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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벼랑끝 Jul 23. 2023

[보홀 이야기] #00 참! 나 필리핀에 살고 있었지.

익숙해지며 살아가는 것...

1) 자동차 리뉴얼

어제 세부 출장을 끝내고 보홀로 복귀해서 처음 한 일이 '자동차 리뉴얼'이었다.

필리핀에서는 매년 자동차를 재등록하는데 이게 '리뉴얼(Renewal)'이다.

필리핀에 사는 한인들이 가장 싫어하는 것 중 하나가 관청에서 행정 업무를 보는 일이다.

한국 같이 행정기관의 서비스가 좋은 나라에서도 관청에서 일을 보는 은 보통 귀찮은 일이 아니다.

헌데 말도 잘 안 통하고 시스템도 생소한 나라에서 이런 업무를 보는 게 쉬울 리가 없다.

더군다나 디지털화가 많이 되지 않은 나라에서는 말할 것도 없다.


예전 세부에 살 때는 한동안 직접 LTO(자동차 등록 사업소, Land transportation Office)에서

서류처리를 했었다. 하루 정도 시간을 잡고 가서 하면 4~5시간 정도면 서류를 마무리할 수 있었다.

당일에 안 될 도 있었는데 그럴 때는 다음 날 서류를 찾으러 가면 됐다.

즉, 자동차 재등록하는데 이틀이 걸린다는 뜻이다.


몇 년 동안 이 일을 직접 하다가 LTO 앞에 있는 현지 대행업체를 한 곳을 알게 됐다.

그 후부터는 수수료를 내고 그곳에 차량 관련 일을 모두 맡겼다.

서류와 비용을 미리 주고 오면 며칠 뒤에 일이 됐다고 연락이 왔다.


보홀에 와서 어떻게 하다 보니 트럭이 한 대 생겼다.

이게 애물단지인 게 내가 가져오는 달이 리뉴얼을 하는 달이었다.

어쩔 수 없이 LTO에 예전 세부에서 생각을 하며 직접 리뉴얼을 하러 갔다.


리뉴얼의 순서는 이렇다.

1) 스모킹 테스트

2) 책임 보험 가입

3) LTO 차량 점검

4) 비용 납부 후 영수증 수령


세부 같으면 오전에 일찍 가서 스모킹 테스트를 시작하면 4시간 정도면 끝난다.

그런데 보홀은 처음이기도 했고 차량에도 문제가 있어 일이 그렇게 호락호락 되지 않았다.

난 방금 OR(Offical Reciept)을 받았는데 세 번째 방문에서야 겨우 허가증(영수증)을 받은 것이다.


내가 사는 '팡라오'에서 'LTO가 있는 타그빌라란 시티' 까지는 차로 40분 정도 걸린다.

왕복하면 한 시간 반이 족히 걸리는 거리이고 또 기다리는 시간까지 하면 한  갈 때마다

반나절은 기본이다.  


첫 방문 때 서류 접수 후에 차적 조회가 안 되어 다시 돌아와야 했다.

다행히 4일 뒤 마닐라로 부터 차적이 확인 됐다고 보험회사 담당자로 부터 문자가 왔다.


중간에 세부 출장이 있어 2주가 더 늦어졌지만 모든 걸 직접 해서 적어도 프로세싱이

어떻게 진행되는지는 알게 됐다.

"잊어 먹지 않으면 내년에는 이게 도움이 되겠지"

"아냐! 내년에는 누구 시키자 이게 뭔 꼴이냐? 세 번씩이 이나" 이런 생각을 했다.


일을 끝내고 팡라오로 돌아오는데 자동차 에어컨이 비실비실하며 작동이 안 됐다.  

어제까지 잘되던 에어컨이 오늘 갑자기 안 될 때의 황당함이라니....

이 차를 살 때 한국인 중개인이 했던 말이 떠올랐다.


"한국에서 온 차는 3개월 지나면 돈 달라고 하기 시작해요.

일단 가져가시면 그때 연락해도 별수 없어요."


이건 뭐, " 차는 팔지만 뒷 일은 책임 안 진다." 이런 뜻 아닌가.

(이런 차를 왜 샀냐는 질문은 하지 마시라 살 수밖에 없는 이유가 있었다.)


