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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amoo Apr 29. 2023

성실한 농부와 일급 요리사의 합작품

입 벌려, 집밥 들어간다

“반찬택배발송”

아빠의 카톡과 동시에 나의 세포 마을에는 축제가 시작된다. 출출이 세포는 이미 저녁 식사 준비를 마쳤다. TMI 세포는 "오늘 우리 집에 똥거리 와요” 하며 동네방네 떠들어댄다. "왜 음식에 똥을 붙이냐고요? 우리 할머니는 먹으면 다 똥 된다고 똥거리, 똥거리 하셨거든요. 이야깃거리, 먹거리 같은 거예요~"


퇴근과 동시에 한동안 행방이 묘연했던 요리 세포가 밥을 안친다. 고소한 쌀 익는 냄새가 가득 퍼질 때쯤, 현관 너머로 "툭" 하는 택배 박스 떨어지는 소리가 들려온다. 박스를 둘러싼 테이프를 벗겨내면 영롱한 반찬들이 모습을 드러낸다. 끝도 없이 나오는 똥거리들을 꺼내며 집에 전화를 건다. 수화기에서 반찬들의 여정이 들려온다. 시작은 우리 집 작은 텃밭이다.


"그거 올해 첨 올라온 부추다. 원래 첨 나는 부추가 향도 좋고 보드라와서 맛이 제일 좋은기라. 카고 이번에 감자가 을매나 잘됐는지. 한 뭉태기 캐와가 쪄가 묵고 부쳐서도 뭇따 아이가. 거다가 느그 아빠가 또 농협 가가 감자 한 박스를 사 왔다? 거 보면 카레 있제? 카레에도 감자 항금 들어있을기라. 카레는 먹을 만큼 딱 나눠가 냉동실에 너 놓고. 감자 샐러드는 빵 사가 발라가 아침으로 먹고. 고추도 밭에서 따왔는데 하나도 안 맵다. 배추전은 금방 구웠을 때 먹어야 맛있는데... 렌지에 살짝 돌려가 죽죽 째무라. 야채전은 냉장고에 있는 야채 훌주 다 섞어서 구워봤는데 맛있대~ 가지전은 가지가 끝물이라 끝이 좀 질길기라."


한 상이 다 차려질 때까지도 브리핑은 계속된다. 밥상이 다 비워질 때까지 엄마의 설명이 끝나지 않길 바라며 조물조물 무친 시금치와 밥 한 숟갈을 떠 넣는다.


"우리는 매일 밭에서 시금치 따다 먹는데 우리끼리만 먹으니까 미안해갖고... 시금치가 참 보드랍제? 파는 건 억세고 오래 두면 끝이 시커메지는데 이건 산지에서 바로 오니까 싱싱하지. 밥은 있나? 아, 파는 조금 매운데 향이 참 좋제? 오징어는 총각네서 두 마리 만 원하던데 한 마리 크-은거 팔천 원에 달라했더니 오백 원 더 받아야 하는데 하면서 주더라고. 냉동이긴 한데 커서 파전에도 넣고 김치전에도 넣었다 아이가. 그래 집에 밥은 있다 캤나? 얼른 반찬 꺼내서 밥 묵으라~”


오랜만에 뱃속이 집밥으로 가득 찼다. 전기값만 축내던 냉장고도 빈틈없이 꽉 찼다. 나무에 도토리를 한가득 저장해 둔 다람쥐가 이런 기분일까? 성실한 농부와 솜씨 좋은 요리사 덕분에 오늘 나는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돼지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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