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홀섬, 보홀 데이투어...
필리핀은 7천 개가 넘는 섬으로 이루어진 나라다.
이 섬들의 넓이를 합치면 한반도의 1.3배 정도가 된다.
보홀섬은 그중 10번째로 큰 섬이며 인구는 120만 명 정도이다.
크기로 따지면 제주도의 2.5배 정도이니 작은 섬이 아니다.
운전을 해서 제주도 여행해 본 사람은 알겠지만 제주도는 엄청나게 큰 섬이다.
계획을 조금만 잘못 세워도 하루종일 운전만 하다 끝나는 게 제주도 여행이다.
이런 제주도 보다 2배 이상 넓으니 보홀 섬이 얼마나 큰지 짐작이 갈 것이다.
보홀(Bohol)은 필리핀 사람들에게는 오래전부터 유명한 관광지였다.
필리핀 200페소짜리 지폐를 장식하고 있는 초콜릿 힐과 타르시어 안경원숭이가 있는 곳이고
아시아에서 최초로 지어진 천주교 성지인 빠끌레이온 성당이 있는 곳이다.
보홀 섬 앞바다에는 300여 마리 이상의 거북이가 살고 있는 '발리카삭 섬'이 있다.
보홀 사람들은 '발리카삭'을 세계 3대 다이빙 포인트' 중 하나라고 자랑하곤 한다.
출처는 불분명한데 누가 만들었든 간에 어쨌든 엄청나게 아름다운 건 분명하다.
연간 수만의 다이버들이 찾는다. 게다가 정부 규제 때문에 하루 다이빙 인원이 정해져 있기 때문에
다이버들 입장에서 발리카삭에서 다이빙을 한 번 해보는 건 큰 자랑거리가 될 수밖에 없아.
이런 보홀 섬에 한국인들이 들어오기 시작한 것은 90년대 초부터였다.
그전부터도 다이버들이나 촬영팀이 들어오긴 했지만 본격적인 관광객이 들어온 것은 그쯤이다.
당시에는 보홀에는 공항이 없었다. 그러니 보홀을 오려면 세부나 마닐라에서
작은 비행기로 갈아타고 오던지 세부에서 여객선으로 와야 했다.
보홀이 한국에 많이 알려지지 않은 이유는 '세부(Cebu, Philippines)' 때문이다.
세부는 '남쪽 여왕의 도시'라는 칭호를 받을 만큼 필리핀에서 유명한 관광지다.
바다를 중심으로 하는 해양 투어와 '세부 시티'를 기반으로 하는 도시투어가 잘 조화되어
있는 '세부(Cebu)'는 남녀노소 누구나 즐길거리가 많은 곳이다. 보홀의 이름이 알려지게
된 것도 세부 관광 옵션 중에 '보홀 데이투어'라는 것이 이름을 알리면서부터였다.
'보홀 데이투어'는 세부의 선택 관광 옵션 중 가장 비싼 상품이다.
이건 가이드도 힘들고 손님도 힘든 매우 어려운 행사다.
간단히 일정을 소개하면,
아침 6시 30분에 호텔 로비에 집합. (세부 막탄섬 리조트의 경우)
호텔은 6시부터 아침 식사가 시작되니 30분 만에 먹고 로비로 나와야 한다.
세부 시티 연안 부두 '피어 원(Pier 1)'으로 1시간여 차량 이동.
페리로 2시간 동안 달려 보홀 타그빌라란 항구에 도착.
타그빌라란 항구에 준비해 놓은 차량으로 데이투어 시작.
로복강 선상 뷔페, 맨 메이드 포레스트, 안경원숭이, 초콜릿 힐을 기본으로
나비 농장이나 행잉브리지, 빠끌레이온 성당, 블러드 콤팩트 중 한두 곳 방문.
추가 옵션으로 '집라인', 'ATV 투어' 등을 하기도 한다.
보홀 타그빌라란 항구에서 초콜릿 힐로 쉬지 않고 달리면 1시간 30분이 걸린다.
그러니 중간에 여러 포인트를 들르면 시간은 부족해서 배를 놓칠 수도 있다.
늦어도 6시 이전 배를 타야 하는데 만약 배를 놓치면 일이 매우 복잡해진다.