에어컨을 끄고 창문을 여는데 이런 말이 절로 나왔다.


"참! 맞다. 나 지금 필리핀에 살고 있었지...."

"그동안 너무 운이 좋았어,  젠장 이제 시작이네..."

"웰컴 투 더 필리핀이다!"



2) 어라, 없어졌네?

보홀에는 '나팔링 투어'라는 '정어리 때' 스노클링(프리 다이빙) 옵션이 있다.

'알로나 비치'에서 서쪽으로 13km쯤 가면 다이빙 포인트가 나오는데 이곳에 정어리 때가 산다.

절벽에서 계단으로 내려가면 바로 스노클링 포인트로 들어갈 수 있어서 어린이나 노약자 또는

물을 무서워하는 사람들도 쉽게 스노클링을 할 수 있다.


나는 처음 여기 갔을 때를 잊을 수가 없다.

은빛 정어리 때를 뚫고 나갈 때의 경이로움이라니.....


근데 여길 두 번째 갔을 때 이야기다.

스노클링을 마치고 샤워를 했는데 집에 와서 보니 티셔츠와 반바지가 보이지 않았다.

"아! 샤워실에 놓고 왔구나, 젠장 좋은 건데 어떡하지?"

"쩝.... 설마 없어지기야 하겠어? 내일 아침에 가서 찾아오자."

돌아가려니 몸도 피곤한 데다 이미 해가져서 집을 나가기가 너무 싫었다.


다음 날 오전 그곳을 다시 찾아 입구 오피스에 당연한 듯이 물었다.

"내 티셔츠하고 반바지 어디 있어요?"

"무슨 소리세요?"

"어제 샤워실에 옷 놓고 갔는데 여기 들어온 거 없어요?"

"아무것도 안 들어왔는데요?"

"엥?, 그거 사이즈가 커서 아무나 못 입을 텐데?"

"어제 샤워실 청소한 직원들에게 확인해 볼게요."

"........."


그때서야 "아차! 어젯밤에 왔어야 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직원이 한참을 수소문을 하며 돌아다녔지만 결국 옷은 찾지 못했다.

나는 혹시 누가 옷을 가져오면 아 달라는 말을 남기고 거길 나왔다.

그리고 오는 길에 생각했다.

"아! 나 지금 필리핀에 살고 있는 거였는데...... 쩝"



3) 금고를 샀다.

나는 내가 살고 있는 집을 무척 좋아한다.

주인집 가족은 친절하고 이웃들도 매우 예의 바르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월세가 싸다.


필리핀에서 한인들은 대부분 경비업체가 관리하는 빌리지나 콘도(아파트)에 산다.

이런 곳은 당연히 월세가 비싸다.


내가 지금 살고 있는 집은 한인들 '로컬 주택'이라 부르는 곳이다.

로컬 주택과 빌리지, 콘도의 다른 점은 부대시설이나 위치, 공동 관리 시스템 등 몇 가지가

있지만 가장 큰 차이는 '세큐리티 가드(사설 경비원)'가 있느냐 없느냐이다.

쉽게 말해서 24시간 경비가 있고 없고 가 가장 큰 다른 점이란 뜻이다.


세부에 처음 정착할 때는 나도 빌리지에 살았었다.

그런데 사정이 여차여차하고 여차여차해서 로컬 주택택으로 옮겨야 했다.

그런데 살아보니 내겐 로컬 주택이 딱히 나쁘지 않았다.


한인들이 로컬 주택을 꺼리는 첫 번째 이유는 위험해서이다.

필리핀에는 한국에는 거의 없는 생계형 좀도둑들이 많다.

게다가 총기 소유 국가다 보니 여기 사는 사람들은 본능적으로 강도에 대한 두려움이 있다.

가게들은 항상 철창으로 입구를 막아놓고(처음 보면 감옥 같다) 가정집들도 과할 정도로 잠금장치를

많이 한다. 세부에는 담벼락에 유리파편 같은 걸 박거나 담 위에 철조망을 쳐놓은 집도 많다.


내가 처음 보홀에 와서 놀란 것은 세부만큼 살벌하게 방범시설이 되어 있지 않은 것이었다.

