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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일상단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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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리리 Jul 27. 2022

고약한 밤이 가실 때까지

나는 예민한 사람이다. 전에는 "예민하다"라는 말만 들어도 짜증이 났다. 신경쇠약이나 히스테릭한 사람인 거처럼 보여서. 어느새 스물 후반으로 향하는 지금은 예민을 나를 표현하는 하나의 단어로 받아들이게 되었다. 예민과 민감은 뉘앙스가 완전히 다르다. 예민은 성격과 같은 고유 성질이라고나 할까. 외부에 주체적으로 반응하는 태도가 예민이라면, 민감은 어떠한 상황에 영향을 받는 상태라고 이해가 된다.


아무튼 스스로 예민하다고 인정해버린 나는 외부 자극에 민감한 사람이다. 사람은 만날 때도 제법 예사롭지 않다. 대화 스타일, 사용하는 어투, 반복해서 말하는 단어, 습관과 표정, 그 표정에서 드러나는 감정 등 대화에서 많은 것들을 느끼고 캐치한다. 그렇기에 누군가 이야기하는 것을 좋아하면서도 어려워한다. 아, 물론 일부러 분석하는 건 절대 절대 아니다. 변태도 아니다. 그저 민감한 사람이라 그렇다.


길을 걸을 때도 마찬가지다. 스쳐 지나가는 것들을 관찰하게 된다. 횡단보도 맞은편에서 오는 사람의 걸음걸이, 출근길 버스에서 마주한 사람의 패션, 요란한 클랙슨 소리, 바람에 흔들리는 잎사귀, 어느새 피어난 봄꽃 등등. 눈에 보이는 것과 귀에 들리는 것이 많아질수록 외부 자극력이 상승한다. 그래서 외출시간이 긴 날에는 그만큼의 시간을 홀로 보내야 한다. 홀로 보내는 시간에는 가만히 누워있거나, 기타를 치거나, 좋아하는 음악을 틀고 화장실 거울 앞에서 춤을 춘다. 그것도 아니면 일주일 내내 미뤄두었던 청소를 시작한다.


그렇게 시간을 보내도 자극에 대한 피로가 풀리지 않을 때가 있다. 집이라고 별 수 있겠는가. 침대와 한 몸이 되지 3시간이 지나도 머릿속을 헤집어 다니는 생각들이 좌판에 깔린 고기처럼 펄떡거린다. 정말이지 꼬꼬생 인간이다. (꼬리에 꼬리를 무는 생각을 가진 인간... 내가 지어낸 말이다. 푸하하.) 꼬꼬생 인간은 생각이 많다. 잡다한 생각은 스스로를 자극한다. 그런 날에는 쉽사리 잠들지 못한다. 특히나 이사 온 집은 대로변에 위치하는데 밤마다 사이렌 소리가 요동한다. 복잡한 생각에 요란한 BGM이라... 고약한 밤을 위한 환상의 조합이다.


고등학교 담임이었던 *이치로는 (*부연 설명 혹은 TMI : 고등학교 시절 담임선생님으로 일본 야구선수 이치로를 닮아서 생긴 별명이다. 본명은 기억나지 않는다.) 항상 이렇게 말했다. "자빠져 잘 잔다.", 혹은 "죽으면 평생 자는데 왜 그렇게 잠이 많냐?" 딱 맞는 교복 블라우스와 치마를 입고 책상 위에서 어정쩡하게 자다 들킨 나에게 하는 말이었다. 그때는 왜 그렇게 잠이 많았는지 저녁 급식을 먹고 야자(야간 자율 학습시간)를 시작하는 종소리와 함께 책상 위로 엎어지기일 수였다. 잠은 결코 정복하기 어렵지 않은 종목이었다.


요즘엔 그런 잠이 간절하다. 자빠져 자는 잠. 머리만 대면 쏟아지는 잠. 평소보다 바쁜 일정을 살고 집에 돌아와도 꼭 새벽에 한 번씩 깬다. 시계를 보면 2시 30분 혹은 3시. 큰 소리가 들린 것도, 무서운 꿈을 꾼 것도 아닌데 꼭 3시 전후로 눈이 떠진다. 한 번 깨고 나니 꼭 잠은 멀리 달아난 것 같다. 혼자 눕기 좋은 싱글 사이즈 침대 위에서 좌로 굴렀다, 우로 굴렀다, 팔을 베개 밑으로 넣었다가, 뺐다가 쉴 새 없이 뒤척인다. 이런 밤을 보낸 다음날은 어김없이 피곤이 더해진다.


수면장애, 거창해 보이는 병명 같지만 사실 별거 없다.  19년도 목동에서의 그늘이 지금까지 좇아온 것뿐이다. 당시 내 방은 현관문 쪽과 가까운 위치에 있었는데, 누군가 계단을 뛰어다니면 그 소리가 온전히 머리맡으로 전해졌다. 밤이라고 예외는 없다. 해가 지고 나면 누군가의 퇴근 소리, 산책 가는 강아지 소리, 깊은 새벽엔  쓰레기를 수거하는 소리와 술주정 소리가 들려왔다. 아마도 그때부터였을 것이다. 서울에서 자취를 시작한 그때쯤 새벽에 잠을 이루지 못한 날들이 늘어갔다.


여기서, 참 신기한 건 고향집에 내려가면 도통 깨지 않는다는 것이다. 미선과 선영이 작디작은 방에서 자고 있는 나를 깨우러 올 정도다. 얼마 전 오랜만에 집에 다녀왔다. 역시나 한 번도 깨지 않고 12시간을 내리 자버렸다. 그리곤 점심을 먹고 낮잠을 4시간이 연이어 잤다. 심리적으로 편안해서일까, 자연의 기운을 느껴서일까. 하여간 알 수 없다. "이 방은 참 이상해. 누가 수면제를 뿌려놓았나 봐. 아니면 뭔가 기운이 남달라." 퉁퉁 부은 눈을 비비며 말했다.


그러자 미선이 말했다. 그는 이미 내가 몇 해째 새벽마다 잠에서 깬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여긴 너의 영원한 안식처야. 편히 자고 싶을 때마다 언제든지 와도 돼." 영원한 안식처라니! 이 얼마나 멋진 말인가! (우리 집 대장 미선은 때때로 진심이 담긴 멘트로 감동을 준다.)  며칠 동안 이 단어가 살면서 틈틈이 생각났다. 나도 모르게 잠들지 못하는 밤들이 늘어 갈수록 편안히 거할 수 있는 집에 대한 그리움이 쌓이고 있었나 보다.


안식처는 비단  만은 아닐 거다. 아무런 걱정 없이 편히   있는 , 생각이 흩어지지 않는 , 밤이 무섭지 않은 , 내가 나이기를 증명하지 않아도 되는 ,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 하는 곳이 모두 우리의 안식처다. 편히   있는 영원한 안식처가 모두의 마음 한구석에 있었으면 좋겠다. 나의 평안, 그리고 당신의 평안을 위해서!  고약한 밤이 쉬이 가시지 않을 때면 가자. 자빠져 자고 싶을 때면 가자. 그리고 마음껏 걱정 없이 자자. 누군가 다시 깨워줄 때까지. 여기는 우리의 영원한 안식처이니까.

콰야 - 잠이 오지 않는 새벽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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