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벼랑끝 Jul 15. 2023

[보홀 이야기] #06. 보홀섬에 대하여-2부

보홀 해상투어

보홀 여행을 하면서 본섬에 숙소를 정하는 사람은 정말 특이한 사람이다.

그런 사람은 여행을 전문으로 하는 배낭여행객이거나 정보를 잘못 얻은 사람일 가능성이 높다.

이게 무슨 말이냐?


보홀의 주 관광지역은 보홀 본섬이 아니라 '팡라오(Panglao)' 섬이기 때문이다.

팡라오 섬은 보홀에 붙어 있는 작은 부속 도서를 말한다.

세부 본섬과 막탄 섬, 보홀 본섬과 팡라오 섬

세부 여행을 해 본 사람은 알겠지만 세부도 관광객들은 본섬의 가운데쯤 붙어있는 막탄 섬에 여장을 푼다.

요즘은 본섬의 '세부 시티(Cebu City)'에 숙소를 정하는 사람도 있지만 관광객이라면 막탄 섬에 머무는 게

일반적이다. 리조트와 공항 및 식당, 마사지샵, 호핑 선착장, 다이빙샵 같은 위락시설이 모두 '막탄(Mactan)'에 있어서 특별한 이유가 없다면 막탄 섬에 거처를 정해야 여러모로 편리하다.  


보홀도 마찬가지다. '팡라오(Panglao)' 섬에 공항과 유명한 리조트를 비롯한 각종 위락시설등이 모두

몰려있다. 따라서 대부분의 관광객은 팡라오 특히 알로나 비치 인근에 숙소를 정해야 움직이기가 편하다.


1편에서 "보홀 데이투어"를 중심으로 한 육상투어를 설명했지만 그건 보홀 여행의 진면목이 아니다.

보홀은 '팡라오 섬'을 중심으로 펼쳐지는 해상 투어가 진정한 보홀 관광이


(1편 링크:  https://brunch.co.kr/@hyorogum/532  )

300마리 이상의 거북이 살고 있는 발리카삭 섬. 물 색이 짙어지는 곳은 절벽이 시작되는 지점이다.

보홀 해상 투어의 대표적인 옵션 몇 가지를 소개해 보면,

호핑 투어(버진 아일랜드, 돌고래, 거북이 와칭), 스쿠버 다이빙, 고래상어 와칭, 나팔링(정어리) 투어등이다.

1) 호핑 투어

'호핑'은 바다로 소풍을 가는 일이다.

멋진 포인트에서 스노클링을 즐기고 예쁜 섬에서 사진도 찍고 돌고래 구경을 하거나 거북이와 함께

물놀이등을 하는 해양 종합 선물세트가 호핑이다. 대부분의 동남아시아 해양 관광지에는 스케줄은

다르지만 '호핑'이 기본 옵션으로 자리 잡고 있다.


스쿠버 다이빙

2) 스쿠버 다이빙

'스쿠버 다이빙'은 스쿠버 장비를 메고 바다 탐험을 하는 일이다.

스쿠버 강사들과 함께 바닷속으로 들어가 물고기들과 사진도 찍고 신기한 물속 세상을 체험한다.

많은 유명인이 죽기 전에 꼭 해봐야 하는 버킷리스트 최상단에 '스쿠버 다이빙'을 꼽다. 그만큼

바닷속 세상은 신비롭기 때문이다.


타 지역 '체험 다이빙'에서 실망했던 사람들도 보홀에서는 체험 다이빙의 만족도가 매우 높다.

강사들이 능숙해서 장비에 대한 적응이 쉽고 포인트가 아름다워 한 번 바다 들어가면 엄청난

만족도를 보인다. 세부나 보홀의 초보자를 위한 체험다이빙 시스템은 세계 최고 수준이다.


체험 다이빙

한국으로 가는 날 손님에게 물어보면 '스쿠버 다이빙'은 꼭 다시 하고 싶다는 관광객이 많다.

다이빙의 매력에 빠지는 초기 과정을 다이버들은 '물뽕'이라 부른다. 어감이 좋은 단어는 아니지만

다이버들 사이에는 많이 쓰는 단어이다.


체험 다이빙을 경험한 사람 중에는 다이빙 자격증을 따러 되돌아오는 사람이 많이 있다.

다이빙 자격증이 있으면 '펀 다이빙'을 할 수 있다. '펀 다이빙'은 동료 다이버들과 바다에 가라앉은

난파선이나 비행기등을 찾아다니기도 하고 거북이나 고래상어, 산호초 절벽 탐험 같은 수준 높은

다이빙을 할 수 있다.