보홀은 필리핀 내에서도 비교적 안전지대로 구분된다. 그래서인지 철조망이나 높은 담장이 거의 없다.

이런 곳에서 6개월 이상 머물다 보니 나도 경계심이 많이 풀어졌던 모양이다.

결국 큰 일을 당하고 말았다.


가이드는 업무 특성상 현찰을 많이 가지고 다닌다.

달러, 페소, 한국돈을 다 관리해야 하니 이래저래 많은 돈을 몸에 지니게 된다.

이 돈은 회사돈이지만 일을 하는 중에는 회사에 입금할 수가 없으니 집에 가져가야 한다.


나는 그동안은 잘 때 방문은 열고 방충망 덧문에 걸쇠만 살짝 걸고 생활했었다.

에어컨을 쓰지 않다 보니 방문을 닫으면 너무 답답해서 항상 방문은 열고 방충망 덧문만 닫고 살았던 것이다.


세부 출장을 마치고 돌아와 며칠 안 된 아침이었다.

바쁘게 옷을 챙겨 입고 나가는데 뭔가 느낌이 이상했다.

뒷주머니 넣어 놓은 지갑의 위치가 바뀌어 있었다. (나는 항상 오른쪽 뒷 주머니에 지갑을 넣는다.)


"응? 이상한데?"

생각하며 지갑을 왼쪽에서 꺼내 오른쪽 뒷주머니로 옮기는데 지갑이 너무 얇게 느껴졌다.

갑자기 싸~~ 한 느낌이 뒷 목을 때렸다.

"설마?" 하며 지갑을 열어 보니 아니나 다를까 달러는 $1 짜리 세 장만 남아 있고

페소는 소액권 몇 장만 남아 있었다.  

"이게 뭐지?" 난 너무 놀라서 순간 정신이 아득해졌다.


생각을 더듬어 어제 내가 돈을 얼마나 가지고 있었는지를 떠올려 봤다.

정확한 금액이 떠올를 리가 없었다.

하루에도 몇 번씩 환전을 하고 손님들에게 한국돈, 페소, 달러를 받고 식당, 마사지샵,

호핑샵, 차량비 등에 엄청난 돈을 지불하니 정확한 금액이 기억날 리가 없다.


그래도 대충 손에 잡히는 느낌으로 내 지갑에 돈이 어느 정도 있는지는 늘 짐작한다.

그리고 어제저녁 식사 때 지갑이 너무 두꺼워 앉기가 불편했던 기억도 났다.


"이게 어떻게 된 거지?" 순간 머릿속이 무척 복잡해졌다.

혹시 해서 방의 덧문을 살펴보니 덧문의 걸쇠가 부러져 있었다.

"뭐야, 내가 자는 동안 걸쇠를 부러뜨리고 들어와서 돈을 가져갔다고?"

"젠장, C8...." 입에서 오만 욕이 절로 나왔다.

그리고 잠시 후 등골이 오싹해졌다.

결국, 어젯밤 내가 잠들어 있을 때 들어와서 지갑을 털었다는 이야기 아닌가.


그날 하루 종일 바빴지만 일이 제대로 되지를 않았다.

저녁에 집에 들어와 집주인에게 걸쇠가 부러진 걸 보여주고 도둑맞은 이야기를 했다.

주인장 가족이 전부 내 방 앞에 몰려와서,

"대문을 잠갔네, 뒷문이 열려 있었네, 왜 소리를 못 들었네, CCTV를 달자는 둥"

한참을 떠들다 돌아갔다.  


그날 밤 누웠는데 잠이 오질 않았다.

"어떻게 바지 주머니에서 지갑을 꺼내 고액권만 쏙 빼 갔을까?"

"걸쇠를 뜯어 낼 때 소리가 났을 텐데, 얼마나 강심장이길래 안에 사람이 있는데도 그걸 뜯을 생각을 했을까?"

"젠장, 걸쇠가 약하게 걸려 있다는 걸 아는 놈 소행이잖아."

생각이 여기 미치자 겁도 났지만 짜증이 물밀 듯이 밀려왔다.


"문에 잠금장치를 더 많이 해야 하나? 금고를 사야 하나? 이사를 가야 하나?"

