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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창일 Feb 07. 2023

세계는 나를 자극하고, 나는 의욕이 없다.

큰 그림을 그리는 새는 작은 깃털을 신경 쓰지 않는다. 고목의 뿌리 구멍에서 작은 다람쥐와 쓰레기들을 발견한다. 지나가기엔 아깝고 사진을 찍기엔 사람들의 시선이 부담스럽다. 사람들은 무언가 시선이 쏠리는 지점을 궁금해한다. 내가 작은 난간의 녹슨 경첩을 클로즈업해서 찍고 있을 때, 지나가던 이들은 내가 무슨 대단한 것이라도 보고 있는 것 마냥 여기고 내 근처를 살펴본다. 그러다 별 대단한 것이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되곤 시선을 옮긴다. 사람은 그냥 그렇게 생긴 동물인데 우리가 인지하지 못한다. 이것을 자연스러움이라 해야 할까?


자연스럽다고 여기는 것은 결국 익숙함의 문제이며, 시간을 들여 반복해 온 것이라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 인생이 재미난 이유는 아무리 같은 규격으로 만들어졌다고 가정한다 치더라도 결국 모든 세세한 선택과 감정이 모든 환경을 변화시키기 때문이다. 주어진 여건에 굴복하거나 비슷한 양상으로 흘러가는 삶도 있지만, 그것을 바꾸고자 하는 긍정적 반발도 인간의 본능이기 때문이다.


반복은 재미있는가? 그렇지 않다. 누군가 지시하지 않은 반복은 나를 잠식해 간다. 눈치채지 못한 반복은 나를 주저앉게 만든다. 반복은 재미없다. 하지만 재밌는 반복을 만들 수는 있지 않을까? 그것을 탐색하고 습관화하는 과정은 부단한 노력이 필요하다. 그래서 자기 계발 강사들이 인기가 많다. 하지만 그걸 내 것으로 만든 사람은 별로 없는 것 같다.


방송이나 뉴스에 나오는 유명한 사람들은 정말 대단한 사람들이다. 하지만 보이지 않는 곳에 더 대단한 사람들이 많이 있다는 사실을 안다. 안회와 같은 사람이 되고 싶다. 하지만 나는 내가 별 대단한 것도 가지지 못했으면서 그런 욕망만 있다는 껍데기뿐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다.


주눅 들지 말자면서 세상에서 더 멀어지고 싶은 이 기분은 뭐란 말인가. 최근에 읽었던 책에서 다양한 나와 같은 감정을 처리하고 돌파하는 현실적인 방법을 알려주었다. (‘모든 것이 되는 법’. 에밀리 와프닉. 웅진지식하우스. 2017)


나는 그렇다고 다능인도 아닌 것 같다. 다능인인 척하는 게으름뱅이가 아닐까?


인간의 마음에는 작은 가시들이 있다. 그것이 성게처럼 꿀렁거리며 마음을 긁는다. 그것은 누가 심어놓은 것도 아니고, 내 안에서 자라난 것들이다. 그것이 꿀렁거리며 걸음을 옮겨주는 기능을 할지, 상처를 줄지 그것은 내 쓰임에 달렸다. 나는 이런저런 소리들을 적으면서 그저 내 손가락을 움직일 뿐이다. 손가락은 내 성게가 될 수 있는가. 내 머리에서 연결된 신경에 의한 기계적 장치일 뿐인가. 내 머리에서는 무슨 생각을 적어야만 내 인생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수익원을 만들 수 있을지 고민한다. 하지만 답은 없고, 기회는 적다. 준비되지도 않았다. 기회가 와도 잡을 수 있을까. 나는 피하고 싶다. 그러다 몇 년이 흘렀다.


미술관에 날리는 파리를 상상한다. 파리는 작품들을 오롯이 혼자 감상하고 만져보고 맛을 보고 더듬어서 자기만의 세계를 채워간다. 흐린 겹눈으로 보는 그림은 그냥 커다란 붉은 벽으로 느껴질 뿐일까? 차가운 청동 조각에 앉아서 여름의 더위를 날리고 있을까? 변태 같은 파리는 현대미술로써 설치된 고기 속을 파고 들어서 알을 낳는다.


