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아네트'
지난달 열린 부산국제영화제를 누구보다 기다렸던 건 아마 이 감독의 팬들일 겁니다. 우리에겐 ‘퐁네프의 연인들’의 감독으로 알려진 레오 카락스가 ‘홀리 모터스’ 이후 9년 만에 신작 ‘아네트’를 들고 나왔기 때문인데요. 감독의 한국 방문 소식까지 알려지니 예매 전쟁이 벌어진 건 어쩌면 당연한 수순이었겠죠.
지난 7월 제74회 칸 영화제의 개막작으로 선정된 이 영화를 두고 시상식에 초청된 ‘기생충’의 봉준호 감독은 “전 세계 최초로 레오 카락스의 ‘아네트’를 볼 수 있어 흥분된다”며 그를 향한 팬심을 감추지 못했는데요. 공개된 이후 “완전히 미쳤다” ,“2021년 가장 독창적인 영화”라는 등의 찬사를 받은 이 영화는 결국 감독에게 첫 감독상이라는 타이틀을 안겨주었습니다.
이번에 그가 택한 장르는 뮤지컬이었는데요. 생소하다 싶으실지도 모르겠지만 그는 어린 시절 가수를 꿈꿨을 만큼 음악을 사랑한 감독입니다. 10대 때부터 자신이 좋아한 미국의 밴드 ‘스팍스’의 음악을 써 이번 영화를 제작했죠. 하지만 우리가 익히 알고 봐 왔던, 이를테면 ‘라라 랜드’ 같은 뮤지컬 영화를 생각하고 극장에 가신다면 ‘어? 이건 뭐지?’ 하실 수도 있겠습니다. 시작부터 뭔가 좀 달랐거든요.
영화는 녹음실에서 시작됩니다. 녹음기사로 보이는 인물이 ‘자 이제 시작해도 될까(So may we start)?’라는 말을 시작으로 녹음실에 있던 가수 한두 사람씩 밖으로 나와 거리를 걸으며 노래를 부르는데요. 이때 주인공 아담 드라이버와 마리옹 꼬띠아르 등의 배우도 한 명씩 나와 그 무리에 합류합니다.
뮤지컬을 아는 관객이라면 이 상황이 매우 익숙하게 느껴지실 텐데요. 이건 마치 뮤지컬이 시작되기 전 오케스트라가 관객에게 극이 시작된다는 것을 알리고 작품의 전체적인 분위기를 전달하는 ‘서곡’ 같다는 것을요. 주연 배우들이 옷과 가발을 받고 각자 오토바이와 차에 올라 정반대로 달리는 것에서 마무리되는 오프닝 시퀀스는 ‘이제 진짜 극이 시작될 테니 집중해라’라는 무언의 메시지를 관객에게 전달합니다.
영화의 내용은 이렇습니다. 인기 절정의 오페라 가수 ‘안(마리옹 꼬띠아르)’과 스탠드업 코미디언 ‘헨리(아담 드라이버)’는 첫눈에 서로에게 이끌려 결혼까지 이르게 되죠. 그들 사이에는 사랑의 결정체인 딸 ‘아네트’까지 생기며 가족으로 거듭납니다. 안은 출산한 이후에도 오페라 가수로서 승승장구하는 반면 헨리는 관객들에게 외면받기 시작하는데요. 이에 따라 차츰 변해가는 헨리 위주로 극은 진행됩니다.
평소 자신이 해왔던 냉소적인 개그에 열광했던 관객들이 선을 넘어버린 그의 무대를 향해 비난과 조롱을 퍼붓는데요. 이 부분에서 극 중 관객과 헨리가 대화를 주고받는 듯이 진행되는 음악이 신선하게 느껴졌습니다. 아니 이 부분 외에도 전체적으로 내가 영화를 보고 있다는 느낌보다는 한 편의 연극 무대를 실시간으로 보는 것 같았습니다. 현장감이 느껴졌다고 할까요.
이는 ‘모든 것은 현장에서'를 주문한 레오 카락스 감독 때문일 겁니다. 아담 드라이버와 마리옹 꼬띠아르는 영화 대부분의 노래를 라이브로 소화하며 연기했다고 하는데요. 이와 같은 맥락으로 딸 ‘아네트’를 사람이 아닌 인형으로 등장시킨 것도 엄마 ‘안’과 같은 수준의 노래를 실제 아역 배우가 소화할 수 없었기 때문이라고 전했습니다. 저는 혹시나 영화 속에서 아동 학대 부분을 언급하고 있기 때문에 그 영향으로 인형으로 대체한 게 아닌가 싶었는데 궁금증이 풀렸네요.
감독은 이 영화를 한마디로 “좋은 아빠가 되고 싶은 나쁜 아빠의 이야기”라고 소개했는데요. 이 영화를 끝까지 보면, 특히 마지막 부분에서 헨리와 아네트가 대화하는 장면에서 비로소 이 말의 의미를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영화의 크레딧이 올라갈 때 감독은 실제 딸과 함께 등장해 ‘집에 조심히 돌아가길 바라며 영화가 만족스러웠다면 주변에 추천해달라’는 메시지를 전달한다고 하는데요. 아쉽게도 저는 이 부분을 놓쳤지만, 여러분들께서는 꼭 마지막 장면까지 확인해보시기 바랍니다.
개인적으로 아쉬웠던 건 제가 애정 하는 배우 ‘마리옹 꼬띠아르'의 분량이 생각보다 적었다는 점과 영화의 개봉일에 극장을 찾았음에도 불구하고 하루에 두 타임만 상영한다는 점이었는데요. 부디 상영 회차가 늘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