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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amoo Apr 10. 2022

오늘 처음 만드는 뮤지컬

오늘 만든 이 얘긴 다시 못 봐. 다시 오지 않을 우리 인생처럼

제목부터 심상치 않은 이 공연은 미리 짠 스토리도, 대사도 없다. 큰 틀과 주요 넘버를 제외한 모든 건 관객이 즉흥적으로 만든다. 배우들이 “주인공 이름은?”, “장소는?”, “PPL도 필요해”, “명대사도 있어야지”라고 질문하면 관객들은 기다렸다는 듯 아이디어를 쏟아낸다.


그렇게 만든 공연은 하나같이 엉뚱하다. 공동무협구역JMA에서 주막을 하는 황진희 씨는 친구를 만들기 위해 리니지에서 현질을 하고, 가사도우미 오드리 햇반은 로봇 할리의 도움을 받아 신세계로 떠난다. 이야기는 산으로 가고(갔다가 못 내려올 때가 많다), 대사는 자주 앞뒤가 안 맞다. 급발진하는 러브라인에 어리둥절하고, 떡밥 회수도 덜 했는데 공연이 끝나기도 한다.

채택된 아이디어가 적힌 칠판. 이를 토대로 즉흥극이 진행된다.

하지만 이 공연에서 스토리 완성도는 크게 중요치 않다. 오첨뮤의 백미는 공연 한 편을 만들기 위해 포기하지 않는 배우들의 모습이다. 무심코 튀어나온 본심에 얼굴이 벌겋게 달아오르고, 실수를 수습하려다 되려 일을 만든다. 그래도 러닝타임 내내 흐르는 땀을 떨치며 대사를 치고 가사를 만들어 결국 마침표를 찍어낸다. 엉망진창 스토리를 보고 나와도 마음 한 구석이 찡한 이유다.

하루는 친구와 공연장을 찾았다. 그날 공연은 특히나 유쾌했다. 그런데 막이 내린 후 친구는 울음을 터뜨렸다. 당시 대학병원에서 간호사로 근무했던 친구는 작은 실수 하나에도 혼나고 주눅 드는 일상을 반복하고 있었다. 아침마다 오늘은 또 어떤 일이 일어날지 겁이 났다 했다. "공연 내내 이 공연이 과연 무사히 끝날 수 있을까 너무 조마조마한 거야. 마치 내 하루처럼. 그런데 아무 일 없이 끝나니 안도감에 그만 눈물이 났어."


그날 오첨뮤는 아마 친구에게 이렇게 말해줬을 거다. 조금 이상하긴 했지만 멋지게 끝난 오늘 공연처럼, 네 하루도 아무 일 없이 잘 끝날 거라고. 그러니 너무 불안해하지 말라고...

오첨뮤가 친구에게 오늘을 버틸 힘을 줬다면 내겐 내일을 살아갈 힘을 준다. 마음에 안 들어 죽겠는 하루를 보내고 온 나에게 오첨뮤는 말한다. 대본도 없고 등장인물도 누군지 모르는 '오늘'이란 공연, 그 정도면 잘 살았다고. '내일'이란 새로운 공연, 다시 잘 만들어보면 되지 않겠냐고. 그럼 나도 생각한다. '그래. 이만하면 잘 살았다. 내일은 좀 더 멋지게 살아보자'고. 언젠가 하루쯤은 나도 마음에 드는 공연을 만들 수 있겠지..


오늘 만든 이 얘긴 다신 못 봐
다시 오지 않을 우리 인생처럼
오늘 만든 이야기 잘 간직해
우리도 꼭 기억할게요

또 언젠가 만나게 되면 들려줘
당신 이야기를 보여주세요
오늘 공연보다 더 찬란히 빛나게 될
오직 한 번 펼쳐질 우리 인생

-오늘 처음 만드는 뮤지컬 커튼콜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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