이렇게 시간에 쫓기면서 하는 데이투어가 만족도가 높을 리가 없다(?)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그렇지 않다. 희한하게 미친 듯이 급하게 돌아다님에도 돌아오는 배에 타면
모두가 이런 소리를 했다.
"너무 좋았어요."
"이번 세부 여행 중에 최고였어요."
나는 도대체 손님들이 왜 이런 반응을 보이는지 아직도 이해를 못 한다.
확실한 건 세부에서 10년 넘게 가이드를 하면서 단 한 번도 컴플레인이 없던 옵션이
내겐 '보홀 데이투어' 밖에 없다. 가장 비싼 상품이고 가장 힘든 일정이며 볼 것도 많지
않고 고되기만 한 이 옵션을 사람들은 왜 이렇게 좋아하는지 나는 솔직히 이해하지 못 하겠다.
그래서 나는 '보홀 데이투어'를 이렇게 표현한다.
"별거 없는데 재밌는 대표적인 옵션"
한 번은 팔순 노모와 60대의 동생 그리고 40대 딸이 함께 세부에서 데이투어를 출발했다.
새벽에 세부에서 출발할 때부터 비가 오기 시작하더니 보홀에 도착해도 그치지를 않았다.
일단 초콜릿 힐 쪽으로 향하긴 했지만 차에서 내릴 수가 없을 정도로 비가 내렸다.
할 수 없이 들르는 장소를 최소로 하여 행사를 진행할 수밖에 없었기에 행사를 진행하면서도
무척이나 걱정이 됐었다.
보홀 데이투어의 메인인 안경원숭이 관람도 어머니가 무릎이 안 좋아 이모만 보고 왔고
딸은 비 맞기 싫다며 차에서 나오지도 않았다.
초콜릿 힐 전망대에서도 계단이 200개 정도가 있다. 당연히 어머니는 오를 수가 없어서 이모와 딸만
오르고 어머니는 나와 주차장에서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며 시간을 보냈다. 일정을 끝내고 보홀
항구에 돌아오니 포인트를 너무 많이 지나쳐서 평소 보다 1시간이나 일찍 도착했다.
그때까지도 비가 그치지 않아서 우리는 할 수 없이 항구 앞 커피숍에서 또 한 시간을 보냈다.
나는 커피숍에 앉을 때부터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오늘은 100% 컴플레인이다. 경위서를 어떻게 쓰지?"
"환불을 해줘야 하나?"
이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였다.
커피숍을 나서는데 어머니가 내 손을 잡으며 이런 말을 하는 거였다.
"가이드님 덕분에 너무 좋은 여행을 했어요."
난 순간 멍~ 한 기분이 들었다.
"도대체 한 게 없는데 어머니는 뭐가 좋았다는 거지?"
그 말을 듣자 내가 더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밤늦게 호텔에 도착해서 헤어질 때 막내딸도 내게 이런 말을 했다.
"오늘 정말 좋았어요. 고맙습니다. 가이드님"
나는 아직도 그날 내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 이해를 못 한다.
하지만 이런 생각을 했다.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하면 뭐든 좋은 거구나"
나는 지금도 데이투어를 출발하기 전에 꼭 이런 말을 던지고 시작한다.
"오늘 하루는 쉽지 않은 일정이겠지만 보홀 여행 중 가장 기억에 남는 하루가 될 겁니다."
보홀 데이투어 코스를 차에서 내리지 않고 돌면 정확히 3시간이 걸린다.
그러니 5시간을 투어 기준으로 따지면 실제로 차에서 내려 구경하는 시간은 2시간이
안 된다는 뜻이다. 그러니 차만 타고 다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럼에도 이게 신기하게도 끝나고 나면 매우 뿌듯한 뭔가가 남긴다.
그래서 나는 가장 후회 없는 옵션으로 항상 보홀 데이투어를 꼽았다.
얼마 전 "별거 없는데 재밌는 대표적인 보홀 옵션"이라는 말을 했더니,
어떤 손님이 내게 보홀 데이투어를 사람들이 왜 좋아하는지에 대해서 설명해 준 적이 있다.
여행을 많이 다닌 연세가 지긋한 손님이었는데 그 분의 해석을 들으니 사람들이 이 옵션을
좋아하는 이유가 조금은 납득이 됐다.
그건 다음 기회에 설명하도록 하겠다.
2부에 계속....
덧)
2부는 팡라오 섬을 중심으로 한 '해상 투어'에 대해서 설명할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