보홀, 릴라(LILA, Bohol) 고래상어 와칭

3) 고래상어 와칭투어

'고래상어 와칭'은 세부의 '오슬롭 투어'를 흉내 내 만든 보홀의 가장 인기 있는 옵션 중 하나다.

이쪽 지역에도 고래상어가 많이 살다 보니 사람들이 먹이로 유도해서 지금은 꽤 많은 숫자가

매일 아침 보홀 본섬의 '릴라(LILA, BOHOL)' 지역에 모습을 보인다.



세부에서는 고래상어를 보려면 새벽 2~3시에 출발해서 3시간 이상을 달려야 겨우 와칭 포인트에 도착한다.

그래서 세부의 '오슬롭 투어(고래상어 와칭)'는 거의 초인적 체력을 요구하는 힘든 일정이다.

하지만 보홀에서는 팡라오의 숙소에서 1시간 거리에 고래상어 포인트가 있다. 새벽에 일찍 움직이면

고래상어를 보고 호텔로 돌아와서 아침 식사를 해도 될 정도로 여유 있는 거리이다.

  

포인트가 가까운 곳에 있다 보니 보홀에는 고래상어를 보러 가는 관광객이 언제나 넘쳐난다.

한국 관광객만 많은 게 아니라 외국 관광객도 많기 때문에 현장에 도착해서 2시간 이상 기다리는 일은

매우 흔하다. 그래서 언젠가부터 한국인 티켓 판매처에서  VIP 티켓을 팔기 시작했다.

이 티켓을 끊으면 줄을 서지 않고 VIP 코스로 바로 입장이 가능하다. 물론 비용은 각자의 몫이다.  


어마어마한 나팔링(정어리)

4) 나팔링(정어리) 투어

'나팔링(정어리) 투어'는 배를 타지 않고 즐길 수 있는  스노클링이 투어이다.

팡라오의 숙소 지역에서 차량으로 20분 정도 이동하면 꿈에서 볼 것 같은 멋진 스노클링 포인트가

나온다.


한 때는 많은 나팔링(정어리) 때가 서식하던 곳이었는데 이유는 모르겠지만 팬데믹 이후 개체수가 현격히

줄었다. 사람들이 다 잡아먹어서 그렇다는 말도 있고(?), 먹이가 부족해져서 다른 곳으로 이동했다는 말도

있다. 나팔링이 없다는 말에 한동안 한국 여행사에서는 '나팔링(정어리) 투어'를 판매하지 않았다. 하지만

얼마 전부터 어린 정어리 때가 다시 나타나기 시작했다.

나팔링 투어 지역에 사는 꼬마들

지금은 언덕 위에서도 확연히 보일만큼 많은 정어리(나팔링)들이 때를 지어 산호초 사이를 돌아다닌다.

스노클 장비를 하고 포인트로 들어가면 먼저 아름다운 산호초에 놀라고 두 번째로 정어리 때 무리를 보고

또 한 번 놀란다.


내게 점프를 보여준다면 전부 한 번씩 뛰어 내림.


무리 진 정어리 때를 뚫고 지나갈 때의 놀라움은 설명이 불가능할 정도로 경이롭다.

나는 처음 나팔링 포인트를 들어가서는 이런 말을 했었다.

"이 정도면 발리카삭 갈 필요 없잖아."


처음 나팔링 갔을 때 만난 동네 아이들

지금도 나는 쉬는 날이면 오토바이에 물안경과 오리발을 싣고 나팔링 포인트로 혼자 스노클링을 가곤 한다. 두 시간 정도 물고기들과 놀다 보면 일상의 스트레스가 봄눈 녹듯 사라진다.  


이 정도가 보홀에서 쉽게 접할 수 있는 해양투어 옵션들이다.

보홀에는 환경 파괴를 우려해서 타 지역에서 처럼 제트스키나 페러세일링, 바나나 보트 등은 할 수가 없다.

가이드 입장에서는 수입이 줄어 안 좋은 일이지만 환경을 생각한다면 필리핀 관광청에서 매우 잘한 일이라

생각한다.

평범한 날의 팡라오 앞바다

관광객과 일정 미팅 중에 "호핑 몇 째 날 가실 건가요?"라고 질문했을 때,

"우린 그런 거 안 해요?"라는 답을 하는 사람들을 만날 때가 있다.


그럼 당연히 이런 대화가 오가게 된다.

"아니, 보홀에 와서 호핑을 안 하신다고요?"

"네, 우린 배 타는 거 싫어해요."

