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가버나움'
(영화 내용이 다수 포함되어 있습니다)
교도소에 있다는 존재 자체가 낯선 작은 아이가 수갑을 찬 채 신체검사를 받고 있습니다. 의사가 추정하는 신체적 나이는 12세 정도. 이후 법정으로 향하는 아이. 밖에는 많은 기자가 취재를 위해 모여있습니다. 피고석에는 아이의 부모가 앉아 있었죠. 판사가 지금 상황에 관해 묻자 아이는 자신이 어떤 개XX를 찔러 수감되어 있으며 방송국에서 모여든 건 본인이 부모를 고소했기 때문이라 대답합니다. 부모를 왜 고소했냐는 물음에 아이는 이렇게 대답합니다.
나를 태어나게 해서요.
오늘 소개해드릴 영화는 71회 칸 영화제에서 공식 상영 후 이례적으로 15분간 기립박수가 쏟아진 작품으로 그해 심사위원상까지 받은 영화 ‘가버나움’입니다. 레바논 최초 골든글로브 외국어 영화상 후보, 아랍 여성 감독 최초 아카데미 외국어 영화상 후보라는 ‘최초’ 타이틀을 쏟아내며 전 세계를 감동으로 이끈 이 영화는 실재 인물들을 캐스팅해 배역으로 써 현실감 있는 연출이 돋보였는데요. 12세 소년이 부모를 고소한 사연은 이랬습니다.
위조된 처방전이면 마약성 진통제를 구할 수 있고 담배와 폭력이 일상이 된 아이들 속엔 자인이 있습니다. 그의 밑으로 대여섯이나 되는 동생들이 있죠. 그런 그에게 학교는 사치였고 길거리에서 주스를 팔거나 슈퍼에서 배달일을 하며 가족의 생계를 도와줍니다.
어느 날 자인은 자고 일어난 자리에서 피 묻은 이불을 발견하게 되는데요. 바로 아래 동생 사하르가 생리를 시작했던 거죠. 자인은 슈퍼에서 생리대를 훔쳐다 주는데요. 동생에게 절대 누구도 모르게 해야 한다고 신신당부합니다. 슈퍼 사장 아사드가 사하르를 눈독 들이고 있었고, 이를 부모가 알아챈다면 어떻게 될지 불 보듯 뻔했기 때문이죠.
이후 자인은 동생을 데리고 떠나기 위해 몰래 짐을 싸고 차편도 알아보는데요. 이미 늦었습니다. 동생을 데리러 돌아온 집에서 부모는 가기 싫다며 울며불며 매달리는 동생을 억지로 태워 슈퍼 사장의 집에 보냈죠. 아무것도 할 수 없었던 자인은 부모에게 “이제야 속이 시원하냐”며 퍼붓고 그 길로 가출합니다.
버스에 탄 자인은 우연히 옆자리에 스파이더맨 복장을 하고 앉은 할아버지를 따라 놀이공원에 들어가는데요. 일자리를 구하려 떠돌아다녔지만 소득이 없었습니다. 그 길에서 청소일을 하던 라힐을 만나게 되는데요. 불법체류자 신분이었던 라힐은 아기를 돌봐줄 사람이 없어 화장실에 아기를 두고 일하는 워킹맘이었죠. 쫄쫄 굶어 라힐에게 먹을 것 좀 달라던 자인을 자신의 집으로 데려가 씻기고 먹을 것을 챙겨줍니다.
무책임하게 낳기만 하고 돌보지는 않던 자신의 부모와 불법체류자로 쫓겨날 위기에 처해 있으면서도 끝까지 자기 자식을 포기하지 않고 심지어는 자신조차 챙긴 라힐을 보며 자인은 무슨 생각이 들었을까요.
그렇게 자인은 라힐의 집에서 아기 요나스를 돌보며 지냅니다. 동생이 많았던 육아 만랩 자인에게 요나스는 일도 아니었는데요. 라힐을 그런 자인을 믿고 마음 편하게 일할 수 있었죠. 그렇게 지내던 어느 날 라힐은 어디 다녀온다는 말을 하고 나간 이후로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걱정된 자인은 요나스를 데리고 갈만한 곳을 찾아 나서는데요. 그녀의 흔적을 찾을 수 없었죠. 라힐이 체포되었으리라고는 상상하지 못했습니다.
모아둔 돈도 떨어지고 집에 있던 물건들을 내다 팔아도 배고픔이 해결되지 않는 상황. 결국 예전부터 아이를 자신에게 팔라던 가게 주인에게 찾아가는데요. 다른 나라로 입국시켜주겠다는 말에 요나스를 맡기고 출생증명서를 찾으러 집으로 돌아가죠.
오랜만에 집에 돌아온 자인은 서류만 찾아 집을 나가려 하지만 분위기가 이상합니다. 누가 병원에 갔다는 거 같은데 제대로 말을 해주지 않죠. 자인은 이내 결혼한 사하르에게 무슨 일이 생겼음을 직감합니다. 부엌에서 칼을 꺼내 든 자인은 동생의 남편이었던 아사드에게 향합니다.
사람을 찌른 혐의로 수감된 자인. 재판을 기다리던 그에게 엄마가 찾아옵니다. 너는 동생이지만 나는 딸을 잃었다며 자신도 슬프다는 엄마. 그 뒤로 이어진 말이 충격적이었습니다.
엄마 아기 가졌어. 이름은 ‘사하르’로 할게.
존중받고 사랑받고 싶었던 12세 소년은 자신을 태어나게 한 부모를, 태어나게 하고 책임은 지지 않는 부모를 용서할 수 없습니다. 교도소 TV에서 아동 학대 방송을 보던 자인은 방송국에 전화를 걸어 부모를 고소하고 싶다 말합니다. 이후 재판장에 선 그는 판사에게 ‘애를 그만 낳게 해 달라’는 요청을 합니다.
끝까지 반성이라고 볼 수 없는 태도를 보이는 부모에게 분개하지 않을 수 없었는데요. 출생신고를 하지 않아 병원 문턱에서 죽을 수밖에 없었던 딸을 두고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가난한 집에 있는 것보다 시집이라도 가면 먹고는 살 줄 알았다, 당신이 내 입장이 되어 봤냐는 등의 변명을 늘어놓는 부모를 보며 정말 상황 때문이라고 단정 지을 수 있는지 한 번 더 묻고 싶어 졌습니다.
이 영화가 더 특별한 이유는 영화 속 인물들이 전문 연기자가 아닌 해당 역과 비슷한 경험을 가진 실재 인물들을 길거리에서 캐스팅했다는 점인데요. 자인 역의 자인 알 라피아는 시장에서 배달 일을 하던 소년이었고 라힐 역의 요르다노스 시프로우는 불법 체류자로 영화를 찍다가 실제로 체포되기도 했습니다. 사하르 역의 하이타 아이잠도 거리의 껌팔이 소녀라고 하니 이 영화를 있게 한 건 캐스팅 디렉터의 힘이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드네요.
영화의 엔딩 크래딧에는 이들이 현재 어떻게 살고 있는지 짤막하게 전하는 내용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오직 한국판에서만 볼 수 있다고 하니 끝까지 눈여겨보시기 바랍니다.