"사람이 있는 걸 알면서도 걸쇠를 뜯어낼 정도면 금고가 있어도 통째로 들고 갈 수도 있는 거 아냐?"

"마음먹고 무기라도 들고 들어오면 정말 위험한데..."

별의별 생각이 다 들었다.


그리고 이게 처음이 아니라는 생각도 들었다.

이전에도 지갑에서 100불짜리 지폐가 한둘 부족해서 갸우뚱했던 적이 몇 번 있었다.

아마도 계속 조금씩 털다가 세부로 10일 이상 출장을 다녀온 탓에 오랫동안 굶어서 과감하게 문의

걸쇠를 뜯어내고 왕창 털어간 것 같았다. 황금알을 낳는 거위의 배를 가른 것이다.


"계속 날 엿보고 있었구나, 무서운 놈이네...."

"여기 계속 사는 게 맞는 건가?"


그 일이 있은 후 몇 군데 집을 보러 다니기 시작했다.

집주인은 내 방 덧문에 덕지덕지 2중 3중으로 잠금장치를 달았고 곧 CCTV도 설치하겠다고 했다.


다음 날 내 방과 벽하나를 두고 함께 살고 있는 집주인의 장남이 찾아왔다.

도둑이 드는 건 나만의 문제가 아니라 자기에게도 큰 문제라고 했다.

장남은 집에 붙어있는 세차장을 운영하고 있다.

매일 꽤 많은 현금이 들어오는데 그걸 자기 방에 보관한다는 것이다.

자기에게도 이번 일은 큰 문제여서 방범을 앞으로 철저히 하겠다고 심각한 어조로 말했다.


나는 알았다고 했지만 계속 집은 알아보고 다녔다.

그런데 며칠 지나자 집을 알아보는 일이 의미 없다는 걸 알았다.

한국인이 사는 집은 기본적으로 월세가 너무 비쌌다.

그나마 싼 집은 내가 사는 집 보다 시설이 안 좋거나 일터에서 위치가 너무 멀었다.

게다가 비싸기만 했지 안전해 보이지도 않았다. 그리고 이사하는 게 너무 귀찮았다.

아무리 짐이 없어도 이사는 힘든 일 아닌가?


결국, 나는 며칠 뒤 금고를 하나 사서 집주인에게 설치해 달라고 했다.

집주인은 방 안쪽 벽에 '5mm 앙카볼트' 4개를 때려 박아 금고를 고정해 줬다.   

그리고 뿌듯한 표정으로 날 바라봤다. 내가 이사를 가지 않는 게 고마운 듯했다.

난 엄지 척을 해줬다.


이제 나는 창문을 열고 잠을 잔다. 창문에 집주인이 방충망을 달아줬기 때문이다.

창문에는 원래 튼튼한 알루미늄 철창이 달려 있었지만 방충망이 없어 이전에는 방문을 열고 생활했었다.

집주인은 창문에 방충망을 설치하고 내 방문과 덧문에 4중 잠금장치를 추가로 달았다.

어쨌든 나름대로 세입자에 대한 서비스에 최선을 다한 것이다.


"왜 그러면서까지 그 집에 살아?" 하고 누군가 당연한 질문을 내게 했다.

이 말을 들었을 때는 적당한 답을 하지 못 했다.

내 생각을 말하면 사람들이 좀 모자라다는 생각을 할 거 같아서였다.


"이사해 봐야 거기도 결국 필리핀이잖아? 어딘들 안전하겠어?"

"차라리 '여기 필리핀이야!'를 상기하며 건방 떨지 않으며  이 집에 계속 사는 게 낫겠다."

 나는 이렇게 결론지었기 때문이다.


방문에 종소리 나는 부비트랩도 달고 손 잘 닿는 곳에 몽둥이도 몇 개 준비했다.


이러고 사는데도 이상하게 난 아직도 여기가 한국보다는 불편하지 않다.

 나 스스로도 이해가 안 되는 부분이지만

한국의 정치 사회면을 볼 때면

지난 1년은 더 그런 생각을 많이 했던 것 같다.


"호랑이가 무서워도 마을로 내려오지 못하고 산에 사는 사람들의 마음이 이런 게 아닐까?" 하는 얼토당토않은 생각이 들어  피식 웃음이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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