내 표정을 잘 알아챘다. 기분이 나쁘거나 화가 나거나 할 때. 그때마다 주저리 하소연을 하면 듣고 나서 항상 이렇게 말했다. "그럴 수도 있지" 그런 대답에 괜히 허탈해지곤 했다.
당시 이해가 되지 않는 사람들이 많았다. 아 물론 지금도! 저 사람은 왜 저렇게 생각할까. 또 저 사람은 왜 저럴까라는 생각이 가득했다. 그러다 가끔 무례한 사람들을 만나면 나의 한계점은 터지고 말았다. 말을 함부로 내뱉거나, 자신의 행동에 책임을 다하지 못하는 사람을 만났을 때 어김없이 감정은 들끓었다. 분노하고 누군가를 미워하고, 심할 땐 욕지거리를 쏟아내기도 하였다.
요즘은 별일 없이 살려고 한다. 사실 별일을 만들지 않으려고 한다. 누군가 훅-하고 쨉을 날려도 그냥 휙-하고 지나가고 있다. 상대방이 '으엥?'하고 아쉬워할 만한 그런 미지근한 반응을 내비치기도 한다. 노력이겠지 이것도. 조금은 차분히 흐르면 흐르는 대로 흘려보낼 때 선배의 말이 생각난다. "그럴 수도 있지 뭐"
지금 생각해보니 그게 다른 이들과 더불어 살아가는 선배만의 방법이 아니었나 싶다. 타인을 오롯이 이해하는 건 불가능하다. 우리는 모두 다르니까. 그래서 때로는 그런 생각을 한다. 이해가 되는 것이라면, "되는 행위"라면 이해가 안 간다는 말은 사실 이해하고자 하는 마음을 포기한 상태인 건 아닐까. 이해하고 싶은 마음이 없는 건 아닐까.
이해하기가 싫은 사람이거나, 이해하기에 이미 지쳐버린 마음이거나, 이 관계에 더 이상 아무런 미련도 마음도 없거나. 이유에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 하지만 옆 사람과 부대끼며 살아가야 한다는 것은 현실이다. 출퇴근길 지하철에서, 집에서, 사무실에서, 학교에서, 카페에서 등등. 하루를 살면서도 수많은 사람을 만나고 마주한다. 그리고 그 관계 속에서 다양한 사건들과 부딪히게 된다.
그럴 때마다 "그럴 수도 있지 뭐"라고 생각해보려고 한다. 이해가 되지 않는 상황에서 이것이 일어날 수도 있는 일이라는 것과, 나에게만 일어나는 게 아니라는 것에서 마음은 조금 편해지고 상대방을 향한 일말의 이해심이 생기기도 한다. 그러면서 나는 오늘도 타인과 완벽하게 더불어 살아가고 싶다는 희망을 가지고 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