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최희정 Feb 13. 2024

소나무 닮은 나물

설날 낮에 엄마 집에 갔었다. 엄마와 둘이 전과 나물을 꺼내놓고 떡국을 먹었다. 고사리나물이 유난히 부드럽고 맛있었다. 내가 잘 먹자 엄마는 통에서 더 꺼내 담았다.   

   

“너 고사리 좋아하지. 나도 좋아해. 너랑 나랑 식성이 비슷하지. 그런데 나는 그 나물도 좋아하는데 너는 어떤지 모르겠다.”     


“그 나물이 뭔데요?”     


“그거, 그 왜... 소나무 닮은 나물 있잖아.”     


소나무 닮은 나물이 있던가? 솔잎을 닮은 나물은 있지. 혹시 세발나물 말씀하시는 건가?     


“세발나물?”     


“아니. 소나무를 닮았다니까.”    

 

“그러니까요. 세발나물이 솔잎을 닮았잖아요.”     


“아휴 답답해라. 내가 소나무를 닮았다니까 5층 할머니도 바로 알아듣고, 그 집에 오는 요양보호사 선생님도 바로 알아 듣더만. 저기 길 건너 미장원 원장도 알아듣고.”    

 

세상에 소나무를 닮은 나물이 있다니 난 아무리 생각해봐도 모르겠다. 인터넷에 검색해도 알 수가 없다.   

  

“아, 생각났다. 브로콜리.”     


엄마가 눈을 반짝이며 손바닥을 짝 치며 말씀하신다.      


“브로콜리가 어떻게 나물이야? 그냥 야채지.”     


나는 어이없다는 듯이 웃었다. 아주 잠깐 브로콜리를 나물로 인지하는 엄마의 인지 회로에 대해 의심을 품었다. 그러나 곧 웃고 의심한 것을 후회했다. 아흔 살 엄마에게 야채를 먹는 방법은 나물이나 쌈이 익숙할 것이다. 찌개나 국을 끓여 먹거나. 요즘은 샤브샤브로 먹거나 샐러드를 해서 먹는 게 흔하지만 엄마의 기억 속에는 낯선 것들이다. 생으로 먹으면 쌈이요, 데쳐서 양념해서 먹으면 나물이니 데쳐 먹는 브로콜리는 당연히 나물일 것이다. 내 기준을 들이댈 것이 아니라 엄마 입장에서 생각하면 틀린 말이 아니다. 5층 할머니도 엄마 세대이니 엄마의 말을 금방 이해한 것이다.      


병원에서 있었던 일이다. 입원한 지 얼마 안 된 할머니께서 밤에 잠을 잘 못 주무셨다. 집에 계시다 입원하신 분들은 대부분 입원 초기에 쉽게 잠들지 못한다. 환경도 낯설어서도 그렇고 살아온 생활 습관에 따라 그렇기도 하다. 나도 잠자리가 바뀌면 아무리 편한 호텔이라도 쉽게 잠들지 못한다. 그러니 평생 살아온 집을 떠나 병원 침대라는 곳에서 살림을 새로 시작한 할머니도 잠자리가 낯설고 불편했을 것이다. 그리고 자기 이불과 요가 있는 집에 가고 싶었을 것이다.     


“이 치마를 입고 얼른 집에 가야 하는데 입을 수가 없어. 아이구, 이게 왜 이렇게 발이 안 들어가.”     

자정이 넘은 시간에 집에 가신다며 보채셨다. 침대에 깔아두었던 일회용 방수포를 꺼내 들고 자꾸 발로 밀며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심지어 방수포를 입으로 물어뜯기까지 했다. 치매에 의한 이상행동으로 보였다.  

    

하지만 할머니가 살아 온 이력을 곰곰 생각해보면 심한 치매 행동이 아니다. 불이 꺼진 병실에서 어슴푸레하게 보이는 흰 방수포는 할머니에게는 흰 천으로 만들어진 치마로 보였을 수도 있다. 그러니 방수포 끝을 양손에 잡고 치마를 입듯 발을 디밀었을 것이다. 발이 들어가지 않으니 꿰매진 솔기 부분을 뜯으려고 이로 뜯었던 것 같다.      


만약 내가 젊은 삼사십 대의 간호사라면 할머니의 행동을 전혀 이해하지 못했을 것 같다. 단지 치매로 이상한 행동을 하는 노인으로 여겼을 것이다. 내가 엄마에게 브로콜리는 나물이 아니라고 말했던 것처럼 내 기준으로 방수포는 치마가 아니니 할머니는 치매가 심하다 단정을 지었겠다. 그리고 할머니의 행동을 이상행동으로 자세히 기록했을 것이다. 어떻게 기록을 남겨야 할까 고민했다. 결국 이상행동보다는 수면장애에 초점을 맞춰서 기록을 남겼다.      


떡국을 다 먹고 집에 돌아와 아까 있었던 일을 되짚어보다가 엄마가 ‘나물’이라는 단어와 ‘나무’라는 단어를 착각하시나 걱정도 되었다. 하지만 나도 브로콜리를 보면서 나무를 닮았다고 생각한 적이 있다. 엄마는 당연히 그런 생각을 했으리라. 그럼 왜 소나무일까. 인터넷으로 소나무 사진을 찾아보았다. 멀리서 찍은 소나무 사진은 가지에 둥글둥글 솔잎 덩어리를 얹고 있다. 내 눈에도 브로콜리가 보인다. 그렇네, 소나무랑 브로콜리랑 닮았네. 엄마가 틀린 게 아니네. 이런 생각을 하면서 애국가 2절을 속으로 흥얼거린다.     


‘남산 위에 저 브로콜리 철갑을 두른 듯.’     



매거진의 이전글 지금 그 사람 이름은 잊었지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