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통통하고 딴딴하고 윤기 나는 김밥
가을 운동회 시즌이면 엄마는 남의 자식 운동회로 바빴다. 6년 동안 딸 운동회는 한 번도 안 왔으면서 남의 자식 운동회엔 빠지지 않고 갔다. 남의 집 애가 부채춤을 어떻게 틀렸는지는 기똥차게 알면서, 딸이 달리기에서 몇 등을 했는진 몰랐다. 초등학교 교사를 엄마로 둔 나의 숙명이었다.
운동회 전날, 엄마는 항상 김밥을 쌌다. 아주 통통하고 딴딴하고 윤기가 흐르는 김밥이었다. 뭐 하나 빼먹은듯 허전한 가게 김밥과 달리, 오색빛깔 엄마 김밥에선 꽉꽉 들어찬 맛이 났다. 밥 한 알 한 알에 간이 베어 고소했고, 갖가지 재료가 달콤짭짤해서 자꾸 손이 갔다. 엄마는 잘 만 김밥을 은박 도시락에 담으며 말했다.
나중에 내한테
'언제 내 운동회 한 번 온 적 있나?'
이런 말 하지마래이. 나는 김밥 싸줬다이.
다 큰 딸자식이랑 싸우면 꼭~~~
'엄마는 운동회도 한 번 안 왔으면서'
이칸다 카드라
언젠가 테레비에서 본 적 있었다. 자식이 엄마와 싸우며 내뱉는 대사였지 아마. 김밥 꼬다리를 씹으며 그 시절 나는 생각했다. '내가 어른이 돼서 엄마랑 싸워도 운동회 안 온 건 봐줘야지. 일부러 안 오는 것도 아니고, 김밥도 맛있게 싸줬는데 운동회로 공격하는 건 좀 치사하잖아.' 그렇게 엄마는 운동회 불참에 대한 면죄부(!)를 얻었다.
그 후, 운동회는 한 번도 우리 모녀의 말다툼에 등장하지 않았다. 만약 엄마가 김밥을 안 싸줬더라면... 단골 레퍼토리로 오르내렸을지도 모르겠다.(엄마는 운동회 한 번을 안 오고 김밥도 안 싸줬음 써-!) 하지만 정성스러운 김밥 덕분에 내 마음엔 어떤 섭섭함도 남지 않았다. 친구네 김밥보다 맛있어 보이는-실제로도 꿀맛이었던 김밥이 있었던 즐겁고 따뜻한 운동회만이 추억으로 남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