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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마음조각가 Oct 10. 2022

벌써 그라믄 쓰간디

감정페르케 _ 용서하지 못할 것만 사랑했다

임인년 새해 첫날, 어머니가 계시는 시골집에 들른다. 어머니의 호위무사 시바(Shiba)견 행복이가 반갑다며 호랑이처럼 폴짝폴짝 뛴다. 다 늙으신 어머니의 손을 잡고 작년 한 해 고생 많으셨다고, 올 한 해도 복 많이 받으시라고 새해 인사를 건넨다. 어머니는 내심 기대한 덕담 대신 며칠 전의 꿈 이야기를 하시고, 나이가 들면 무서운 게 없어진다는 말씀을 뚜렷하게 전하신다. 살아보니 세상에 천지개벽할 일은 예나 지금이나 별로 없다는 말씀. 하루하루 꼴에 맞게 잘 살아내는 마음이 기도이자 계획이라는 말씀. 그 잔소리 같은 덕담에 해몽을 덧붙이려다가는 어설피 "어머니, 그러고 보니 요즘 저도 별로 세상 무서울 게 없네요." 그러자 어머니 부드럽고 인자한 목소리로 한 말씀 툭 던지신다. "벌써 그라믄 쓰간디. 세상에는 무서운 거 천지여. 고걸 잘 알아 묵어야 무서운 게 없어지는 뱁이여. 아가, 알아 듣겄냐?" 나는 물가에 내놓은 아이처럼 고개를 끄덕인다. 시골집을 나서자 어머니의 호위무사 시바견 행복이가 다시 호랑이처럼 날뛴다. 가만 다가가 머리를 쓰다듬으니, 올 한해 잘해보라고 금세 꼬리를 흔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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