파쇄기에 넣어서 잘려버린 조각들도 가치 있는 시대다. 누군가 정의하지 않은 새로운 개념이 설득되면 가치로 재탄생된다. 나는 설득력이 없다. 그냥 시간만 보내고 있을 뿐이다. 나는 내가 생각했던 중요한 무언가가 남들 앞에 보여졌을 때 너무 시시하고 누군가 정의했던 것들일까 봐 걱정하고 있다. 내가 쓰는 것들이 몇 개의 단순한 단어로 설명될 수 있는 아주 시시한 것들인데 나 혼자 장황하게 펼쳐놓은 것일까 봐 부담스러워하고 있다. 전문가들과 이야기하고 싶지만 관심만 있을 뿐, 대화가 통하지 않을 거란 사실을 잘 알고 있다.


모래 속에는 유기물이 들어있다. 조금 커서 눈에 보이는 것들은 작은 곤충처럼 수영하고 나온 내 몸을 기어 다닌다. 바다에서 수영하고 싶다. 여름이 되었으면 좋겠다. 여름 바다에서 수영하고 싶다. 자주 그러지 못했다. 기회는 만들면 되는데 왜 그랬을까. 까끌까끌한 모래에 잠시 누워서 구름 낀 하늘을 보고 싶다. 약간 흐린 날이 오히려 수영하기 더 좋다. 햇빛이 강한 날은 눈과 피부가 따갑다.


자동차가 생긴 뒤로 대중교통을 이용할 일이 없어졌다. 몇 년 동안 달라진 내 모습에 그것도 한몫했다 생각한다. 다리의 힘을 길러야 한다. 컴퓨터 앞에 앉아서 계속 무언가 하고는 있지만, 건강에는 좋지 않다. 밖으로 나가는 것이 건강에 좋다. 건강은 나를 움직이게 하는 힘이 될 수 있다. 기분 좋은 피곤함을 가지고 잠에 들면 깊이 잘 수 있고, 아침이 개운하다. 건강한 내 육체를 가지고 열정적으로 일하고 싶다. 몰입이라는 단어를 몇 년째 염두에 두고 있다. 무슨 느낌인지도 경험을 통해서 알고 있다. 내 주변의 모든 것이 사라지고 시간이 지나는 줄도 모른 채 눈앞의 것에만 집중하는 것. 그 시간을 통해서 내 육체와 정신이 하나 되고, 창작의 공장은 힘차게 돌아간다. 그게 필요하다. 내 방이자 작업실은 그걸 방해하는 것들로 가득하다. 잠시 미워하고 싶다. 정리하려고 하지만 그것을 정리해 둘 다른 공간이 필요하다. 더 넓은 곳으로 가고 싶다. 하지만 경제적으로 부족하다. 그것을 한탄하지 말자. 지금 좀 부족하다 싶더라도 내게는 모든 것이 갖춰져 있다. 약간의 부족함은 도리어 창작의 근원이 되기도 한다.


창작한다는 것은 무엇인가. 요즘의 나는 부담을 가지지 않으려고 한다. 거창한 목표는 내가 오히려 주저하게 만든다. 가벼운 목표로 즐기면서 하고 싶다. 유명하고 싶지 않다. 그냥 내 삶과 가족 정도만 건사했으면 좋겠다. 큰일이 닥쳤을 때 그것을 극복할 만한 여윳돈이 있으면 좋겠다. 적당한 집을 가져서 이사하지 않고 평생 버팀목이 될 공간으로 삼고 싶다. 이사 가는 것이 싫다. 물건이 망가지고 삶이 틀어진다. 새로운 곳의 기운을 받아서 삶이 변화되는 것은 긍정적인 면이 될 수도 있겠지만, 이미 너무 많이 겪었다고 생각한다. 이제 한두 번 정도에서 정리되었으면 좋겠다.


이어령 선생님이 돌아가셨다. 일면식도 없이 그분의 강의와 인터뷰를 온라인에서 몇 번 본 게 다였다. 그분의 집에는 온통 책으로 가득하다. 나는 사놓고도 읽지 않은 책이 많다. 그분은 어려운 것을 쉽게 이해할 수 있게 설명해 주셨다. 그게 어려운 일이다. 본인 스스로 인간의 삶을 고찰하는 능력이 있으면서 동시에 교육자로서의 좋은 소양도 갖춘 다능인이 아니었을까? 나는 어떨까.



BGM 이수현 ‘ALIEN’

ⓒ창일(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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