"예쁜 바다도 보고 '버진 아일랜드'에서 사진도 찍으셔야죠."

"그거 세부에서도 해보고 괌에서도 해보고 보라카이에서도 해보고 다른 데서도 많이 해 봤어요."


"그러니까 보홀에서도 하셔야죠."

"똑같은 바단데 매번 할 필요 있나요?"

"바다야 지역마다 다르니까 예쁜 바다 많이 구경하면 좋죠."

"배 타고 나가힘만 들죠 뭐."


"보홀에는 돌고래도 보고 거북이도 볼 수 있어요. 지천에 예쁜 산호도 널렸고요."

"처음에야 그런 거 보면 신기하지만 우리는 많이 봐서 안 봐도 돼."

"네~에~~???? 아~~ 네......"


이상한 대화로 보이겠지만 이렇게 미팅이 끝나는 경우가 30% 정도 이상이다.

이런 손님들에게 보홀 해상투어를 설명하다 보면,

"가이드가 옵션 팔아먹으려고 오만 과장을 다 하네." 이런 소리 듣는다.  

그래서 요즘은 손님에게 옵션 설명을 길게 하지 않는다.


미팅을 끝내고 나면 "바다로 안 나갈 거면 도대체 보홀은 왜 왔을까?"

나도 모르게  이런 생각을 할 때가 많다. 사람의 취향이야 다 다른 거라 뭐라 할 일이 아니라는 걸 알지만

보홀 가이드로서 바다 구경을 하지 않는다는 말을 들으면 고개가 갸웃거려질 수밖에 없다.

절벽으로 연결되는 부분의 산호초들

팡라오 앞바다는 화산지형에 산호초가 쌓인 특이한 형태다.  

대표적으로 발리카삭 섬이 그렇고 주변에 있는 작은 무인도들도 비슷한 모양이다.

 지역에서 많은 물고기와 해양 생물을 만날 수 있다.  


산호초 지역이 끝나는 지점으로 가면 끝이 보이지 않는 절벽 만나게 된다.

사람들 절벽 언저리에서 스노클링을 하다 보면 하나같이 절벽 끝내려가 보고픈 충동을 느꼈다는

말을 한다. 나도 역시 매번 그런 느낌을 받는다. "저 밑에 도대체 뭐가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아마도 인간에게는 본능적인 탐험의 욕구가 있는가 보다.


버진 아일랜드

보홀 호핑의 또 다른 장점은 '버진 아일랜드'를 만나는 일이다.

물 때가 낮을수록 아름다운 장면을 보여주지만 물이 무릎까지 차는 밀물 때도 이곳에 도착하면

사람들은 똑같은 소리를 지른다. "와우~~!!"


포카리 스웨트 2016판 광고의 촬영지라는 설명을 굳이 하지 않아도 배가 버진 아일랜드 입구로

들어가면 똑같이 반응한다. "미쳤다~~!! 여기!!"


버진 아일랜드 배경의 포카리 스웨트 2016 광고 (유튜브  캡처)
5, 6월이면 물 때를 맞추기 힘들어 백사장을 못 보기도 하지만 버진 아일랜드는 언제 가도 아름답다.

나는 손님들에게 가장 미안할 때가 악천후로 호핑이 취소될 때이다.

내 잘못이 아닌데도 괜히 손님들에게 죄를 짓는 기분이다.


가끔 호핑 출발 전에 폭우를 만나기도 하는데 그럴 때도 나는 파도가 높지 않다고 판단되면 호핑을

하는 편이다. 바닷물에 젖으나 빗물에 젖으나 젖는 건 똑같으니 준비만 철저히 하면 비는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다. 수건이나 겉옷만 단단히 챙기면 호핑을 하는 데는 아무런 지장이 없다.

비구름 속으로 호핑을 나가고 있다.

가끔 가이드가 돈에 미쳐 손님들을 악천후에 끌고 나간다는 말을 듣기도 하지만 여기 오래 살다 보면

직감적으로 악천후와 소나기를 구분할 수 있게 된다. 파도만 높지 않으면 비 오는 날 훨씬 예쁜 바다를

볼 수 있다. 그래서 웬만하면 손님들을 설득해서 호핑을 나가려고 한다. 바다에 뜨는 무지개를 돌고래와

함께 보는 것은 가이드도 쉽지 않다.


버진 아일랜드

여행이 만들어주는 추억은 사람마다 다르다.

같은 곳을 같은 시간에 갔다고 같은 추억이 생기진 않는다.

비 맞으면서  고된 호핑이 멋진 추억이 되기도 하고,

로컬 바에서 우연히 만난 사람과 평생 동안 우정을 나누기도 한다.

