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namoo Oct 31. 2021

내돈내산이 이렇게 불편할 수가

이상하고 아름다운 명품 매장

'180분'

들어본 적 없는 세 자릿수 대기 시간에 기가 탁 막혔다. 코로나와 명품 매장 매출은 정비례한다더니 사실이었네. 밥 집 웨이팅 10분도 안 기다리는데 이걸 기다려 말어. 그래도 엄마 선물 사려고 큰맘 먹고 온 거니까. 일단 대기 명단에 이름을 올려두기로 한다. 그렇게 황금 같은 주말 세 시간을 웨이팅에 바쳤다.

Photo by Dima Pechurin on Unsplash

매장에 들어서자 내가 이런 명품 매장에 익숙한 사람이 아니라는 사실과, 지갑 속 귀여운 예산을 점원에게 들키면 안 된다는 생각에 마음이 불편해왔다. 능숙한 듯 태연하게, 하지만 매의 눈으로 매장을 샅샅이 살핀 끝에 보기에 괜찮고 예산에도 맞는 선물 고르기에 성공했다. 예산에 맞아서가 아니라 원래 사려고 했던 아이템이었던 마냥 자연스럽게 포장을 요청하고 결제를 마쳤다.


여전히 길게 늘어선 웨이팅을 뒤로하고 점원의 환송을 받으며 매장을 나섰다. 그런데 손에 들린 쇼핑백의 모양새가 조금 이상했다. 선물 박스는 정사각형인데 쇼핑백은 직사각형이라 선물 박스가 보기 싫게 튀어나와 있었던 것이다. 점원에게 바로 얘기했으면 될걸, '다른 사람들 쇼핑백은 그렇지 않던데 나만 왜 이렇게 넣어줬담.' 하며 집으로 돌아오는 내내 마음이 또 불편했다.


적지 않은 돈을 쓰기 위해 적지 않은 시간까지 써야 하는 곳, 그런데도 기를 쓰고 기다려 들어가는 곳, 들어가서도 마음 한구석이 불편하고 불안한 곳. 매장을 나와서까지도 괜한 자격지심이 들게 하는 곳. 나 같은 아주 보통의 사람에게 명품 매장은 아름다우면서도 조금은 기이하고 씁쓸한 여운이 남는 곳이었다.


작가의 이전글 인생이 또 인생 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