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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짱 Apr 17. 2020

1년 8개월의 기록 <6>-영국

내 골동품은 얼마요? 

유럽여행 2번째 이야기는 영국이다. 친구 덕분에 너무나 좋은 사람들과 독일에서 안락한 시간을 보내고 난 뒤, 나는 유럽에 온 첫 번째 목표(북인도에서 구매한 골동품을 영국 경매회사에서 팔아보겠다)를 위해 영국으로 향했다. 뒤셀도르프에서 버스를 타고 약 10시간(?) 정도 달렸을까? 비몽사몽 한 채로 버스 창문 커튼을 여니, 드디어 영국에 도착했다. 앞으로 어떤 일들이 펼쳐질지 모른 채 나는 멀리서 공수해온 골동품을 품에 꼭 안은채 또다시 특기 중 하나였던 장밋빛 미래를 맘껏 상상하며 영국에 첫발을 내딛게 된다. 



영국 : 킹스맨의 나라에 나타난 한국 추노~! 


영국의 상황이나 지리는 잘 알지 못했기에, 우선 예약해둔 한인 게스트 하우스로 향했다. 짐을 풀자마자 런던의 시내를 구석구석 돌아다니며 관광을 하고 나의 바깥 생활(노숙)을 위한 장소를 물색했다. 그리고 다시 게스트하우스에 돌아와 런던의 모든 경매회사를 정리하기 시작했다. 정리를 끝내보니 런던의 경매회사는 크리스티에, 소더비와 같은 세계적인 경매회사를 비롯하여, 중 소형의 작은 골동품 경매회사들이 많았다(대락 20곳 정도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모든 준비는 끝났다. 이제 경매회사를 방문하여 나의 골동품을 평가받고 돈을 벌어보자^^"...라는 희망이 역시나 상상이었다는 것을 알기에 일주일이면 충분했다. 우선 나는 게스트하우스를 나와 런던의 마스코트인 빅벤이라는 시계탑 뒤 인적이 드문 공원으로 나의 거취를 정했다. 시내 자전거 대여소가 가까움은 물론 그때 당시 아는 지인한테 빌려준 돈을 받지 못하는 등 금전적으로 약간의 문제가 생겨서 자의 반 타의 반으로 노숙을 하게 되었고, 이왕 노숙하는 김에 남들은 비싼 돈 주고 보러 오는 빅벤이나 맘껏 보자라는 마음으로 빅벤 근처로 임시거처를 잡게 된다.  



골동품을 들고 약 35kg 정도 되는 배낭을 멘 채 내가 정리한 런던의 모든 골동품 경매회사를 찾아다니는데 약 2주 정도 걸렸던 것 같다. 런던 관광은 사실 이 골동품을 판매하기 위해 자전거를 타고 다니며 웬만한 곳은 의도하지 않게 다했던 것 같다. 그렇게 기대하며 방문했던 골동품 회사들은 주소가 없어진 곳도 많았고, 아니면 허름한 행색을 한 한 동양 남자아이의 이야기는 들어보지 않아도 알 것 같다는 뉘앙스와 분위기를 풍기며 대화를 원하지 않는 회사도 있었다. 그리고 아직도 너무나 또렷하게 그때의 감정과 주변 풍경 그리고 충격이 기억나는 것은 세계적인 경매회사 크리스티에를 방문했을 때였다.  



고급스러운 문 너머로 보이는 금빛으로 장식된 실내 인테리어, 엄청난 슈트 빨을 뽐내며 복도를 지나다니는 영국의 킹스맨들 경매장 앞에 주차된, 사진으로나 보던 클래식 및 스포츠카들... 그리고 그와 너무나도 대비되게 문 앞 창문에 보이는 찢어진 청바지를 입고, 수염은 정돈되지 않은 채 인도에서 오토바이를 탈 때 구매한 레자 가죽 재킷을 입은 나의 모습을 마주한 순간 세상 못 느껴볼 자존감 하락과 부끄러움이 나로 하여금 그 문을 3시간 동안 열지 못하게 했었다... 


하지만 역시 월드클래스는 달랐다. 그렇게 고민하고 주위를 배회하다, "내가 지금 저 문을 넘어가지 못하면 내가 여기 온 이유가 없다"라는 다짐을 스스로에게 주입시키며 용기를 내어 문을 열었다. 예상과 다르게 실내에 있던 킹스맨들은 나를 한번 쓱 훑어보며 미소를 지어주었고, 안내원은 나에게 다가와 무슨 일로 왔냐며 상냥하게 대하는 것이 아닌가... 감동이었다... 그 감동에 힘입어 나는 행여나 나의 골동품 애기들이 깨질까 박스에 덕지덕지 붙여놓은 테이프를 거칠게 벗겨내며 부족한 영여 실력과 그 실력을 메꾸기 위해 바디랭귀지(거의 팝핀급 바디랭귀지였던 걸로 기억한다~!)를 하며 감정사와 얘기해보고 싶다고 아주 근엄하게(개인적인 착각이었을 거다 분명) 부탁을 하였고, 영화에서나 나올법한 백발의 컬이 약간 들어간 헤어스타일을 하신 아주 멋있는 노신사가 나와 나에게 홍티를 건네며 대화를 하기 시작했다.  



결과는 딱히 좋진 않았다... 노신사는 내가 예상한 경매금액보다 훨씬 못 미치는 금액을 말씀해주셨고, 내 경매품을 경매하기 위해서 한 2주를 기다려야 한다고 하셨다. 그 2주 동안 경매품의 보관료, 보험비, 수수료, 서비스비, 나의 체류비 등등 모든 것을 계산해 보았을 때 완벽한 실패였다. 하지만 실망감도 잠시 왠지 모르게 기분이 너무나도 좋았다. 그 이유는 내가 그 문을 열었다는 것 그 이유 하나였다. 그때 나 자신을 존중하는 법을 배우고 개인적으로 스스로의 자존감이 많이 발전할 수 있었던 계기라고 확신한다. 무튼 나의 영국 경매 도전기는 그렇게 끝이 났다, 그래서 그 골동품은 어디 있냐고? 지금 우리 집 책상 위에 고이 모셔두고, 삶에 지치고 자신감이 떨어질 때면 그 녀석들을 끄집어내어 동기부여의 목적으로 사용되고 있다. 


영국의 여행기는 이렇게 끝이 나고 그다음 여행지는... 다음 편에 쓰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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