이렇게 예상하지 못하는 경험이 여행의 진정한 맛이 아닐까 싶다.


버진 아일랜드

얼마 전 호핑 때 '맥심 화보' 흉내 내보겠다는 여자 손님이 있었다.

장난스럽게 찍은 사진이었지만 맥심 화보 못지않은 멋진 사진이 많이 나왔다.

"이 사진 찍 주는 대신 제가 홍보용으로 몇 장 써도 될까요? 얼굴은 안 나오게 할게요."

하고 물었더니,

"와우~~, 그럼 좋죠. 얼굴 나와도 상관없어요." 이러는 거다.


히낙다난 동굴,  빛이 강림하시니...
 고래상어 잡으로 가는 중

그 손님과는 일정 중에 좋은 사진을 많이 찍었다.

성격이 밝고 쾌활해서 '로컬바'에서 재밌는 일도 많았고 덕분에 외국인 친구도 많이 사귀었다.

일을 한 게 아니라 함께 여행을 다닌 기분이었다. 다음에 또 볼 기회가 있을지 모르지만

이 사진들을 볼 때면 나는 즐거웠던 2023년 6월의 보홀을 생각하게 될 것이다.

버진 아일랜드 하늘을...


인간이 추억을 만드는 일이 현명한 일인지 솔직히 모르겠다.

추억 같은 거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이다.

그런 거 없어도 밥 먹고 숨 쉬고 잠자는데 아무런 지장이 없다.

하지만 살아보니 뭔가 기억할만한 것을 만들며 사는 삶이 그리 나쁘진 않은 듯하다.


나는 "보홀은 별거 없는데 재밌는 여행지"라는 말을 손님에게 자주 했었다.

사실 그건 내 솔직한 심정이기도 했다.


그런데 그 말을 들은 나이 지긋한 손님이 내게 이런 말을 했다.


"가이드 님은 왜 여기가 별거 없다고 생각하세요?"

"6시간을 달려도 코코넛, 바나나, 망고나무 밖에 안 보이잖아요.

바다로 나가면 한 시간 내도록 달려도 똑같은 구름에 똑같은 섬들이고요."


"ㅎㅎㅎ.... 가이드 님은 여기가 싫으세요?"

"아뇨, 너무 좋죠."


"뭐가 그렇게 좋아요?"

"음~~~ 그게 말로 설명이 잘 안 돼요."


"저는요. 여기가 참 아름다운 거 같아요.

가이드님은 늘 보니까 익숙해서 아름답다 생각을 못하시는 거예요."

"음~~~(그런가?)"


"보홀 여행 여유로워서 좋아요.

내가 여유로운 사람과 다녀서 그런지 모르지만 하루 종일 같은 그림을 보는데도 기분이 좋아요.

가이드 님이 별거 없다고 하는 거 그거 되게 멋지고 아름답고 기분 좋은 것들이에요.

가이드님도 무의식 중에 그걸 느끼니까 여기가 좋은 거고요."

".........."


이 대화 이후  나는 내가 별거 없다고 말했던 것들이 별거 없는 게 아니라는 걸 알게 됐다.

가끔 해변에서 물놀이를 하다가 멍하니 바다에 떠 있는 구름을 보고 있거나,

알로나 비치에서 일몰을 보며 시간이 멈춘 것 같다는 생각을 하며 서 있을 때가 있다.

아마도 그런 순간이 아름다움에 취해 있었던 때였던 거 같다.

팡라오 일몰

인간은 자극적인 것을 보면 희열을 느낀다 한다.

그래서 강렬한 자극을 쫒게 되고 또 그 매력에 빠지게 된다.


그럼 아름다운 것을 보면 무엇을 느낄까?

인간은 아름다운 것을 보면 '여유(裕)'를 느낀다.

그래서 예술품이든 멋진 풍경이든 아름다운 것을 보면 마음이 편안해지는 것이다.


각박한 세상살이에서 벗어나 잠시라도 평온해지고 싶다면 아름다운 곳으로 여행을 가면 된다.

별거 없어 보이는 것이 아름다운 것이라는 걸 아는 순간 편안함과 함께 행복을 느끼게 될 것이다. 

그리고 '여유(裕)'를 얻게 될 것이다.


보홀은 아름다운 것이 많은 곳이다.

아름다운 것을 보는 '여유(裕)'를 느끼고 싶면 보홀로 오시라. 새로운 인생이 펼쳐질지도 모른다.



(끝)


매거진의 이전글 [보홀 이야기] #00. 빗소리가 커서...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