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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벼랑끝 Jun 09. 2023

[보홀 이야기] #00. 어떤 '부고(訃告)'...

내가 살아가는 방식이 맞는지......

내가 봤던 드라마 중에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상도"와 "미생" 그리고 "나의 아저씨"이다.

앞의 두 드라마는 본 지가 너무 오래되어 기억이 안 나지만 "나의 아저씨"는 요즘도 가끔

유튜브에서 지나다 걸리면 요약본을 보곤 한다.


이 드라마에서 최고의  장면은 마지막 편에서 지안이 돌아서서 대답하는 장면이지만 

내겐 그와 더불어 매우 인상적인 장면이 있다. 그건 바로 장례식장 장면이다. 

그중에서도 축구하는 장면.


이 부분을 보면서 작가의 남다른 시각과 상상력에 감탄을 금할 수 없었다. 

작가는 도대체 어떻게 그런 생각을 했을까? 혹시 어디서 본 장면이었을까?


죽음은 본인에게는 큰 일이지만 타인에게는 하루 동안 일어나는 짧은 일상에 불과하다.

추모하는 마음도 중요하지만 남은 사람들의 삶 역시 요하다는 것을 장례식 축구 장면으로 

함축적으로 보여주는 듯했다. 그래서 나는 이 부분을 드라마 '나의 아저씨' 최고의 장면 중 

하나로 꼽는다. 


처음 보홀에 들어왔을 때 숙식할 곳이 없어 여기저기를 기웃거릴 때였다.

하루 $4 짜리 게스트 하우스에서 열흘을 지내고 겨우 방을 얻어 나간지 며칠이 안 됐을 때다.

꽤 괜찮은 리조트 앞에서 Re를 만났다.


마지막으로 본 게 6년도 더 된 거 같은데 Re는 아직도 날 깍듯이 대했다. 

내가 3~4년 차 가이드로 한참 열심히 일할 때 신입으로 들어온 친구였다.

나이가 있어서 동기들 중에는 꽤 형이었지만 다행히 나보단 아래였다.

이 친구가 리조트 앞에서 오토바이에 시동을 걸다가 뛰어와서 내게 인사를 했다.


"형님!!  여기 언제 오셨어요."

"잉? 넌 언제 왔냐?"

"전 아직 한 달 안 됐어요."

"난 이제 두 달 다 돼 간다."


"근데 여긴 어쩐 일이냐?"

"저 여기(리조트) 살아요."

"으잉?? 좋은데 사네..."

"친구하고 같이 살아서 큰 부담은 안 돼요"

"음~~ 그래도 꽤 할 텐데...." 


"보홀 좋죠?"

"다들 세부보다는 좋다고 네."

"이 정도면 가이드 천국이죠 뭐"

"넌 세부로 안 가고 여기로 들어온 거냐?"

"저 원래 보라카이 갔었잖아요."

"보라카이 좋다던데"

"으이그~~ 말도 마세요. 거긴 가이드 지옥이에요."

"그~래?"


"보라카이는 가이드가 일하기 너무 힘든 곳이에요."

"그럼 세부는?"

"세부요? 세부도 징글징글합니다. 다신 안 갑니다."

"보라카이도 싫다. 세부도 싫다 그럼 보홀에 손님 어지면 어쩌려고?"

"여기 비행기 끊어지면 한국 가서 잠깐 쉬다 성수기 때 다시 들어오려고요"

"........"


이런 대화를 길거리에서 30분도 넘게 하며 반가움을 나눴었다.

그 후로도 가끔 공항이나 호텔에서 만나면 인사하며 지냈는데 어느 날부터 안 보이기 시작했다.

사실 이 친구만 안 보인게 아니라 보홀 가이드들이 비행기가 끊어지면서 모두 흩어졌기에 그리

이상하다 생각지 않았다.


그런데 어제 세부 공항에서 손님을 기다리는데 당시 Re와 동기였던 친구가 내게 인사를

하면서 이런 소식을 전했다.

 

"형님, 안녕하세요."

"으~응, 오랜만이네, 할 만해?"

"네, 저는 뭐 그렇죠. 근데 그거 들으셨어요."

"뭐?"

"Re형 아시죠?"

"알지, 얼마 전에 보홀에서 만났어."

"어제 죽었다고 연락 왔어요."

"엥~~~? 뭔 소리여?"

"간암 말기였데요."

"말도 안 돼. 내가 그때 방 이야기 하면서......."


구구절절 보홀에서 있었던 이야기를 해줬더니 그 친구는 내 말을 들으며 눈물을 훔쳤다.

둘은 오랫동안 한 솥밥을 먹었기에 친분이 두터운 모양이었다.

그 모습을 보면서 나는 뭐라 할 말이 떠오르지 않았다.


그날 일을 끝내고 쪽방 구석으로 돌아오는데 기분이 착잡했다.

나와 만나서 이야기한 날짜와 부고를 들은 날을 역산해서 계산해 보면

석 달 안에 모든 일이 일어났다는 뜻이 된다.


나와의 대화 때를 생각해 보면 본인은 석 달 후에 일어날 일을 전혀 모르는 듯했다.

30여분 대화하면서 담배를 계속 물고 있었지만 눈동자는 초롱초롱했고 말도 또박또박 잘했다. 

특별한 것은 피부가 너무 새까맣다는 것뿐이었다. 여기 사는 사람들은 대부분 그 색깔이니

그건 특이하다고 할 수도 없다. 그래서 나는 이 상황이 도저히 이해가 안 됐다.


그날 밤 침대에 누워 버릇처럼 유튜브를 보다가 갑자기 '나의 아저씨' 장례식 장면 생각이 났다.

검색을 해서 한동안 눈을 못 떼고 보고 있는데 갑자기 눈물이 주르륵 흘렀다.

뒤따라 아픔인지 슬픔인지 모를 감정이 밀물처럼 밀려왔다.


"내가 살아가고 있는 방식이 맞는 걸까?"

"계속 이렇게 살아도 되는 걸까?"

"내게 다른 방법이 남아 있기는 한 걸까?"


이런 심오한 생각을 하다가 나도 모르게 스르르 잠이 들었다. 

그것도 너무나 쉽게...


심각한 고민거리가 있어도 인간은 피곤하 잠을 잔다. 

장례식장에서 축구를 하는 것처럼......






https://youtu.be/auF-cLAjGQk?list=PLvDaoEdHc685qixDMHhcFYc-zlWNI7SGM

https://youtu.be/G6eewpT9zC4?list=PLvDaoEdHc685qixDMHhcFYc-zlWNI7SG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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