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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amoo Mar 08. 2021

글쓰기는 싫은데 브런치는 하고 싶어

괴로움과 그리움, 그 사이

글쓰기를 누구보다 싫어하는 나는 글을 쓰고 월급을 받는 에디터다. 글을 써야 돈을 쓸 수 있는데 글쓰기를 싫어하니 매일매일이 숙제를 받아 든 학생이 된 기분이다. 깜빡이는 커서를 보고 있으면 마음이 무겁다. 도무지 진도가 안 나가는 날엔 여기저기서 본 내용을 휘갈겨 꾸역꾸역 마침표를 찍는다. 그렇게 완성한 글은 이것저것 갖다 기운 누더기 이불 같아 마음이 괴롭다.

Photo by Christin Hume on Unsplash

글쓰기가 좋았던 시절도 있었다. 연필로 꼭꼭 눌러쓴 독후감상문이 학교 복도에 걸리던 날, 성적 우수상 대신 글짓기 상을 받았던 고등학교 졸업식, 원고 말미에 '교지편집위원회 기자'라고 써넣던 대학시절... 누가 시키지 않아도 썼다. 글쓰기가 어렵다는 동기에게 '그냥 쓰면 되던데?'라며 되받아쳤다. (재수 없어라) 잘 쓴다 하니 글 쓰는 게 좋았고, 그래서인지 두려움도 없었다.


그랬던 글쓰기가 어려워졌다. 말 못 할 고민도 다 털어놓던 절친이었는데 돌연 이방인이 됐다. 좋아서 쓰던 글이 밥벌이가 되면서부터다. 잘 써야 한다는 부담감은 단어 하나, 문장 한 줄 쓰기도 힘들게 했다. 좋은 평가를 받아야 한다는 중압감은 글쓰기를 '하기 싫은 일 중 하나'로 만들었다. 그렇게 싫으면 그만두면 될 텐데 배운 게 도둑질이라고 말처럼 쉽지 않다.

Photo by Green Chameleon on Unsplash

그런 내가 새해 벽두부터 브런치를 열었다. 작가 지원서를 넣었고 매주 1편씩 글을 쓰겠다는 야무진 다짐도 했다. 멀어진 글쓰기에게 '다시 친해지자'라고 화해의 손길을 건넨 이유, 순수하게 글쓰기를 좋아했던 시절이 문득문득 그리웠기 때문이다.


말보다 글이 편했던 나는 글을 쓰며 엉킨 생각과 감정을 풀었다. 펜을 놓자 생각을 갈무리하던 시간도 함께 사라졌다. 덕분에 머릿속은 정리되지 않은 감정과 생각으로 어지러웠고, 하루의 끝은 찝찝하고 혼란했다.


잘 써야 한다는 부담 없이, 조회수나 좋아요에 연연하지 않고, 남 사정이 아닌 내 얘기를 쓰며 글쓰기와 다시 친해져 볼 참이다. 여전히 깜빡이는 커서가 두렵고 단어와 문장을 이어가기 어렵지만, 나를 작가라고 불러주는 이도 생겼으니 용기를 내 보자 다짐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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