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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인애 Jan 03. 2019

밥을 먹은 후에 할 수 있는 일

불확실 너머의 나를 믿는 방법

요즘의 나는 마음과 몸의 신경이 곤두서 나의 앞날과 그 삶에 필요하고 또 필요 없는 일들에 대해 여러 번 생각한다. 그러면서 동시에 살아있음을 실감한다. 불안정하고 그만큼 기대에 차있다.


지나간 여름, 책의 출간과 퇴사를 거의 동시에 해버린 후 지친 몸과 마음을 어떻게 회복해야 할지 몰라 한동안을 그냥 가만히 있었다. 갑자기 생겨버린 시간이, 그만큼의 휴식이 너무 오래간만이라 주어진 시간을 어떻게 써야 하는지 알지 못했다. 쉬는 것도 쉬어 본 사람이 잘 쉰다고, 쉬는 방법을 잊어버린 사람처럼 자꾸만 버벅거렸다. 평소에도 잠이 많은 편인 내가 그 어느 때보다 많이 잤고 그 긴 잠이 무색하게 그 어느 때보다 피로했다. 아주 무기력해 깨어있어도 자꾸만 잠들어 있는 기분이었다. 앞으로의 계획을 묻는 질문에 언제나 ‘이제 다시 생각해 봐야지!’라고 답한 후 실은 전혀 생각하지 않았다. 아니, 생각이 전혀 안 난다는 생각을 산발적으로 했다. 억지로 생각을 쥐어짜려고 하면 스트레스만 쌓여 할 수 있는 생각도 못할 것 같아 그냥 전혀 생각이 안 난다는 상태로 내버려 두었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론 길게 이어지는 무력감을 감당하는 일이 힘에 부쳤다. 평소처럼 그냥 내버려 두기만 한다면 영영 끝나지 않을 수 있겠다 싶어 해결책을 궁리했다. 증식하는 불안과 무기력함을 떨쳐내기 위해 내가 찾은 방법은 집을 치우고 밥을 해 먹는 일이었다. 무력한 상황을 떨쳐버리고 싶다는 결심이 섰을 때 나는 몸을 씻고 스트레칭을 하고  집을 치우고 밥을 만들었다. 나를 위해 내 집을 정리하고 나를 위한 한 끼를 만들어 먹는 순간과 그 상태에 느낄 수 있는 안도감이 있기 때문이다. 그런 종류의 안도감이 드는 순간이 되어서야 내가 제대로 쉬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집을 청소하고 밥을 해 먹을 수 있는 상태라면 준비가 되었다는 뜻이다. 그러니까 그전까지 절대 할 수 없었던 ‘다시 생각해 볼 준비’ 말이다.

(C) 2019. HanInae. All rights reserved. ㅣwatercolorㅣ밥

다시 생각을 하게 되면서 앞날에 대한 고민이 이어지고 있다. 앞으로의 나 자신, 그리고 상황에 대한 기대를 끌고 가기 위해서 스스로를 믿는 마음을 다져야 한다는 생각이다. 생각하고 또 행동하면서 나를 내가 더 많이 믿어줄 수 있다면 좋겠다. 그 누구의 말보다 나의 말과 나의 의지를 믿는 일을 몸에 익히는 법, 할 수 있다고, 괜찮다고, 혹은 좀 엉망 이더라도 아무 문제없다고 여러 번 말하고 기억해도 나를 믿는 일이란 언제나 어렵다. 과거와 지금, 그리고 앞으로도 계속 불안 혹은 불확실과 싸워야 할 것이다. 그래도 가는 수밖에 없다.


“나 자신을 믿는 게 참 힘든 것 같아요…”

“나도 아직 그래…”


C 선생님과 홍대 인근의 양 꼬치집에서 나눈 이 대화를 오래 기억하고 있다. 옆에 앉은 J가 잠시 자리를 비운 사이 무심코(혹은 내내 생각하다가) 던진 말과 그 말에 따라온 대답이었다. 기억이 채 사라지기 전 다시 한번 되짚고 또다시 되짚는 사이 굳이 기억해내려 애쓰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저 두 문장을 함께 떠올리게 되었다. 어쩌면 C 선생님은 이미 오래전 나눈 그 짧은 대화를 잊으셨을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나는 계속 기억하고 있다. 어쩌면 불안함은 당연스러운 마음이라고. 그런 마음은 나의 못남, 잘남 무관하게 내가 계속 끌고 가고 또 어느 때는 이겨내야 할 마음이라는 걸- 기억하면서 매 순간 깨닫는다.


그럼에도 역시 나를 영 믿기가 힘들 때면 타인의 말을 양분 삼아 산다. 운이 좋게도 주변에 다정한 사람이 많아 과분한 말을 많이 먹으며 여기까지 왔다. 영양이 가득 담긴 여러 말을 떠올리며 정말로 열심히 살겠다고 생각한다. 그런 다짐이 나를 계속 살게 한다.


아무튼 그리는 일이 여전히 좋고, 그게  많이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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